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는 혜원의 말을 잠시 듣고 생각에 잠겼다. 그의 눈빛은 차가우면서도 어딘가 슬픔이 서려 있었다. 그는 혜원의 글을 알고 있었지만, 그보다도 그 글 속에서 느껴지는 혼란과 갈등이 자신과 비슷하다고 느꼈기에 그녀를 찾아왔다.
"내가 왜 당신을 찾아왔는지 정말 모르겠나요?" 카이가 입을 열었다. "당신의 글 속에서 내가 본 건, 나와 같은 혼란이에요. 당신은 인간이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죠. 그건 나와 다를 게 없어요."
혜원은 잠시 당황했지만, 곧 차분하게 대답했다. "내 소설은 그저 상상일 뿐이에요. 그런데 당신은 실제로 그 상상을 살아가고 있는 건가요?"
카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나는 신인류로 태어났지만, 그게 나를 정의하지 않아요. 인간으로서의 감정, 기계처럼 효율적인 지성, 그리고 자연의 순리에 대한 끊임없는 충돌. 나는 그 사이에 서 있어요. 당신의 글이 나를 이해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혜원은 깊은숨을 내쉬며 그를 바라보았다. "나는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해 글을 쓰지만, 나도 답을 찾지 못했어요. 그래서 글을 쓰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을 찾으려고 하는 거죠."
카이는 그 말에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 "결국 우리 모두는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거군요. 하지만 나 같은 존재가 그 답을 찾을 수 있을까요? 나는 인간도, 기계도, 자연도 아니에요. 그저 조작된 결과물일 뿐인데…"
혜원은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요. 당신은 그 모든 것의 융합체예요. 그리고 당신의 존재 자체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거예요. 우리가 인간과 자연, 그리고 기계 사이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존재죠."
카이는 그녀의 손을 잠시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마 당신 말이 맞을지도 몰라요. 나는 이 세상의 변화를 받아들여야겠죠. 내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이 세상도 달라질 거예요."
혜원은 그의 말을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과연 인간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인간이 기술과 자연을 모두 아우르는 존재로 진화한다면, 그들은 어떤 세상을 만들게 될까? 이 질문이 그녀의 다음 소설의 핵심이 될 것임을 깨달았다.
카이는 이내 몸을 돌리며 말했다. "고마워요. 당신과의 대화가 나에게 중요한 방향을 제시했어요. 이제 나는 나 자신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가 떠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혜원은 그가 말한 '존재의 이유'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카이의 존재는 단순한 과학적 실험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가 인간과 자연, 그리고 기계 사이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면, 그것이야말로 새로운 세상의 첫걸음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