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악질을 하다가 절망감으로 더더욱 설 힘조차도 잃어버려 주저앉아 있던 하늘은 엄청난 굉음과 흔들리는 건물에 놀란 토끼눈으로 벌떡 일어났다.
“뭐야? 지진인가?”
사무실의 책장에 들어있던 책들이 투명인간이 장난스럽게 죄다 빼내는 것처럼 제멋대로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졌고 벽에 붙은 가구와 박사의 연구기기들이 바닥에 쓰러진 짐승인간들의 몸 위로 무너져 내렸다.
박사의 유언이 흘러나오던 모니터도 바닥에 떨어져 산산이 부서졌다. 지진에는 빨리 건물밖으로 나가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한 하늘은 짐승인간들이 사무실로 들어오면서 부수고 들어온 유리창을 향해 쏜살같은 몸을 날렸다.
다행히 박사의 사무실은 일층이라 유리창밖으로 통해서 나가는 일은 위험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다가 하늘은 뭔가 생각이 난 듯 멈춰서 뒤를 돌아보았다.
‘박사님.’
이제는 이 세상( 하늘은 이제 자신이 서 있는 이 현실도 어느 세상에 속하는지 구분이 가질 않았다 ) 사람이 아닌 박 지원 박사에게 짧게 명복을 빌었다.
과학도였다가 발견하게 된 수면 너머의 세계를 통해서 쾌락을 추구하는 인간들의 말로를 알게 되었을 때 박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늘이 방금 느낀 절망처럼 박사도 인간들에게 어떤 희망도 찾을 수 없다고 느낀 것이 아닐까?
그래서 연예인들과 쾌락에 빠진 타락한 생활을 즐긴 것이 아닌가?
하늘은 박살 난 유리창을 통해 도벳연구소밖으로 나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폐허가 된듯한 마당에는 어디선가 몰려든 짐승인간들이 서로 엉겨 붙어 싸우고 있었다. 서로 격렬하게 싸우는데 집중을 하고 있는지 하늘이 달려가는 모습에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고 피 튀기는 혈투에 매달려 있었다.
비가 내리는 거리를 뛰어가는 하늘의 머릿속에는 박사가 모니터 속에서 한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도벳 연구소가 자꾸 수면계와 인간계를 무너뜨리면 분명 악마들이 인간계로 봇물처럼 밀려들어올 것이고 사람들을 분노로 미치게 만들어 온 세상을 엉망진창으로 만들 것입니다. 그러고는 모든 사람들을 데리고 지옥의 구렁텅이로 다 끌고 들어갈 것입니다. 그것을 막을 유일한 방법은 구원검으로 수면 DNA지도를 찢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늘은 달리기를 멈추고 박사가 다운로드시켜준 무공으로 구원검의 위치 추적을 시작했다. 그러자 무공은 동해 상공에 있는 어느 악마가 구원검을 가지고 있다는 정보를 알려 주었다.
‘흠 그럼 내가 신호를 보내어 악마가 구원검을 들고 나타나게 유인을 해야겠군’
하늘은 물 위를 자유자재로 걸어 다닐 수 있는 절대무공인 무력답수無力踏水와 축지법을 이용해서 쏜살 같이 구원검이 위치한 곳으로 날아갔다.
쿠궁~
브니누소장의 비서였던 서니는 칼 스킨도 박사의 호출로 그의 사무실로 가다가 그만 엄청난 굉음에 몸의 중심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아.”
발을 접질렸는지 걸으려고 일어서는데 발목에 날카로운 통증이 스쳐 지나갔다.
“도..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지?”
분명 칼 스킨도 박사의 사무실에서 울린 폭발음이었다. 서니는 손으로 발목을 마사지한 뒤 천천히 벽을 기대면서 일어났다. 천장에 붙은 형광등들이 제각기 어지럽게 들어왔다 나갔다 하자 서니의 마음을 더더욱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도망쳐버릴까 생각하다가 서니는 호기심이 발동해 스킨도박사의 사무실로 다리를 절면서 향했다.
철컥.
박사의 사무실문의 손잡이를 돌리자 잠겨지지 않았는지 날카로운 금속음이 짧게 들리면서 문이 스르르 열렸다.
“박사님.”
서니는 용기를 내어 어두컴컴한 사무실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수면중독자인 브니누소장의 비서로 있으면서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많이 해서 특이한 상황에서 냉철함을 잃지 않는 서니였지만 자신을 호출하면서 맥시화학과 도벳수면연구소의 이사들을 다 죽여버리겠다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던 스킨도박사의 목소리가 생각이 나서 서니는 평소와 다르게 자신이 몹시 떨린다는 느낌이 소름처럼 등뒤로 지나갔다.
눈이 점차 어둠에 익어가면서 펼쳐지는 스킨도박사의 사무실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이게. 무슨 냄새지?”
마치 생선이 썩은 것 같은 비릿한 냄새가 서니의 후각을 날카롭게 후볐다. 손으로 코을 막고 사무실 전등스위치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찰칵찰칵
전등스위치가 고장 난 건지 전등이 날아가 벼렸는지 불은 켜지지 않았다. 서니는 다시 천천히 사무실 안쪽으로 걸어갔다.
“스킨도 박사님.”
