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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ssam Jan 17. 2019

[초보 고딩엄마의 분리불안 극뽁일기 24]

#생애 첫 다큐


2학년 1학기 전공 수업에서 녀석들은

다큐멘터리를 만든다


1인 1다큐 과제로 시작하지만

프로젝트 규모에 따라 2인 1조가 되기도 한다

주제를 먼저 정하고
한 학기 동안 폰이나 디카로 촬영한 것을

6월까지 편집해서 제출하는 것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번듯한 기획안도 있고

꽤나 많은 분량의 영상이 있어야 했다

내레이션과 자막, 배경음악, 엔딩 크레디트 등

후속작업들도 만만치 않았다


장애견에 대한 다큐를 찍기로 두 녀석은
장애견을 키우는 견주들을 만나러

부산으로 천안으로 다니며 부지런히 인터뷰를 했고

가족 다큐를 찍는 녀석은 가족 여행까지

담겠다며 열심이었다


나는 녀석이 뭔가 의미 있는 주제를 선택하길 기대하며

가끔 만날 때면 궁금해서 물어보기도 했지만

마감 한 달 전까지도 녀석은

갈피를 못 잡는 것처럼 보였다


도움이 될까 해서 카톡으로 보내준

롯데호텔 호캉스 공모전을

며칠 동안 들여다보지도 않았던 녀석은

친구를 데리고 천안에 내려온 주말

분식집에 가서 점심을 먹다가

"엄마가 보내준 거 봤어?"

"아니!"

"그럴 줄 알았어"

"지금 보면 돼지"

그제야 녀석은 미안한지 폰을 뒤져본다

"우리 이거 해볼까?"

"이 공모전에 응모하는 것부터 찍자~"

친구랑 쿵작이 맞았지만 나는 불안했다

"3일 남았는데 할 수 있겠어? ppt 만들어야 할 건데"

"한번 해보지머"

"진작 살펴보지 꼭 그러더라"

그때까지도 나는 큰 기대는 없었다

날짜도 촉박했고

행여 공모전에 된다 해도

정해진 롯데호텔에 가서 촬영을 하고

편집까지 하려면

다큐 마감 날짜가 촉박할 것 같았다

그래도 뭔가 하고 싶은 것을 찾은 걸로

다행이다 싶었다

하지만 결국 공모전 마감 날

녀석들은 메일 전송이 5분 늦어지는 바람에

신청조차 하지 못하는 웃지 못할 결과를 낳았다

나는 또 잔소리를 한바탕 쏟아붓고는

공모전은 물 건너갔으니 잊어버리고

다큐는 다른 걸로 잘 준비해서 내라 한 뒤

잠시 신경을 끊어버렸다




녀석에게서 다큐 마감 며칠 전쯤 전화가 왔다

"엄마, 쌤이 나 잘했대"

"뭘?"

"다큐 찍은 거"

"아, 그래?"

"생각보다 잘 나왔다고"

"생각보다?ㅋㅋㅋ 그래 축하해!"

다행히 수행평가 점수는 잘 나오겠다 싶어

기분 좋게 전화를 끊고 나서는

얼른 녀석의 다큐를 보고 싶어 졌다


하지만 녀석은 편집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보여줄 수 없다며

무슨 내용인지 누가 나오는지도 모른 채 기다려야 했다


'2018 대한민국 청소년 미디어대전'에 내야 한다면서

녀석은 날마다 편집에 몰두했다

그저 전공 수행평가 인 줄만 알았던 나는

대회에 낼 거면 좀 더 잘 준비해서 해보지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단편영화처럼 다큐멘터리도 전국에서 열리는

영화제에 출품할 수 있다는 것을

무지한 엄마는 그제야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쉬움을 뒤로할

결과가 보이기 시작했다

수행평가 성적표에

녀석의 다큐는 꽤나 높은 점수를 받았고

2인 1조로 진행한 두 팀과 함께 칭찬을 받았다고 했다


선생님께서는 다큐 평가 겸 시사회 때까지

과정이 보이질 않아서 답답해하고 계셨는데

시사회 때 낸 작품을 보고 깜짝 놀라셨다고 하셨다

편집에서 조금 아쉬움이 보여서 만점을 받지는 못했지만

나는 그저 신기해서 도대체 뭘 찍었나

더 궁금해졌다




녀석의 생애 첫 다큐멘터리

제목은 '실패하는 다큐멘터리'였다

참으로 녀석다운 제목이다

호캉스 공모전 실패로 소재를 얻은 녀석은

실패하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어 졌다고 했다

공모전에 실패한 본인의 에피소드를 오프닝으로 하고

사랑과 도전에 실패한 경험이 있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들 뒤로

할아버지의 경험담과 조언과 청춘을 응원하는 메시지로

끝나는 코믹하고도 진지한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졌다


주제가 일관성 있고 확실히 드러나야 한다는

평가 기준에 가장 부합하면서도

녀석만의 귀여운 위트가 깨알같이 담겨있었다

녀석의 내레이션도 차근차근 귀에 쏙쏙 아주 잘 들렸다


보는 내내 웃음을 자아냈고

끝나고는 여운이 남았기에

다행히 블랙아웃이 너무 자주 보인다는
편집의 아쉬움은 그리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녀석의 다큐는

몇몇 청소년 영화제에서도 주목을 받았고

가족들과 지인들에게도 호평을 받았다

가족 시사회에서는

외삼촌과 외할아버지가

서로 본인 때문에 성공한 거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딸바보 엄마라 손가락질을 해도

내게는 녀석의 소중한 첫 작품이다

언젠가 녀석이 처음 썼던 글을 모아

책을 만들었던 그날처럼

설레고 감사한 마음이다


크고 무거운 주제나

요즘 이슈가 되는 주제는 아니었지만

녀석의 첫 작품은

녀석에게도 나에게도
소중하고 감사한 경험과 추억으로

새겨질 것이다




그중에는 더 큰 성과를 얻은 친구들도 있었지만

이 과제를 결국 내지 않은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수행평가로서가 아니라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보아도

스스로 무언가를 열심히 해서 얻어낸 결과는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값진 경험이기 때문이다


몇몇 영화제를 거치면서

녀석의 재미있는 제목도 한몫한 듯 보였다

한 시상식 사회자는 진심으로 재미있어하면서

'실패하지 않고 여기까지 올라오셨네요' 했다

녀석의 실패와 녀석의 성공

더 나아가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는 청춘들

그리고 꿈을 잊고 살아가지만

결코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실패하지 않은 우리 중년들까지

나는 녀석과 함께 응원한다


늘 아이 같기만 했던 녀석의

깊은 속을 들여다본 듯

청춘들의 아픔 속에서 희망을 본 듯

뭔가 개운한 기분이 든다

또 그 시절의 내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되고

살아가야 할 내 모습을 그려보게 되는

작은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더불어

뭔가 대단한 영화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도

(물론 그런 기획과 과정을 거치는 규모가 크고 멋진 다큐도 있지만)

일상을 기록하고

진실을 담아내는 것으로도 충분히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다큐멘터리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 나처럼

많은 사람들이

다큐멘터리에 더 관심을 갖고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정다예감독 [실패하는 다큐멘터리 2018

https://youtu.be/BfEINTibgbI






글ㆍkoss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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