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파의 결단!

38. 디카시 & 에세이

by 조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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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법칙이니 뭐니 난 몰라

초고속으로 변하는 세월인데

언제 꽃 피우고 씨를 만드니?

그냥 새끼를 먼저 낳는 거지!

순서 좀 바꾼다고 큰일 날 거 없잖어!




친구들을 만나고 해 질 무렵

아파트 옥상 상자텃밭을 찾았다.

텃밭 식구들을 안 보고 말면

못 내 잠 못 드는 밤이 될게 뻔했다.


넓은 잎을 펼치고 으스대며 뽑내며

위풍당당하게 바라보는 강낭콩을 바라보며 의자에 앉았다.

하늘하늘 부는 저녁 바람 한 줄기에

감자 꽃 하나가 바삐 피어났다.


하나 둘 셋 넷.....

종 모양의 받침 위에 꽃잎이 다섯

하얀 꽃잎에 눈이 부시다.

저 꽃잎 한 잎, 한 잎

수 많은 밤을 담고 낮을 담았다던가?


꿀벌 한 마리 훨훨 날아들어

감자 꽃 속에 들어갔다 나갔다 희롱하길래

“그 꽃, 참 어여쁘지 않니?”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 민망하게도

벌은 대답도 없이 훌훌 날아오른다.

“가지 말아요. 가지 말아요.”

감자 꽃이 파르르 떨며 매달렸지만

벌은 훌쩍 501호네 대파들에게 가버리고 말았다.


무정한 놈!

나쁜 놈하고 욕하다가 고소한 웃음이 나왔다.

“넌, 뉴스도 안 보니?”

“요즘 대파는 꽃을 안 피우고 새끼를 낳아 기르잖아!”

“요즘 세월이 어떤 세월인데, 너 마음 바꿔라!”

“요즘 세월은 순식간에 변해 버려!”


내가 흉 보는 게 속상해서 일까?

벌은 삐친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휙 날아올라 숲으로 들어가 버렸다.

숲이라고 다르지 않을텐데....


세월 따라 그냥 순응하고 사는 게 나을텐데.....

요즘은 혼전 임신도 혼수 품목이라는 데.....

나, 인정 못한다고 고집을 부려봐야 저만 손해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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