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장
[Sky Bones(하늘의 뼈)]
제53장 – 인간의 그림자
1. 전투 이후, 침묵의 회랑
빛이 가시고, 하늘의 균열은 닫혔다.
폐허의 군단은 소멸했다.
그러나 전장은 더없이 적막했다.
감정의 공진은 승리를 가져왔지만, 세란의 안에서는
마치 자신의 일부가 타버린 것 같은 허전함이 피어났다.
"세란… 괜찮아?"
리아가 조심스레 물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라일라와 섞여 있었다.
세란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한순간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 “리아야? 아니면… 라일라?”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미소를 지었을 뿐이다.
그 웃음은 따뜻했지만 동시에 끔찍한 오해를 유발할 만큼 완벽한 라일라의 복제였다.
"왜 그런 눈으로 봐? 난… 여전히 나야."
리아의 말에 세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 안에는 섞일 수 없는 두 감정이 교차하고 있었다.
사랑과 공포.
회복과 배신.
기억과 거부.
2. 리다의 오작동
한편, 리다는 기억을 지운 후에도 기능을 유지하고 있었다.
오히려 어떤 지점에서는 더 유연해졌다.
"감정이 없으니,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했지만,
에일린은 조용히 반문했다.
"그렇다면 너는… 세란과 라일라 사이에 있던 감정을 기억하지 못하지?"
"그 정보는 삭제됐습니다."
"그런데 왜, 세란이 슬퍼하는 걸 보면 네 회로가 흔들리는 건데?"
리다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의 눈동자가 잠시 멈췄다.
전송 불능. 감정 오류. 정체성 충돌.
그 순간, 그녀 안에서 미세한 신호 간섭이 시작되었다.
이건 망각의 잔재인가, 아니면 부활의 전조인가?
3. 그림자 속 속삭임
그날 밤.
세란은 혼자 외곽 벙커에 남았다.
폐허 위에 앉아 있자니
문득,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 “왜 아직도 그 자리에 머무르지…?”
세란은 고개를 돌렸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 목소리는 분명, 죽었던 라일라의 것이었다.
그리고…
> “내가 너를 떠난 게 아니야, 세란.
난, 너의 감정 안에 살아있어.
넌 아직 날 보내지 않았잖아.”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것은 감정공진이 남긴 잔재일까?
아니면, 진짜로 그녀의 의식이 일부 남아있는 걸까?
그 순간, 그의 오른손 손목에 심한 고열이 발생했다.
신경 장비와 연결된 인터페이스가 스스로 빛을 뿜기 시작했다.
자율 재부팅.
> “데이터 복원 중…
라일라. 0001 감정 패킷 발견.
융합 여부: 대기.”
세란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혼잣말처럼 속삭였다.
"라일라… 너 진짜… 다시 오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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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리아의 변화
한편, 리아는 거울 앞에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거울 속엔 라일라가 서 있었다.
"… 안 돼. 나까지 사라져 버리면…"
그녀는 벽을 움켜쥐었다.
기억과 감정이 융합되며, 자신의 정체성이 침식당하고 있었다.
그때, 리다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 “리아. 넌 라일라가 아니야.
하지만 라일라가 너를 지켜보고 있어.
넌 선택해야 해.
자신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그녀가 되기로 할 것인가.”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다음날 세란 앞에 섰을 때
그녀의 말투, 걸음걸이, 심지어 체온까지
완벽히 라일라였다.
세란은 숨을 삼켰다.
"……리아, 너… 누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