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자의 길

4. 디카시 & 에세이

by 조규옥


끝없이

버리고 비우며

묵묵히 걸어 가는 길.



돌이켜 찾아내 불러 낸다는 것은 조금은 쓸쓸하고 외로워서 일 것이다. 오늘이 그러한 날이었다. 아침부터 겨울비가 오다 말다 봄비처럼 뿌렸다. 어제 기온이 16도까지 올라가 모두들 ‘봄이 왔구나!’ 했던 마음들에 겨울이 심술이 났는지 비를 뿌렸다. 차마 2월도 중순이라 눈까지 뿌리기엔 뭔가 께름찍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내리던 비가 이젠 눈 비가 섞여 내린다.


오후에 손님이 올 예정 밖에는 다른 약속이 없으니 결국 창밖에서부터 외로움이 창문을 타고 슬글슬금 넘어왔다. 정적은 흐르고 시계는 ‘째깍째깍’ 소리 내며 흐르니 가슴속에선 스멀스멀 외로움이 피어오른 거다. 한 동안 그렇게 멍하니 앉아 진눈깨비 내리는 창밖만 바라보았다. 회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할 일 없을 때 늘 그러하듯 컴퓨터를 켜고 지난 간 사진들을 불러내 안부를 묻고 ‘그땐, 그랬지!’ 혼자 주고받다가 이 사진을 만났다. 내 수준으로 참 괜찮다 싶은데 디카시를 쓰려고 하면 앞이 콱콱 막혀 미완성 파일에 고이 모셔 놓았던 사진이다. 한참을 사진을 들여다보며 눈 내리는 날의 갈대와 이것저것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돌아서면 잃어버릴 쓰잘 데 없는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떠 오른 생각이 이 갈대의 삶이야말로 성자가 되어 가는 길이 아닌가 싶었다.


겨울 사진은, 특히 눈 내린 날의 사진은 꾸밈도 군더더기도 없다. 더 이상 줄일 수 없는 간결함의 아름다움을 극대화시켜 보여 준다. 그 덕분에 아름다운 사진을 많이 찍을 수 있는 그런 계절이다. 그 계절에 억새들은 제 자신까지도 하나 둘 떠나보낸다. 미련도 후회도 없다. 줄기 끝에 달려있던 자식들도 떠난 지 오래다. 성긴 줄기 사이로 바람이 파고들면 그 마저도 하나둘 떠나가고 끝내는 엎디어 두 손을 모으고 만다. 지나간 것에 대한 회한 같은 건 없다. 그저 다가오는 계절에 순응하며 가진 것들을 버릴 줄 알고 비워가는 모습이 작은 성자의 모습으로 보인다.


나이가 들면서 버려야 한다고 머리는 알고 있다. 그런데도, 오늘 아침 느끼던 외롭다는 마음도 욕심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따져보면 혜택 받는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면서도 비워가는 것에는 여전히 거부감을 느끼는 내 가슴이 한없이 초라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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