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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ssam Feb 15. 2019

[초보 고딩엄마의 분리불안 극뽁일기 25]

그해, 여름 #첫 번째 이야기


녀석들의 영화 워크숍은 일 년에 두 번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 진행되지만
늘 학기가 시작하면서 준비에 들어간다

장비와 스탭 문제로 아무 때나 찍을 수가 없고

그래서 더 시나리오나 콘셉트에 제약이 생기는

안타까움이 존재하지만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 있어서

지금까지 진행해온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시나리오 

학기 중에 녀석들은

방과 후 수업을 통해 시나리오 작업을 한다

선생님과 끊임없는 컨펌을 통해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데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처음부터 다시 쓰는 녀석들도 있고

쓰다가 포기하는 녀석들도 있다

그만큼 모두가 잘하기에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1학년, 2학년 모두 시나리오를 쓰고 나면

6월 초쯤 워크숍에 올릴 여덟 작품을 선정한다

여름 워크숍엔 2학년들 위주로 작품을 올리고

겨울 워크숍엔 1학년들 작품도 같이 올린다

녀석의 다큐에서도 나오지만

연출자를 뽑는 날엔 아이들 모두가

들뜨고 긴장한 모습들이었다

([초보 고딩엄마의 분리불안 극뽁일기 24]#생애 첫  다큐])

엄마들 역시 같은 마음으로 함께 기다리다

뽑힌 녀석들은 축하해주고 그렇지 않은 녀석들은

위로하며 다음을 기다려야 한다


녀석은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늘 그랬듯 내게는 1도 오픈하지 않았다

내용도 진행상황도 모른 채

결과만 기다리고 있었다

전화기 넘어 녀석의 목소리엔 실망이 가득했다

"엄마, 나 안됐어.."

"그래? 열심히 했는데 어쩌니.. 될 것 같다더니"

"콘셉트가 비슷한 친구가 있어서 그렇대.."

"그랬구나, 속상하겠다 우리 딸"

"내 시나리오가 부족해서 그렇겠지.."

이번 워크숍을 기대하며
지난겨울 워크숍에 가장 많은 스태프로 뛰면서
한파를 견뎠던 녀석과 녀석의 절친들 중에

이번에 뽑힌 녀석이 한 명뿐이라

조금은 불합리한 결과라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녀석들도 기운이 많이 빠진 모양이었다

선생님이 바뀌시면서 인수인계가 잘 되지 않았고

수업스타일도 선생님 성향도 크게 차이가 나서

그런 거라 위로하면서도 나 역시 서운함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틀 후, 녀석이 천안에 내려와 있는데
담당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녀석이 내내 마음에 걸려서 연락하셨다고

이번 영화제엔 아홉 작품을 올리더라도

원하면 같이 가보자고 하셨다

녀석은 지금 시나리오가 겨울에는 어울리지 않아서

꼭 이번에 찍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

장비나 촬영 날짜 등등 몇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었지만

결국 녀석은 2018 하계 워크숍 마지막 연출자로 결정되었다




뭔가 시작이 개운하진 않았지만

이미 결정은 되었고 녀석의 눈이 반짝였다

더 이상 뒤를 돌아다볼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한 번이 될지 두 번이 될지 모르는 기회이니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준비해야 했다



#스탭 선정

영화전공은 1, 2학년 합쳐봐야 30명 정도이다

이전 브런치에서도 자주 언급했었지만

적은 인원으로 9개의 영화를 찍어야 하기 때문에

녀석들은 서로의 영화에 스태프로 참여한다

1학년들은 이것저것 해보면서 배우기도 하고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는 시간을 갖지만

2학년들은 거의 역할이 정해진 경우가 많다

두 번의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같이 협업하는 과정에서 터득한 경험들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분야를 맡는다