서니는 스킨도박사가 돈을 매달 일정하게 주면서 브니누소장을 감시하라는 임무를 브니누소장이 죽기 전까지 완수해 왔었지만 인간적으로는 스킨도박사를 혐오하고 있었다. 돈이 궁해서 스킨도박사의 말을 따랐지만 자신에게 하는 말투나 행동은 거의 자신을 열등인간으로 취급하고 무시하였다.
“멈춰라.”
마치 눈앞에 마술이 펼쳐지듯 기분 나쁜 여자 목소리와 함께 스킨도박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서니가 보니 모습은 스킨도 박사인데 어울리지 않는 여자 목소리였다.
“……”
너무 놀란 서니는 돌처럼 굳은 체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흐흐흐 인간들이 만든 이 세상은 정말 아름답구나.”
“전 세계의 인간들아. 이제 내 말을 들어라. 나는 공매도라고 한다. 너희들이 지옥으로 가는데 길잡이 역할을 해줄 너희들의 유일한 친구지. 킬킬 킬.”
너무 놀란 서니는 그저 화면을 바라보았는데 화면 속의 여자의 이글거리는 빨간 눈동자는 서니의 영혼을 빨아들일 정도였다. 그래서 괴물로 변한 스킨도박사가 서니의 뒤에서 다가가는 것을 서니는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귀검마가 구원검으로 한반도와 일본의 지각판을 움직여 독도를 중심으로 하나의 땅덩어리로 만들고 사흘이 지나자 전 세계 곳곳에서는 6.0 이상의 강진과 쓰나미가 덮쳤다. 영문을 모르는 전 세계인구는 완전히 패닉상태에 빠졌고 정신적 공황으로 스스로 자살하는 사람들의 수가 급증하였다. 수면계와 인간계가 뒤틀리면서 생긴 빈틈으로 인간계의 영혼은 수면계로 빨려 사라졌고 비워진 인간의 육체에는 악마족의 본능을 담은 악령들이 그 자리를 메웠기에 도벳수면소가 위치한 한국의 서울시와 미국 로스앤젤레스시 두 곳에는 분노에 휩싸인 짐승 같은 사람들로 거리가 가득 메워졌다. 사람들은 왜 두 도시의 사람들이 짐승 같은 폭도로 변하는지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냥 공포에 휩싸여 혼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귀검마는 한반도의 공중을 날아다니면서 이런 혼란을 마치 좋은 경치를 구경하는 듯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즐기고 있었다.
‘어차피 같이 지옥 갈 인간들이 죽기 전에 먼저 지옥을 경험하는 기분이 어떠냐?’
귀검마는 인간들이 잠이 들어 꿈을 꿀 때 얼마나 죄를 좋아하고 지옥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끔찍한 죄를 짓기 위해 수면 속에 들어왔다. 꿈속에서 간음과 탐욕을 마음껏 즐겼다.
그나마 수면계의 주식무림계의 구원검파와 주신파 그리고 천문파가 인간들의 영혼을 보호해 주는 역할을 했었지만 인간들이 이기적인 쾌락을 선택하면서 인간들의 영혼파멸은 점점 심각해져 갔다. 특히 인간계에서 끔찍한 살인이나 강간을 저지르고 인간이 가지는 특유의 양심이나 영혼의 슬픔등은 전혀 없는 무영혼의 사이코 패스 인간들이 나타나 악마족들도 놀라는 일이 발생했다.
귀검마는 이제 점점 다가오는 ‘그 마지막 날’이 아무 일 없이 다가오길 모든 귀기를 세우고 인간계 구석구석을 샅샅이 살펴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라? 뭐지? 이 엄청난 무공은?’
다른 엄청난 무공이 인간계와 수면계가 찢긴 틈사이로 번개와 같은 속력으로 다가오자 귀검마가 빌린 몸인 묘 원장의 눈알은 휘둥그레졌다.
‘느낌이 좋지 않아. 무언가 일이 벌어질 것 같아.’
귀 검마는 지각변동을 더 크게 일으켜 인간들의 영혼을 더더욱 지옥으로 데려가기 쉽게 공포 속으로 몰아넣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손 끝에 수면계의 괴물 용을 불러오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스르르르르
귀검마가 주문을 완전히 끝마치기도 전에 수면계와 인간계 사이의 틈 사이로 머리가 7개인 칠 두 마룡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르르르르르
칠 두 마룡의 으르렁거림은 조용하면서도 극도의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였다. 표범의 얼굴과 비슷한 데다가 머리에는 10개의 날카로운 뿔이 나있고, 뿔 끝을 자세히 보면 왕관 같은 모양으로 되어있었다. 칠 두 마룡의 얼굴에는 멀리 서는 보이지 않지만 가까이서 보면 고대그리스어로 주로 절대자를 저주하는 내용과 ‘무신론’과 ‘절대자가 과연 있느냐는 빈정거리는 신성모독의 내용이 문신으로 촘촘히 비늘처럼 새겨져 있었다.
“크흐흐흐 칠 두 마룡 너의 힘을 온 세상에 보여라. 방금 인간계로 들어온 무공을 추적하라”
귀검마의 외침에 칠 두 마룡은 지축을 울리는 크기의 괴성을 질러댔다. 귀검마는 마치 자신이 칠 두 마룡을 존재케 한 듯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