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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ssam Feb 06. 2016

[소소한 데이트-쿵푸팬더3]

성장통 #part37

"6일 오후에는 무조건 시간 비워놔!"

"왜?"

"엄마 일 마치고 영화 보러 갈 거야!"

"뭐 볼 건데?"

"쿵푸팬더"

"에? 엄마 애니메이션 싫다며~"

"내가 언제? 싫은 것도 있고 좋은 것도 있는 거지"

"꼭 영화를 봐야 해?"

"왜? 싫어?"

"몇 시꺼 볼 건데? 나 무도 봐야 되는데~"

"엄마랑 영화 보러 가는 거보다 무도가 더 중요해? 가지 말까?"

"그게 아니구~ 알았으니까 예매 해!"


나는 무작정 녀석한테 데이트 통보를 했다

무도 봐야 한단 말에 잠시 서운해서 불쑥 심술이 났지만, 다행히 잘 넘어갔다


한 달에 한 번 같이 바람 쐬러 갈 여유도 없이

하루에 한 번 마주 앉아 밥 먹을 짬도 없이

그렇게 방학을 보내고 있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해서

나는 억지로 시간을 만들었다


사실 녀석은 전혀 아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엄마보다 친구가 더 좋은 나이

잔소리쟁이 엄마가 없어야

문을 열고 방에서 나오는 나이

자라는 녀석에게 아쉽고 서운한 건 늘 나다

그렇게 나는 늘 녀석에게 엄마랑 놀아달라고 떼를 쓰고 있다



일단 며칠 전부터 머릿속에 계획들이 가득 들어찼다

진짜로  남자 친구와 데이트를 기다리듯

두근두근 설레기까지 했다

녀석과 이렇게 보내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서로 기분이 좋은 날을 맞추기도 하늘에 별따기인 요즈음

그저 이런 작은 일상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졌다


안경도 새로 맞춰 주고

점심은 뭘 먹을까

영화 보고 뭘 할까


혼자서 이런저런 궁리를 하며 오랜만에 기분이 좋아졌다






고집스러운 녀석은 몇 년 동안 안경테 하나로 버텨왔다

몇 번 바꿔주려 했지만  그때마다 녀석은 이것저것 써보고는 다 싫다고 했다

그러다가 드디어 큰 결심을 하고 안경테를 바꾸기로 해서 지인이 계시는 대학로 안경점을 찾았다


오랜만이라 시력검사를 다시 했는데 전보다 두 단계 정도 시력이 떨어졌다는 얘기에 녀석은 부끄러운 듯 얼굴이 빨개졌다

다시 시력을 조정해서 새로 맞춘 안경은 전보다 조금 가볍고 깔끔해 보여서 좋았는데

녀석은 몇 년간 익숙하게 쓰던 안경을 바꿔서인지

나와서 내내 불편하고 어색하다며 투덜거렸다

"이상해~ 불편해~ 테가 다 보이잖아!"

"첨이라 그렇지 조금 지나면 괜찮아져~"

"어지러운 거 같아!"

"몇 시간 있어보고 그래도 그러면 다시 가보자~"

녀석을 달래서 일단 점심을 먹으러 갔다



※ㅋㅋㅋㅋㅋ 관리좀 잘하자 딸!!!






영화관 앞에 있는 즉석떡볶이집에 가서

오붓하게 2인 세트를 시켰다

떡볶이랑 샐러드를 먹고 나서

밥도 볶아 먹었다

녀석이 좋아하는 치즈도 추가하고


이제 중3이 되는 녀석은

이런저런 자신의 장래 문제로

할 말이 많은 듯

이것저것 얘기를 꺼내놨다


기분도 좋고 진지한 녀석에게

혹시나 고리타분한 엄마세대의 생각을 강요하는 일이 생길까 봐 오늘은 최대한 들어주고

천천히 여러 가지로 의논해 보자고 했다


아마도 집에서 밥을 먹었다면

녀석은 핸드폰을 한 손에 들고

엄마 얼굴도 마주 보지 않은 채 밥만 먹었을 텐데

아니면 서로 얘기하다 의견 차이로 큰소리를 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밖에 나와 먹으니 서로 조심도 하고 배려도 하고 좋은 점이 많구나 하며

녀석과 중요한 얘기를 해야 할 때는

이렇게 데이트 신청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시간이 다 돼서 우리는 부랴부랴 영화관으로 이동했다

큰 기대 없이 가볍게 보려고 선택한 영화는

다행히 성공적이었다

소소하고 귀여운 요소요소들이 녀석과 나의 무뚝뚝한 관계를 무너뜨리기에 딱이었다

물론 1편에 비하면 재미가 덜한 건 사실이었지만

보는 내내 녀석과 함께 웃을 수 있었다는 것으로

나는 백 프로 만족한다


할 수 있는 것만  계속한다면 발전은 없는 거란다



귀여운 시푸 사부의 한 마디 교훈까지 얻어 온 오늘 데이트는

기분 업된 녀석의 어설픈 쿵후 판다 놀이로  마무리했다ㅡ.ㅡ;;;;;


※앞머리를 잘랐으면 좀 더 완성도 있었을텐데 딸램 지못미ㅠㅠ;;;



영화를 보고 나오다가 의류 할인 매장에서

데님 스커트와 맨투맨티도 하나씩 착한 가격에 득템한 녀석은 부쩍 수다스러워진 것이

오늘 데이트는 굿 쵸이스였다


녀석의 말문을 닫게 한 게 한 것이

내가 아닐까 하고 순간 가슴이 내려앉았지만

지금은 다 잊고 녀석과 좋은 기억만 남기고 싶다


집에 온 녀석은 그리도 싫어하는 수학 숙제마저 짜증내지 않고 하고 있다

요즘 여러 가지 힘든 일로 지친 엄마 눈치를 보느라 녀석도 많이 힘들었을 텐데

이렇게 몇 시간도 녀석과 함께 하지 못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고 미안해졌다



숙제를 다 마친 녀석이 부른다

" 엄마, 같이 볼래?"

오늘 저녁은 녀석이 좋아하는 치킨을 시켜놓고

같이 무도를 봐야겠다



딸, 오늘 엄마랑 놀아줘서 고마워♡

글, 사진: koss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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