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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뜰밖 Jun 04. 2020

피차, 초파리끼리

홍대 '오늘은 초밥'에서 '대화 채집가'를 꿈꾸다

두 아이들을 친정에 떼어 놓고, 남편과 경의선 숲길을 걸었다. 신촌에서 살았던 두 달 동안의 생활을 정리할 겸 아쉽기도 해서, 이삿짐을 싸는 걸 멈추고 경의선 숲길을 향해 걸었다. 우리 앞으로 자전거가 지나갔으며, 우리 앞으로 강아지와 산책하는 이들이 지나갔다. 남편의 손을 잡고 걸었는데 정말이지 하나도 떨리지 않았다. 내 오른손이 나의 왼손을 잡을 때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그 느낌. 우리는 이렇게나 서로의 많은 공기를 공유하며 살아왔다. 


아담한 초밥집에 들어갔다. 대학생들과 중년쯤 되어 보이는 이들이 초밥을 향해 젓가락질을 하며, 술잔을 들이키며 말들을 섞었다. 우리도 한편에 자리를 잡고 주문을 했다. 아름답고 소박하게 올려진 모둠회를 보며, 두 아이들을 생각했다. "우리 지성이랑 서진이 같이 오면 진짜 좋아하겠다." 곧이어, 우동이 한 그릇씩 나왔는데- 우리는 우동 국물에 두 아들의 얼굴이 비친 듯, 또 아이들 이야기를 꺼냈다. "여기 메뉴가 다 우리 애들이 좋아할 메뉴야!"


면발을 건져 올리며, 우리는 맛있게 초밥을 먹었다. 대화는 간간이 이어지다가 끊어지기를 종종 반복했다. 초밥집은 금세 사람들로 가득 찼고, 옆 테이블에 앉은 대학생들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연인은 아니었지만, 이성친구인 것 같았다. 


"결혼해도 나는 애는 안 갖고 싶어. 아이를 별로 안 좋아하는 데다가, 애가 징징 짜는 걸 못 견디겠어."


'나도 그랬는데... 지금의 나도, 지성이와 서진이가 징징 짜면 그때만큼은 정말 세상 뒤집어질 듯 짜증이 솟구치는데...' 


테이블이 조금만 가까웠더라도 이 말을 덧붙일 뻔했다. 합석이라도 한 듯, 이들의 이야기는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 그러면서 나는 갑자기 꼰대가 되어, 말했다. 물론 속으로. 

'야-(초면에 죄송합니다) 너는 징징 짜면서 안 큰 줄 아니?'라고 말을 뒤집었다. 마음으로. 


그런데 다시, 그 여자 대학생도 말을 뒤집었다.

"근데 나는 진짜 부모가 되면 아이를 정말 잘 키우고 싶어. 이것저것 눈치 안 보고, 아이가 원하는 거 다 해주는 엄마." 


둘의 대화는 결혼과 연애, 출산을 옮겨 다녔다. 남자 대학생은 계속 들어주었다. 가끔 맞장구를 쳐주면서. 

이런 이야기도 나눴다. 부모가 결혼한 자식에게서 손주와 손녀를 원하는 것은 그냥 손주와 손녀가 보고 싶어서다. '보고 싶어서'에서 보고에 방점이 찍힌 듯, 유난히 보~고~ 싶어서 라고 말했는데- 정말 눈으로 사람을 보는 행위를 말하듯 가벼이 느껴졌다. 

 

그러다가 대화는 여자 대학생이 남친의 지인 결혼식이 지방에서 있었는데 남친을 따라갔다가, 남친의 부모를 얼떨결에 만나 함께 초밥까지 먹은 이야기를 했다. 


"나 와사비 못 먹잖아. 알지? 초밥을 먹으러 갔는데 남친이 와사비 발라서, 생선만 따로 올려줬거든. 그 어머니가 뭐라는 줄 알아? '얘, 너는 와사비를 못 먹니?' 와, 진짜 어떻게 그렇게 말하냐? 너무 얄밉지 않냐?" 


"자기 아들이 와사비 발라주고 그런 모습이 싫었나 보네."

남자 대학생 친구가 답했다. 




어느새 내 귀는 옆 테이블에 달라붙어 있었다. 남편과 나는 조용히 먹었지만, 그 몰입도는 거의 연극을 관람하러 온 관람객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한 연인이 초밥집엘 들어왔는데 그 남자가 우리 옆 테이블의 남자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거였다. 옆 테이블의 남자와 친구 사이였다. 그 남자는 나와도 눈이 마주쳤는데, 순간 나는 연극무대의 배우와 눈이 마주친 듯 움찔했다. 


대학생 시절, 나에게도 바람 부는 날이 있었다. 연인과의 사랑싸움, 밀고 당기기로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았던 시절.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머리가 하얗게 센 중년의 부부가 밥을 먹는 모습을 봤다. 둘은 아무 대화 없이 50년 넘게 밥을 먹어본 사람들답게, 능수능란하게 밥을 먹었다. 밥 먹는 일에도 연륜이 쌓이는지, 젓가락질마저도 입으로 향해 올라가는 각도와 속도에 낭비가 없고 숭고했다. 웃을 거 다 웃고, 떠들 거 다 떠들며 밥을 먹는 젊은 연인들과는 많이 달랐던 기억이다.  


우리 부부는 '오늘은'이라는 초밥집에서, 내가 예전에 만났던 중년 부부처럼 앉아 침묵과 벗하며 밥을 길어 올렸다. 수많은 말을 쏟아낸 입을 향해 초밥을 밀어 넣었다. 여전히 마음은 여리고, 잘 흔들려서- 젊은 사람들의 대화에 내 말을 덧붙였다가 빼보았다가를 반복했다. 친구가 되었다가, 꼰대가 되었다가, 고등학생이 되었다가 왔다 갔다 했다. 


남편과 호젓하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게 시간이 주어진다면, 저 '오늘은'이라는 초밥집에 지정석을 얻어 그곳에 오는 이들의 대화를 통째로 채집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편안한 이들과 나누는 대화에는 우리가 차이라고 느껴왔던 간극 속에 진짜 마음이 보석처럼 박혀 있다. 마치, 징징거리는 아이를 견뎌낼 자신이 없으면서도 아주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두 가지 마음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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