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 자배기

41. 디카 시 & 에세이

by 조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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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남은 생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엎디어 기도하는 일

남은 길이 험하지 않기를

자식 고생 시키지 않기를....



어제는 전철을 탔어요.

서너 역을 지나자 술에 잔뜩 취한 남자가

욕부터 내뱉으며 60이 넘은 것들이 어쩌고저쩌고

쌍욕들이 거침없이 튀어나왔어요.


지래 겁을 먹은 옆 남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전철 속 사람 사람들 틈으로 사라져 가고

남자가 사라지기도 전에 눈치 보던 그 옆 남자도

슬그머니 맞은편으로 건너가

천장에 매달린 손잡이를 잡고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슬금슬금 술 취한 남자 눈치를 보기에 바빴지요.


보통 때라면

나도 벌떡 일어나 비켜버렸을 터인데

어제는 전혀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제는 짐도 많았고 힘들었고

그보다는 자리 하나 차지하려고

전철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입에 담지 못 할 온갖 욕설부터 내뱉는 그 사람에게

절대로 자리를 내어주지는 않을 거라는

오기가 치밀어 올랐어요.


‘그래, 어디 한 번 시비 붙어보던가.’

‘난, 너보다 더 길길이 뛸 거야.’

‘나이 먹은 게 무슨 벼슬이니?’

‘마음 준비 단단히 하자!’

그런 생각으로 전열을 가다듬고 있는데


“ 사모님, 이 보따리 한 번 들어 봐요.”

“ 이거 엄청 무겁거든요. 친구 새끼가 술 먹고 일어서는데

먹다 남은 걸 날 싸 주는 거야.글쎄”

“ 미친 새끼, 왜 날 이걸 주냐고? 무거워 미치겠네!”


그러면서 카메라 가방 비슷하게 생긴

보따리를 내게 내밀더라고요.

아마도 앉아있던 사람들에게 자리를 빼앗은 정당성을

그 보따리로 상쇄하고 싶었던가 봐요.

난 그게 카메라 가방인 줄 알았어요.

꼭 그 크기만 했고 가방 모양도 그랬으니까.


내가 쳐다도 안 보니까

내 얼굴 한 번 보고 무릎 위에 올려져 있는

술 취한 남자보다 배는 더 큰, 커다란 보따리를 보고는

슬그머니 자기 보따리를 내리더라고요.

그리고 또다시 그 보따리를 싸줬다는 친구에게

갖은 욕을 퍼부었어요.


우리가 아무리 나이가 들었어도

나이가 벼슬이 아닌 거지요.

하루가 다르게 몸은 망가져 가고,

꿈들은 빛을 바래가지만

그래도 품위 있게 나이 들어 가야지요.

남에게, 자식들에게 짐으로 남지는 않아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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