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ossam Jun 26. 2016

[Happiness is...?]

성장통 #part48

아침에 일어나니 녀석이 보낸 카톡이 와 있었다

일단 너무 긴 카톡에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 녀석의 카톡은

나를 웃게 만들었다

내용인즉슨, 아래와 같았다



엄마 일단 늦은 시간에 미안해.

이번 주 일요일이 헤드윅 막공인데 내가 아빠랑 얘기하다가 공연 한 번만 더 보고 싶다 ㅠㅠ 이런 얘기가 나왔어. 그래서 아빠가 정 보고 싶으면 표 구해주겠다고 하는 거야.

근데 시험 전전주이고 해서 엄마가 안된다고 할 수도 있는데

안되면 양도하면 되니까 일단 구해달라고 했어. 그래서 오늘(6/25) 표를 구해주게 됐어.

미리 얘기 안 한 거는 아까까지도 갈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고 할 것도 다 안 하고 얘기 꺼내면 안 될 것 같아서 안 한 거야. 내가 최대한 오늘 할 거 다 하여놓고 얘기하려다 보니까 시간이 너무 많이 되어버렸네


오늘 공연을 꼭 봐야 하는 이유는 오늘이 세미 막공이어서 이번 공연 끝나면 언제 다시 헤드윅이 할지 모르고 다시 한다고 해도 변요한이 다시 올지 안 올지 모르기 때문이야. 물론 변요한 때문에 보는 건 진짜 절대 아니고 목숨 걸고 아니야.

이 뮤지컬은 한 번만 봐서는 이해할 수 없고 잘 알아보고 가면 그만큼 더 많은 거를 느낄 수 있는 뮤지컬이야. 처음 보러 가면 그만큼 놓치는 거도 많고 이해 안 되는 부분도 많대. 근데 지금 시기가 시기인만큼 (그리고 돈도 돈인 만큼) 그냥 한번 본 걸로 만족하려고 했는데 막공 날이 가까워질수록 너무너무너무너무x100000 한 번만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지는 거야 ㅠㅅㅜ

이번에 안 보면 진짜 너무 후회할 거 같고 그런 느낌이 들어.


그냥 간다는 건 아니고 내일 가기 전까지 아홉 시에 일어나서 공부하다가 갈게. 화장실 가고 밥 먹는 시간 빼고 핸드폰 구석에 처박아놓고 공부만 하다가 갈 거야 만약 허락해준다면...

물론 뮤지컬 보러 안 가도 시험 일주일 남았는데 하루 종일 공부해야 하는 건 맞지. 음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네

그래도 진짜 절대 딴 거 안 하고 티비도 다 포기하고 공부만 하다가 갈게. 이것 때문에 시험공부에 영향을 주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야.

네가 어떻게 알아!!라고 할 수 있지만 엄마가 어렵게 결정할 만큼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할 거라는 뜻이야.

진짜 탐탁지 않을 거라는 거 나도 잘 알아. 그래서 이렇게까지 길게 얘기하는 거야. 바로 안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최대한 좋은 쪽으로 생각해줬으면 정말 너무 좋겠어.


(만약 간다면) 공연 시작은 7시인데 티켓 현장 수령을 해야 해서 한 4시쯤 출발해야 할 거 같아. 서울 공연은 끝나고 수원에서 하는 공연이라서 지하철 타고 두 시간쯤 걸릴 거 같아. 공연은 두 시간반쯤 하니까 9시 반 좀 안돼서 끝날 거 같고 집에 오면 11시 넘을 거 같아.

여기가 또 문제인 부분인데 늦게 다니면 위험하다고 할 거지? 근데 막차가 12시 44분이어서 11시는 아직 사람 많은 시간이야. 저번에 콘서트 갔을 때랑 서울 공연 갔을 때도 열한 시쯤 지하철 타고 왔는데 사람 많이 있고 괜찮았어.


마지막으로 공연 보게 보내주면 내가 시험 잘 보고 싶은 마음에 엄마가 고마운 마음이 더해져서 더 열심히 공부할 거 같아. 공연 보러 가고 싶어서 그냥 하는 말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는데 나는 진짜로 그렇게 생각해. 뭐 이건 믿고 싶으면 믿고 안 믿기면 말아.......


결론은 내일 4시에 나가서 헤드윅 공연 보고 11시 넘어 집에 오는 거를 허락해주세요. 야. 이걸 얘기하기 위해 4시까지... 이것도 참 엄마가 맘에 안 들어할 부분이네.... 내가 늦게까지 깨어있었다는 거는 생각하지 말 아조... 수요일에 한글대본을 썼어야 하였는데 생기부 안 들어간다고 안 할래! 하는 바람에 어제오늘 다 하느라 그런 거니까...

