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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뜰밖 Mar 28. 2020

아름다운 인수인계

누군가가 그랬다. 결혼식 날 복장은 웨딩드레스가 아닌 결혼 생활과 잘 어울리는 작업복이어야 하지 않느냐고. 혼자서 웃음이 났다. 고무장갑을 끼고, 굳은 밥알이 엉겨 붙은 헐렁한 바지를 입고, 딸랑이를 흔들며 예식장에 짠~ 하고 나타난다면 하고 상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여전히 아름답고 싶다.

엄마가 되고 나서 무엇이 달라졌는가를 묻는다면, 달라지지 않은 것을 묻는 일이 빠르겠다. 달라짐은 삶의 변형이며 삶의 뼈대를 다시 고쳐 짓는 일이다.

  초등 6년, 중등 3년, 고등교육 3년, 대학 4년이라는 총 16년이라는 공교육을 받으면서도, 지금 이 시간에도 위 아랫집, 혹은 옆집에서 누군가가 수행하고 있는 ‘부모 역할’에 대한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냉장고 자꾸 열면 빙하가 녹아, 펭귄 싫어해~♪” 이런 노래를 불러야 하는 이 세상에, 미세먼지 가득한 이 세상에 와서 살아보겠냐고 묻지도 않은 채 우리 부부는 두 아들을 세상에 내보냈다.

  두 아이를 출산한 후 주어진 총 2년 6개월의 육아휴직 기간은 일터를 떠나 온전히 두 아이들 곁에서 엄마로 살게 해줬다. 그러나 엄마 되기의 정체성과 역할은 배워보지 못한 채 수습과정 없이 현장에 투입됐다. 현장은 막무가내였다. 현장을 지휘하는 ‘어린 상사’에게 약속과 질서, 대화와 설득 따위는 없었다.

  타인의 도움 없이는 ‘입고 먹고 싸고 자는 행위’가 스스로 되지 않는 가냘프고 연약한 생명은 눈부시게 귀했다. 하지만 모험과 성취는 사라지고, 돌보고 지키고 받아주는 일상은 기존의 삶에서 일상의 엄청난 구조조정을 일으켰다. 그것들은 시시때때로 사랑 혹은 모성애라는 이름으로 나의 변화와 변형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차내고 차내도 다시 내게로 굴러오는 ‘육아와 가사의 공’이 애초부터 여성을 향해 집중적으로 굴러온다는 것을 알게 됐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운동장은 엄마와 아내 쪽으로 가파르게 기울어져 있었다.  

  온 종일, 가사와 육아에 파묻혀 지냈고 남편의 야근은 밥 먹듯 이어졌다. 남편은 주말에도 일로 바빴다. 쉬는 날, 남편은 쌀은 씻어주었지만 식단을 고민하진 않았다. 심지어 뒤늦게 지쳐 퇴근한 남편에게 “당신은 퇴근이라도 했지, 나는 아직도 퇴근을 못하고 있다”고 받아쳤다. ‘임신과 출산, 모유수유가 아빠, 즉 남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것이었다면 이미 아이는 국가가 키우고 있을 것’이라는 책 속 문장에 줄을 박박 그었다. 나처럼 엄마가 돼서 아프고, 진통을 겪는 여성들이 쓴 책만 줄창 빌려다 읽었다. 아픔은 더 큰 아픔을 만나면서 위로가 됐다.

  워라밸? 코웃음을 쳤다. 그 말은 저 북유럽에 유모차 끌며 라떼를 마시는, 얼굴 모르는 ‘라떼파파’의 손에 든 우유 거품 같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엄마와 아내’로 사는 것에 허덕였던 나는 ‘아빠와 남편’까지 돌볼 여유가 내게는 없었다. 먹도록 설계된 입을 향해 도마질은 쉴 새가 없었고, 볶고 찌고 무치고 끓이는 부엌에서의 일상은 고단하기만 했다.

  퇴근 후, 아이들의 옷을 개던 남편이 말했다.

  “내가 육아휴직 하면 되잖아! 애가 둘이니까 각각 1년씩, 다 합해서 2년 어때?”

  “뭐라고? 정말이야?”

  지난해 봄, 우리 부부는 서로의 자리를 맞바꿨다.  

  내가 지키고 있던 ‘돌보고 지키고 받아주는’ 일상을 남편에게 인수인계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등·하원 보호자가 아빠로 바뀌었음을 알렸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비상연락망에 아빠 연락처를 먼저 적었다. 유치원 엄마들의 단톡방에 남편을 초대했다. 주변에서는 온갖 걱정의 말이 난무했다. ‘아이 아빠가 불쌍하다는 둥, 몇 개월 하겠냐는 둥, 엄마가 저렇게 일 욕심이 있어서, 쯧쯧…’

  남편과 내가 자리를 맞바꾸는 어쩌면 지극히 사적인 가정사에 말들이 많았다. 두 아이를 하나는 업고, 또 하나는 안고 집에 들어오는 남편을 향해 혀를 내두른 80대 할아버지도 있었고,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동네 엄마들도 있었다. 그 중에서도 유치원 원장님이 한 말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지성이네는 아주 공평한 집이에요.’ 마음으로 답했다. ‘그럼요, 아이에게 우리 부부의 유전자가 반씩 섞여있는데요.’

