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ossam Sep 25. 2015

[엄마가 귀 파줄까?]

성장통 #part 21


녀석이 제일 좋아하는 엄마표 떡볶이

나이 마흔이 넘도록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도 떡볶이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신기방기한 그 맛

나야 사먹는 게 좋지만

그래도 녀석이 맛나게 먹으니

만들어 줘야지

계란도 반숙으로 삶고

면도 살짝 삶아놓고

국물도 내고

녀석이 좋아하는 비엔나 소시지에

어묵도 자르고

떡은 물에 담가 두고

엄청 간단한 요리 같지만

잘하자고 들면 번잡한 요리이기도 하다


녀석이 오기 전에 딱 맞춰 내놓으려

준비만 분주하다

나도 어려서 엄마표 떡볶이를

젤로  좋아했는데


부시럭거리며 부엌을 서성이다

엄마 생각이 났다

떡볶이를 만들다가 울컥하니  

참 주책없다 싶었다


내가 어렸을 적

제일 좋았던 기억은

엄마 무릎을 베고 누웠을 때다


그러고 한참 있으면

엄마는 화장대 서랍에서

귀 파는 도구(귀이개 맞나?)를 꺼내서

살살 귀를 파주셨다

나는 자연스레 손을 벌리고

엄마는 귀지를 파서 내 손위에 올려놓았다

어쩌다 커다란 귀지를 보면

둘 다 깜짝 놀라며 웃기도 하고

그러다 어느새 나는 엄마 무릎을 베고

잠이 들기도 했다

사각사각 간질간질 잠이 솔솔 왔다


떡볶이 만들다 청승을 떨고 있는데

녀석이 들어온다


"이리 와봐~"

"왜?"

"그냥 좀 와봐!"

귀이개를 찾아 들고 앉은 나를 보고

"귀 팔려고? 싫은데!"

"일단 누워봐~ 좀 보게~"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순순히 무릎 위에 눕는 녀석

아기 때 생각이 난다


겁이 많아 귀를 팔 때마다

닿기도 전에 소리를 지르던 녀석이다

늘 그래서 병원에 갈 때마다

의사선생님이 커다란 귀지를 꺼내 주셔야 했다

그래도 나는 가끔씩 녀석을 눕혀놓고

한번 보기만 하자면서 귓속을 들여다 봤다


엄마의 손길을 느끼며 잠이 들던

그 기억이 나서였겠지

녀석과는 늘 시끄럽고 정신없이  마무리되었지만 그래도 무릎 베고 누운 녀석이 귀엽기만 하다


어려서는 녀석이 손톱을 자꾸 뜯어서

직접 손톱을 깎아줄 일이 없었다

그래서 예쁜 매니큐어랑 스티커들을

사다 놓고 가끔씩 붙잡고 앉아

손톱을 만져주며

"예쁘게 해줄 테니 제발 뜯지 말아~" 했다


※몇 살 때인지 발도 귀엽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방학 때만 해주다가

중학생이 되고 나서는 아예 잊고 지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녀석이 아니라 내가 소홀해진 것은 아닐까?

녀석이 아니라 내가 변한 것은 아닐까?


무릎 위에 누워 있는 녀석의 볼을

만지작 거리며

"매니큐어도 발라줄까?" 묻는다

"낼 학교 가야지~"

"맞다~ 담에 길게 쉴 때 해줄게~

그때까지 손톱 뜯지 마!"

녀석도 싫지 않은 눈치이다


귀를 파고 손톱 발톱을 깎아주고

머리 손질을 해주던 엄마

그리고 나


그렇게 정이 드는 것인데

다 컸다고 손 한번 잡아주지 않은 것이

못내 후회가 된다


끌어안고 자던 때가 그리운 오늘

품안에 폭 안겨 자던 그 녀석이 사무치게  보고 싶다


가끔은 손 잡고 밤 산책도 하고

귀도 파주고 손톱도 만져주면서

알콩달콩 살아야겠다



오늘도 녀석은 엄마표 떡볶이를

맛나게도 먹는다


먹는 것만 보아도 배가 부르다


이제 보니 옛 말이 틀린 것이 하나도 없다

나도 이제 늙나 보다



※성장통의 시작  성장통 #part0



글, 사진: kassam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