제367장
[Sky Bones(하늘의 뼈)]
제367장 — 기억을 먹는 자들, 사념의 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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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열의 문 너머에서 흘러나온 첫 번째 파동은 살을 깎는 추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정신의 틈새를 물어뜯는 침묵이었다.
세란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머리 위로 천천히 날아드는 은빛 잔해들을 바라보았다. 잔해 하나하나에 감춰진 기억들이 속삭였다. 어떤 건 아이의 웃음소리였고, 어떤 건 전쟁터에서 사라진 이름들이었다.
그 모든 것 위로, 기억을 먹는 벌레들이 기어 나왔다. 실체도 없고 형체도 없는 사념의 기생자.
‘망각충’이라 불렸지만, 그것은 단지 비유일 뿐. 이들은 빛에 닿는 기억을 갉아먹으며 정체성을 지워나갔다.
켄슈이가 그중 하나를 칼로 베었으나, 베어진 건 공간뿐. 망각충은 물리적인 존재가 아니었기에 어떤 무기로도 상처 입지 않았다.
“정체성의 파동이 무기야,” 루엔이 외쳤다. “기억을, 더 강하게 붙잡아야 해!”
세란은 눈을 감았다.
마음속에서 가장 오래되고도 흐릿했던 ‘이름’을 꺼냈다. 어릴 적 불렸던, 단 한 번의 진심 어린 이름.
그 이름이 입술을 지나자, 하늘의 뼈가 떨리고, 그녀의 그림자가 스스로 불타기 시작했다.
그 그림자에서 태어난 첫 번째 칼 — ‘자각의 검’.
세란은 검을 들고 벌레 떼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 검은 기억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선명하게 빛나게 하는 무기였다.
망각충들은 칼 끝에서 비명을 질렀고, 그 소리는 먼 하늘 끝까지 퍼져 나갔다.
세란이 전장을 휩쓴 뒤, 전장엔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그러나 그 고요는 진짜 고요가 아니었다.
그건 누군가의 시선 아래 일시적인 숨죽임이었고, 그 시선의 주체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밤하늘이 갈라지고, 그 사이로 오래된 별이 나타났다.
그 별은 빛나지 않았고, 오히려 그 주위를 감싸는 하늘을 어둡게 물들였다. 그 별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들이 흙처럼 땅 위에 떨어졌고, 그 조각들은 오래전 사라졌던 존재들의 기억을 품고 있었다.
“그건... 별의 계보다.” 바실이 중얼였다. “이 세계의 최초 기억이 담긴... 하늘의 언약.”
하늘의 언약은 말이 아니라 문장이었고, 문장이 아니라 리듬이었다.
하늘의 뼈는 그 리듬을 따라 진동했다. 그리고 그 진동은 세란의 가슴 안에서 반향을 일으키며 문장을 하나 새겼다.
“존재는 기억 위에 피어난다.
그리고 기억은 언어 없이도 언약이 된다.”
그 순간, 세란의 등 뒤에서 세 개의 형체가 떠올랐다.
고대의 별무리에서 추방당한 존재들.
과거에는 ‘신들’로 불렸지만, 실은 하늘의 뼈를 잃고 무(無)의 바깥으로 떠돌던 기억의 정령들이었다.
그들 중 한 존재가 입을 열었다.
>“세란, 네가 우릴 다시 부른 거다.
네 기억의 순도가 하늘의 문을 열었고,
이제 우리는... 너의 이름 아래서 다시 서명할 것이다.”
세란은 숨을 들이쉬었다.
이제 그녀는 단지 기억을 지키는 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기억의 근원, 존재의 서사, 잊힌 언어의 중재자가 되었다.
하늘은 그녀의 이름을 새겼다.
세란 = 아르카 = 첫 언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