대부분 연출자가 먼저 메인스탭을 맡아줬으면 하는 친구들에게 프러포즈를 하면 그 친구들이 수락하거나 거절하는 방식으로 결정이 된다

크게는 연출부/ 제작부 / 촬영과 조명부 / 사운드 / 현장편집으로 나뉘는데 각 부서마다 대장이 있고

녀석들 용어로 한 두명씩 꼬리들이 대장을 돕는다

영화마다 3일 정도 스케줄을 정하고

1, 2 학년이 모두 모여 각 영화의 스탭을 결정하는데

많이 참여하는 녀석들도 있고 적게 참여하는 녀석들도 있다

물론 개인 스케줄로 빠지는 경우도 있고
연출을 맡은 친구들은 자기 영화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참여 작품수를 제한하지만
연출자들의 콜이 많아 많은 작품에 참여한다는 것은 그만큼 일을 잘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녀석은 연출부쪽의 일을 좋아하는 편이다

이번 워크숍엔 녀석의 작품이 있어서

스탭으로는 조연출을 포함해서 다섯 작품에 참여하게 되었다

늘 녀석의 빈 자리가 허전한 나에게는

반가운 결과는 아니었지만 ㅠㅠ

그렇게 또다시 녀석의 여름방학은

워크숍 촬영 스케줄로 꽉 차 버리고 말았다


#배우 오디션

배우는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다

학생 역할은 서공예 1,2, 3학년 연기전공 친구들에게

오디션 공고를 먼저 한다

신청한 배우들에게 조연출이

연락을 해서 오디션 시간을 정하고

대본을 준비해서 오디션을 본다
여러 작품에 신청하기 때문에

배우가 겹치는 경우도 있다

경쟁이 치열할 경우 2차 오디션까지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학생 배우가 아닌 어른 배우나 아역 배우는

필름 메이커스 공고를 통해 신청자를 받은 후

외부에서 오디션을 보는데

이 경우 직업 배우들인 경우

약간의 출연료를 지급하기도 한다

엑스트라의 경우는 보통 연출자가

친한 연기전공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현장 스태프들이 직접 엑스트라로 출연하기도 하고

도와주러 왔던 부모들이 직접 출연하거나

목소리 출연으로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렇게 오디션이 끝나면

찍어둔 영상을 보고 선생님과 의논하여

최종 결정을 한다

녀석의 배우는 남, 녀 배우 1명씩과

선생님 배우 1명

그리고 다수의 엑스트라가 필요했다

처음에 뽑은 남학생은 모든 연출자들의

0순위 배우였는데

하필 그즈음 드라마에 캐스팅이 되어

촬영 날짜를 장담할 수 없어 아쉽게도 포기하고

1학년 연기전공 후배 중에 다시 뽑아야 했다

대신 처음에 뽑혔던 녀석이 고맙게도 대본 리딩 시간마다

와서 연기지도를 돕기로 약속했다

여학생 배우도 1학년이어서

풋풋하고 귀여운 둘의 케미가 기대되었다

선생님은 대학시절부터 연극을 하고 있는

내 친구에게 부탁해서 흔쾌히 허락을 받았다

이렇게 배우캐스팅도 마무리 되었다



#장소 섭외

녀석의 영화 준비 중 가장 큰 난관은 장소 섭외였다

보통 학생 영화들은 여러 가지 한계들이 있어서

학교, 연출자 집, 집 근처 골목, 가까운 카페나 가게 등을

섭외해서 촬영하는 경우가 많다

많게는 스무 명 정도가 이틀 동안 숙박을 해야 하기 때문에

천안으로 와서 촬영을 하려고 했으나

녀석이 한강 공원과 다리 촬영이 필요하다 해서

고민 끝에 서울에 숙소를 잡기로 하고

촬영 장소 섭외를 시작했다

필요한 장소는

학교 옥상, 체육관, 교실, 운동장

화장실(회상씬)

선유도공원

선유교

양화 한강공원

처음 들었을 때는 이동시간부터 이동수단까지

모든 것이 막막하기만 했다

학교 씬은 학교 섭외가 쉽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출신중학교나 서공예에서 찍는다

그런데 녀석이 다니던 중학교는 다른 촬영 장소에서

거리가 너무 멀고

당연히 가능할거라 믿었던 서공예는

주말 촬영이 안된다고 했다

금토일로 잡힌 녀석의 촬영 날짜를 바꿀 수도 없어서

학교 섭외가 시급해졌다

교실과 운동장, 옥상과 체육관까지 써야 해서

허락받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거의 2주간 중, 고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수십 곳에 전화를 해봤지만 대부분 거절이었다

