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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우 Dec 14. 2016

김장 전투

산더미

그야말로 산더미다. 

연병장 한편을 차지한 배추와 무 더미는 사람의 키를 훌쩍 넘었다. 

군대에서 김장은 ‘김장 전투’라고 불렀고 전투의 시작은 배추와 무를 쌓는 것으로 시작한다. 

장교와 부사관은 부대를 지휘하고 부대원은 일사불란하게 임무를 수행한다.

소대장이었던 나의 임무는 5/4톤 트럭을 지휘하는 것이었다. 

인근 농가와 계약된 배추와 무 밭에서 수확 작전을 펼친다. 

배추는 뿌리가 가늘어 쉽게 뽑을 수 있지만 무는 자칫 힘 조절을 잘 못하면 부러질 수 있어 조심스럽다. 

한쪽에서 수확한 배추와 무를 나르는 사이 연병장에서는 배추 조와 무조 나뉘어 마치 시합을 하듯 손질이 한창이다. 

열의 끝에는 소금물을 담은  드럼통이며 빨간 고무다라, 간이 욕조 등 부대 구석구석에서 모은 통이 줄지어 배추와 무를 기다린다. 

모든 통이 그득하게 담기면 김장 전투의 1일 차가 마무리된다. 


새벽부터 2일 차 전투가 이어진다. 

연병장에는 소금물을 먹고 축 늘어진 배추가 쌓여있다. 

어제의 산더미만 못하지만 사기를 불타오르게 하기엔 충분하다. 

이번에는 연병장을 가로질러 천막천을 길게 깔고 다시 비닐로 덮는다. 

취사병이 밤새워 무쳐 논 배추 속을 채울 양념을 내오면 전투가 시작된다.

이때쯤 되면 전투를 구경 온 동네 이장님과 아주머니들의 언성도 같이 높아지는데, 속이 너무 많다거나, 너무 적다거나 잔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양념을 가득 먹은 배추는 리어카에 담겨 취사장 뒤편에 묻힌 장독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쯤 되면 이제 승전을 기념할 때다. 

동네에서 가장 실한 암퇘지가 트럭을 타고 부대로 들어온다. 전투에 열중하던 부대원의 함성이 터져 나온다. 

지축을 울리는 함성을 뒤로하고 암퇘지는 취사장 뒤편으로 사라진다. 

이윽고 도축에 일가견이 있는 행정보급관을 맞이한다. 그리고 커다란 솥에서 장렬히 전사한다.


이틀간의 전투는 갓 담은 김치와 보쌈으로 마무리한다. 

중대 별로 커다란 쟁반을 든 병사들이 삼삼오오 줄을 지어 모여든다. 

늦게 가면 비계 덩이만 받을 수 있기에 발걸음인 재다. 눈대중으로 담는 보쌈은 취사병과 말다툼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취사병끼리만 맛있는 부위를 먹었다는 오해를 받기 일쑤다. 

김이 펄펄 나는 보쌈을 들고 내부반으로 들어서면 개선장군이 따로 없다. 

장교며 병사며 할 것 없이 쟁반 주위에 둘러앉아 입 속에 밀어 넣기에 바쁘다. 

대대장 하사품인 막걸리를 반합 가득 채워 돌려가며 마시는 것도 꿀맛이다. 

김장 전투가 끝이 났다.

온 부대원이 매달린 김장 전투로 겨우내 식량을 얻었다. 

매끼마다 김치는 식판 한 귀퉁이를 채웠으며 이내 초겨울의 김장 전투가 기억난다. 

아니 전투가 끝난 뒤 맛본 뜨거운 보쌈이 생각나 입맛을 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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