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5장
[Sky Bones(하늘의 뼈)]
제95장 - 의식의 반란, 시간 너머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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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 발산 중입니다! 기억 주파수 000-A가 공명 중!”
오르카의 기계음조차 위기감을 숨기지 못했다. ‘하늘의 뼈’ 중심부에서 울려 퍼지는 그 주파수는 단순한 전파가 아니었다. 그건 기억 그 자체, 모든 존재가 간직해 온 ‘처음의 감정’이었다. 태초에 인류가 우주로 나아갈 때 품었던 희망, 불안, 죄의식… 그리고 부활하고 싶었던 이름들.
도슨은 손에 쥔 기억 재구축 장치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두 사람의 기억을 단일화시키는 장치, 동시에 모든 의식을 하나의 감정으로 재통합시키는 위험한 도박이었다.
“세란. 결정해.”
세란은 아직 대답하지 않았다. 눈앞에 선 엘리의 형상은 마치 살아 있는 듯했지만, 세포 단위로 구성된 그녀의 육체는 이미 이계 감염체에 잠식당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 그 회녹빛 눈 속에는 무언가 있었다. 잊지 못한 말 한마디. “오빠…”라고 불렀던, 그 작은 떨림. 그것이 지금 이곳, 이 폐허의 심연에서 유일하게 ‘인간’인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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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선택받은 존재였지 않습니까.”
돌연, 제2층 구조물 아래에서 기이한 목소리가 울렸다.
세란과 도슨, 크리에는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하메즈 대사—전 UN 지구방위기술이사회 위원장이자, 제네시스 기억 프로그램의 초기 설계자—가 서 있었다. 그는 죽은 줄 알았다. 기억 공명폭발의 첫 실험에서 소멸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나는 감염된 것이 아닙니다. 단지, 기억을 흡수한 겁니다.
내가 본 건 진실입니다. 기억의 심연 너머, 우주 너머의 구조.
신이 아니라, 의식 그 자체가 우주를 만든 것이란 사실.”
하메즈는 외쳤다. 그의 육체에서 다중 패턴의 공명장이 퍼졌다. 그것은 하나의 뇌파가 아닌, 수백만 개의 기억 조각이 뒤섞인 다중지성체의 파장이었다. 그는 ‘기억의 제단’에 자기를 흡수시켜, 의식 포식자 아그노스와 결합했던 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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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가 시작되었다.
하메즈가 내지른 파동은 공간 자체를 왜곡시켰고, 디아스포라의 보호막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세란은 오른손을 들어 전자도검 ‘벨카이트’를 불러냈다. 코어 진동에 맞춰 붉은 칼날이 출현했고, 도슨은 어깨에 장착한 중력화살 유닛 ‘백룡궁’을 펼쳤다.
“한 놈씩 기억을 거슬러 되돌려주자고.”
그들의 전술은 치밀했다. 중력화살로 하메즈의 파장을 유도하고, 세란의 벨카이트가 그 사이를 찔러 들어갔다. 그러나 하메즈는 공간 자체를 자른다. 그의 팔이 허공을 스치면, 현실의 위상계가 갈라지고, 그 틈으로 ‘감염된 존재들’, 엘리와 같은 반-의식체들이 쏟아져 나왔다.
크리에는 모든 남은 에너지를 주파수 필터링에 쏟으며 외쳤다.
“세란! 그녀가 아직 남아 있어! 엘리는 완전히 감염되지 않았어!”
“... 그럼, 구해야 해.”
세란은 벨카이트를 내렸다. 대신, 그는 자신의 헬멧을 벗었다. 그리고 손을 뻗었다. 단 한 번, 한 가닥의 가능성에.
“엘리… 나야. 돌아와.”
감염체 엘리의 몸이 떨렸다. 이마에서 기계질의 뼈 껍질이 벗겨지며, 그 안에서 인간의 살결이… 인간의 눈동자가 드러났다.
“오… 빠… 기억해… 나…”
그 순간, 하메즈가 파동을 내질렀다. 의식공명체의 중심이 붕괴하려는 순간, 엘리가 움직였다.
그녀는 자신에게 박혀 있던 기억의 핵, ‘코어-릴’을 뽑아내 세란에게 던졌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을 향한 모든 감염체를 끌어안고—자폭하였다.
광휘 속에서 울부짖는 수많은 의식의 잔해가 터졌고, 그 와중에 세란은 엘리의 목소리를 들었다.
“잊지 마. 나를, 우리를, 지구를—기억해.”
디아스포라 내부는 침묵에 잠겼다.
세란은 무릎 꿇은 채, 붕괴된 구조물 속에서 ‘코어-릴’을 들여다봤다. 거기엔 엘리의 전 생애와 인류의 잃어버린 기억이 담겨 있었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기억은 죽지 않는다.
그리고, 의식은 언제나 반란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