겨우겨우 지인을 통해 허락받은

인천 석남중학교에 공문을 보내고

드디어 토요일 촬영을 허락받았다

그런데 체육관에 2층 스탠드가 없어서

교실과 운동장만 쓰기로 하고

옥상과 체육관은 다시 알아보기로 했다

녀석은 중앙대학교 옥상과 체육관을 마음에 들어했는데

일요일은 안된다고 해서 또 좌절ㅜㅜ

이후에도 여기저기 계속 알아보다가

결국 체육관은 용산구문화체육센터에

비용을 지불하고 일요일 오전 세 시간을 빌렸고

옥상은 석남중학교에 직접 방문해서 촬영 허가를 받아냈다

화장실은 숙소 근처에 한 주상복합 아파트 화장실에서

새벽 촬영을 허락받았고

마지막으로 선유도 공원과 양화 한강공원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촬영 날짜와 시간을 신청했다

이렇게 가장 힘들었던 장소 섭외를 마치고

녀석과 나는 제일 큰 산을 하나 넘었다


이제 무더위에 장비와 아이들을 싣고 그 장소들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숙소와 차량을 준비하는 숙제가 남았다



#로케이션을 위한 사전 촬영과 회의

장소가 정해지면 정식 촬영 전에

촬영감독과 조연출을 맡은 친구들과 함께

그 장소에 여러 번 가서

동선과 구도, 촬영 스케줄 등을 정하기 위해

폰을 이용해 사전 촬영을 해보기도 하고

짧은 시간 내에 차질 없이 촬영할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한다

장소가 여러 곳이다 보니

녀석은 여기저기 열심히 다녔다

그렇게 해서 기본적인 촬영 각도나 위치를

정해놓지 않으면 촬영 당일에

스무 명이 넘는 스탭과 배우들이 모두 우왕좌왕

고생하게 되고 촬영 시간도 딜레이 되기 때문에

이 작업은 사전 준비 과정 중 제일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콘티ㅡ분량 조정

콘티는 전적으로 연출자가 그리고

담당 선생님이 컨펌을 해준다

하루에 찍을 수 있는 분량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기 때문에

원하는 만큼 모든 씬을 살리지 못하고

줄이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매일매일 작업을 하고

선생님과 계속 소통을 한다

콘티북에 넣을 장면들을 다 그리고 나면

대본과 콘티, 일일 촬영표 등을 넣어서

콘티북을 만든다

메인 스태프들에게 한 권씩 주고

촬영 날 콘티북을 토대로 같이 호흡을 맞춘다



#대본 리딩

연출과 조연출이 배우들과 함께 시간을 정해

대본 리딩을 진행한다

여러 번 할수록 도움이 되겠지만

간혹 배우들이 겹치는 경우도 있고

한 달 정도 안에 준비가 끝나야 하기 때문에

자주 모이기가 쉽지는 않았다
녀석은 세 번 정도 외부에서 진행을 했고

또 개인적으로 배우들과 연락하며

격려도 하고 계속 소통을 하려고 애썼다



#장비 대여

영화를 찍는 비용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촬영 장비다

물론 학교에서 모든 장비들은 지원해주면 좋겠지만

여러 가지 문제로 학교 장비들은 녀석들의 촬영을

충족시킬 만큼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영화전공 학생들을 가르치는 예고라면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반드시 개선해 나가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녀석들은 강남에 있는 장비 대여 업체를

하나 정해서 각 영화마다 촬영을 맡은 아이들이

연출자와 의논하여 장비를 신청하고

픽업과 반납을 책임진다

목록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불량이 아닌지 점검한 후
촬영 전날 숙소로 가져온다

녀석은 고민 끝에 c100카메라를 선택했다

촬영 장소와 시간대에 맞는 조명도 빌린다

고가의 장비들이라 녀석들은

늘 긴장해야 하고 현장에서도 보물 다루듯

조심조심 신경을 쓴다

이제 2학년이 되었다고 제법 장비 다루는
자세가 능숙한 것이 기특하고 대견해 보였다

가끔 장비들이 말썽을 부릴 때가

촬영 중 가장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는데

부디 큰 문제없이 촬영을 마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숙박

천안으로 내려와 촬영을 할 수가 없어

2박 3일 서울에 숙소를 잡아야 했다

기꺼이 집을 내주겠다는 지인들도 있었지만
감사한 제안에도 거리상의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에어비앤비도 며칠 동안 뒤적여 보면서