  일하는 엄마는 워킹맘이고, 일하는 아빠는 그냥 직장인이었다. 워킹맘은 아이들의 요일별 준비물을 일일이 알고 있지만, 그냥 직장인 아빠는 몰랐다. 아빠는 그저 아이의 유치원 이름과 반 정도만 알았다. 사위의 노동은 처자식을 먹여 살리는 숭고한 노동으로 칭송받았지만, 며느리의 노동은 자아실현을 위한 일 욕심으로 해석됐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과 부러움, 염려의 눈빛 속에서 인수인계 기간을 마쳤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세 남자를 두고 출근을 하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6살, 3살의 두 아들과 남편은 출근할 때마다 현관 앞에 나와 손을 흔들어줬다.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두 아이는 울고불고 난리를 부렸다. 퇴근 할 때에는 버스정류장에서 나를 종종 기다리곤 했다.

  먼 나라, 스웨덴 아빠의 손에 든 컵 속에 있을법한 ‘워라밸’ ‘저녁이 있는 삶’은 늘 갈구하고 열망했던 삶이었다. 아름다운 워라밸을 위해서는, 서로가 마시는 일상의 공기를 바꿔 마셔봐야 한다. 남편의 육아휴직은 서로 일상의 공기를 맞바꾸는데 충분한 역할을 했다.  

  출근한 지 2주가 흘렀을까. 오후 4시경에 남편에게 메시지가 왔다. 퇴근 시간을 묻는 내용이었다.

  “언제 와?”

  “왜?”

  “일찍 올 거 같아서”

  “밥하기 싫다ㅋㅋㅋ”

  내 눈은 ‘밥하기 싫다’에서 멈췄다. 하루세끼의 식단을 매일같이 고민해봐야, 할 수 있는 말이 아닌가. 남편이 안쓰러우면서도 고마웠다. 기울어졌던 운동장이 괴음을 토해내며, 수평을 맞춰가는 진통 소리를 냈다. 남편과 나눈 카톡 대화 화면을 캡처해,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제 남편한테 보여주고 싶네요. 제 남편은 언제쯤, 밥하는 것의 지겨움을 알까요?”

  엄마로 살고 있는 후배와 친구들의 댓글이 달렸다. 모두 내 남편이 밥하는 지겨움을 ‘알았으면’, ‘느꼈으면’, ‘이 글을 보기만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로 요약됐다. 나 혼자만 느끼는 감정이 아님을 느꼈다. 밥 짓는 노동에 대한 성찰은 이 세상에 입을 갖고 태어난, 누군가에게 밥 신세를 지어본 인간이라면 다 알아야 하는 의무이기도 했다.

  김치볶음밥과 된장찌개 그리고 계란후라이와 라면 정도만 만들어낼 줄 알았던 남편의 밥상은 넓어졌다. 고등어 김치찌개가 올라왔으며, 아이들 입맛에 맞는 다양한 요리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하원하는 아이들을 기다리는 유치원 엄마들 사이에서, 시댁 뒷담화를 하는 엄마들의 수다를 들으며, 그 안에서 남편은 육아와 가사로 점철된 엄마의 삶을 고스란히 살아냈다.

  “저는 안사람입니다. 편하게 이야기하세요.”

  유치원 엄마들이 시댁 뒷담화를 하다, 남편과 눈이 마주치면 남편은 이렇게 넉살좋게 말했다.

  남편의 육아휴직은 아이들에게 더 없이 좋은 삶의 배움터가 됐다. 성차별,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가정을 이루는 두 기둥이 서로 조화롭게 서 있는 것, 그것은 한 기둥이 다른 한 기둥의 노동과 고생에 기대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워라밸이며, 남편의 육아휴직은 깨졌던 삶의 조화를 다시 되찾아준 귀한 주춧돌이 되었다.

  사랑을 고백한 남녀가 사랑을 이어가기로 결심했고, 함께 살아간다면 그 사랑은 세월에 낡아지지 말아야 한다. 사랑은 깊어져야 하는데, 그 깊어지는 사랑은 일상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는 것을 해주는 작은 동작들로 이뤄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부부가 시간을 함께한다는 것의 가치는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는 시간들로 쌓아가야 함을 느낀다.

  아빠는 거실에서 신문을 읽고, 엄마는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 동화책의 장면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 늙은 어미의 손맛이 그리워 고향집을 찾아가는 중년의 아들을 그린 시를, 더 이상 지하철 역 스크린도어에서 만나고 싶지 않다. 밥 짓는 노동을 안다는 것은 연대가 필요한 일이며, 그러므로 동참해야할 일이다. 이것은 밥 타령이 아니다. 살아있는 자들의 아름다운 질서이자 규칙이다. 안다는 것은 그래서 고통 받는 일이며, 그래서 기꺼이 그 고통의 연대에 동참하는 일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을 되돌아보는 일은 소중하다. 삶의 균형과 조화를 맞춰가는 삶의 문화 양식은 이미 우리 젊은, 어린 세대들의 삶에서 피어오르고 있다.


<서울시 워라밸공모전 대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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