이거 부탁 때문에 또 보내주고 싶은 마음과 위험하고 시험공부나 더 했으면 하는 마음이 갈등하게 해서 미안해. 그렇지만 보내주는 게 어떨까...? 나는 이 뮤지컬이 내 가치관과 미래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해. 배운 거도 많고...... 저번에 엄청 감동받아서 눈물 날 뻔도 했고 ㅠㅠ 이제 사족은 그만 달게 엄마 부디 좋은 쪽으로 생각 해조~~~^-^



읽다가 결국 웃고 말았지만

한동안 녀석의 말대로 나는 갈등을 하고 있었다

이미 지난 중간고사 끝나고

혼자서 헤드윅 서울 공연을 보고 온 녀석이었다

비싼 뮤지컬을 두 번씩이나 본다고 하고

날짜가 시험 전주이니 무조건 그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늘 녀석에게 무언가를 얻고자 할 때는

그만큼의 책임과 노력이 따라야 한다고 가르쳤다

하루하루 힘든 일상으로 지친 부모들에 비해

원하는 것은 뭐든 쉽게 얻어지는

요즘 아이들의 정서와 개념에

나는 뭔가 중요한 것이 결핍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귀한 딸 하나를 키우며

최대한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고

최대한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

애쓰며 살아왔다


하지만 무조건 뭐든지 해줄 수는 없다

여행을 가고 싶으면

미리 할 일을 정리해 두고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용돈을 아껴서 저축하고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집에 있는 간식들을 먹고 나서 살 수 있도록


물론 중학생이 되어서는

가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우기기도 하고

약속을 안 지키고도 늘 당당한 녀석 앞에

무너졌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녀석을 대하는 내 태도는 늘 한결같았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정말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래서 나는 이런 경우

시험 끝나고 가라든지

다른 제안으로 녀석을 설득하거나

들어주는 대신 조건을 달아서 책임을 지도록 해왔다



그런데 이번엔 조금 달랐다

한 달 전 남쪽 여행 중 녀석이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우리 딸은 언제가 제일 행복해?"

"공연이나 콘서트 볼 때!"

"여행 갈 때 아니고?"

"여행도 좋고~"

"그렇구나~ 우리 딸 돈 많이 벌어야겠네?"

나는 녀석이 언제 제일 행복한지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녀석이 행복해하는 것을

넘치도록 해주고 싶었다

이제 엄마품에 얼마나 있을 거라고

싫어하는 것이 가득한 세상에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살게 해주고픈

그저 딸바보 엄마로 살고 싶었다


또 새벽까지 고민하며 보낸 녀석의 긴 편지에

간절함이 느껴졌다

이것저것 해달라는 것은 많았지만

이렇게 간절히 엄마가 안된다고 할 이유에 대한 반론까지 준비해 가며 요구사항을 전달한 적은 없었다


그 마음을 기억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 마음에 상처가 되지 않게

잘 넘겨서 행복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또 그렇게 자신이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도록 믿고 지켜봐 주고 싶었다

그렇게 말이 아닌 마음으로 늘 엄마가 얘기하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직접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냥 한 번의 에피소드로 스쳐 지나갈 일이 될 수도 있지만 나는 또 작고 예쁜 희망을 잡아보려 한다


녀석은 공연장에 도착해서

사진도 보내왔다

고마워서일까

뜨거운 공연장 열기에

환하게 웃으며 환호하고 있을 녀석을 떠올리며

나도 녀석과 함께 행복해진다


큰소리 내지 않고 녀석을 보내준

나 자신에게도 조용히 칭찬을 해본다




한 가지 밤길 위험한 세상에

혼자 갔다 온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바쁜 엄마라 데리고 가주지 못하는 것도 미안했고

늦은 시간 혼자 와야 하는 것이 걱정이 됐다

늘 위험하다고 잔소리를 했지만

녀석은 아직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 이따가 녀석을 마중 나가려고 한다

들어오면서 녀석이 좋아하는 떡볶이도 사들고 와서 공연 얘기도 들어볼 욕심이다


또 바쁜 일 끝나고 나면

돈도 살짝 모아뒀다가

다음엔 녀석이 제일 행복한 순간에 함께 해야겠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도 녀석의 손을 잡고

노래 부르고 소리치며

함께 했던 콘서트, 뮤지컬 공연장에서

무척이나 행복했었다


함께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시간과 추억

녀석과 나

그리고 세상의 모든 가족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글: kossam 

사진: daye



※서울공연때 변요한이 입었던 티셔츠를 커튼콜 하다가 던졌는데 그걸 딱 받아온 녀석~^^;;;
이전 23화 [중딩의 벚꽃엔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