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 취한 찰나로도 충분하다
벚꽃과 매화...
썩 호감 가는 부류의 꽃은 아니다. 왠지 붓글씨에 어울릴 법한 꽃이다. 커리큘럼에 있으니 묵묵히 배운다. 세밀화가 아니니, 꽃잎 다섯 장에 색감만 달리 표현한 벚꽃과 매화...
뭐, 내 실력이 아직 미달이라 그런지 내가 봐도 구분이 잘 안 간다.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 8월 중순을 기점으로 이미 가을이 오고 있다는 것을...
매년 겪는 계절의 변화를 뭐하러 새삼스럽게 표현할 까 싶지만 왜 해마다 새로울까?
최근 들어 유난히 산책을 많이 했던 게 이유일까?
그 뜨거운 여름을 견뎌낼 꽃은 진작에 없고(이미 봄에 끝났지) 초록잎은 햇빛에 타들어간 건지 바랜 건지 알 수 없게 누렇다. 그 와중에 바로 옆 새롭게 생겨나는 초록들은 또 뭔가? 생명력이란 이토록 신기한 건지.
'사철 내내 꽃을 피울 순 없다.' 이 당연한 명제를 자연을 통해 알게 되다니...
인간 세계를 보면 될 텐데. 인간도 자연의 일부니까. 철저히 동물적이니까.
개화, 개화의 연속인 식물이 존재하지 않듯, 성공, 성공의 연속인 인생 또한 없다. (p24)
<그렇지 않다면 석양이 이토록 아름다울 리 없다> ~ 마루야마 겐지
중국산 화선지 부채는 작품용으로 많이 쓰인다. 붓터치가 너무 까다롭다. 일반 종이와 너무 다르다. 안개꽃으로 갈아타기로 한다. 그나마 낫다.
글씨체도 왠지 화선지에 어울릴 듯한 흘림체로 써야 할 것만 같다.
여태껏 떠올렸던 캘리 문구는 즉흥적으로, 하지만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문구였다.
근데 이번엔 좀 달랐다. 꽃을 떠올려도 메마른 성정 때문인지 별로 감흥이 없었다.
부랴부랴 여러 샘플을 뒤지고 각색해본다.
'내 마음에 꽃은 시들지 않는다'
과연 그런가?
뭔가 거짓말하는 기분...
마음에서 우러나온 글귀가 아니다 보니, 써놓고 마음속에 각인시킨다.
왜 마음이 메말랐을까?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겠지...
굳이 원인을 들여다보고 싶진 않다.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3월. 한 마리 새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별별 일을 다 겪는다. (p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