고민 고민하던 끝에 후배가 운영하는 오류동에 있는

베르누이 호텔에 방을 두 개 잡기로 하고 연락을 했는데

녀석을 늘 챙겨주던 후배는

고맙게도 내가 묵을 방까지 따로 제공해 주었다

녀석과 잘 살아내는 것 말고는

보답할 길이 없이 받기만 하는 못난 선배라

어찌 갚아야 할지 어깨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래도 가장 큰 고민이었던 숙소가 해결되니

녀석은 한결 편안한 얼굴이 되었다



#식사 & 차량

연출자의 집이나 숙소에서 합숙을 하기 때문에

스태프들 식사를 준비해야 한다

아침식사는 보통 컵라면이나 콘푸라이트 등으로 준비하고

점심, 저녁은 촬영 스케줄에 따라 간편식으로 준비한다

일찍 끝나는 경우는 푸짐하게 먹이기도 하지만

빡빡한 스케줄 때문에 그러기는 쉽지 않다

엄마 마음에 잘 먹이고 싶어도

긴장되고 바쁜 현장 상황에 따라

녀석들이 오히려 간단한 걸 원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도 심하게 더운 여름날이라

김밥으로 준비하긴 마음에 걸려서

첫째 날은 가성비가 좋은 김치볶음 컵밥으로

둘째 날은 조금 비싸지만 야채가 많이 안 들어가고

녀석들이 좋아하는 계란말이 짱아찌김밥으로 준비했다

이동이 많은 녀석의 촬영엔

지인 찬스가 절실했다

내 경차로는 장비도 옮길 수가 없었기 때문에

첫째 날은 녀석의 친구 엄마가

카니발을 끌고 와서 하루 종일 도와주기로 했고

둘째 날은 중앙대학교 버스기사인 동생이

미니버스를 직접 끌고 오기로 했다

(물론 동생에겐 비용을 지불했다)

이렇게 하나하나 준비해 나가다 보니

엔딩 크레디트에 담을 감사한 사람들도 하나 둘 늘어갔다


#기타

촬영소품: 교복, 망고음료수, 박스

쿨 제품 총출동: 쿨팩, 쿨 목도리, 쿨 패치, 쿨 스프레이 등등

얼음과 아이스박스 & 생수

식염포도당(급격한 기력 저하에 일시적인 효과)

카트(장비나 간식을 옮기기 위해서)

간식(촬영 중간중간 녀석들에게 제공되는 간식과 음료수)

건전지(사운드 기계에 넣을 건전지 다량 필요)

햇빛가리개 : 밀짚모자 & 큰 우산




녀석은 많이 지쳐 보였지만

차분하게 하나씩 해나가고 있었다

혼자서 해야 할 일들이 많아

지켜보기 안쓰러웠지만

부모 역할로 도와줄 수 있는 건

작은 부분일 뿐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일이기에

응원과 격려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녀석의 가장 큰 고민이

영화가 잘 됐으면 하는 것에 앞서서

스태프들의 안전과 최대한 딜레이 되지 않아서

친구, 후배들이 고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라

더 고맙고 기특했다

빨리 무사히 끝났으면 좋겠다며

잠든 녀석을 가만히 다독여본다

다 잘될 거야, 걱정 말고 힘내


그렇게 녀석의 뜨거운 "그해,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글ㆍ사진 kossam

그해, 여름 #두 번째 이야기에서 계속...




6월 4일 여름워크숍 연출자 최종 결정
6월 7일 촬영날짜 배정 / 메인스 탭 결정
6월 11일 전체 스탭 결정
6월 중 주연배우 오디션
6월 25일 석남중 촬영협조공문
                  주연배우 최종 결정
6월 27일 석남중 촬영 허가
7월 9일 석남중 방문ㅡ옥상촬영 허가
               용산구문화체육센터 대관
               숙소 예약
7월 11일~  세부 로케 콘티 짜기
7월 22일 선유도 로케
7월 29일 콘티 컨펌
8월 초~ 대본리딩, 장비예약, 소품준비,
               콘티북제본, 도시락주문
8월 10~13일  그해,여름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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