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초반에 돌아가신 외할머니는 비만과 당뇨가 얼마나 무서운 질병인지 깨닫게 해 주셨다. 일찌감치 과부로, 태안시장에서 생선장사로 몇십 년을 보내셨다. (말년엔 아들 집에 계셨지만) 외갓집 전체에서 풍기던 비린내를 인지도 못할 만큼 오래 하셨다.
당연히 줄줄이 딸린 자식들과 먹고살기 위함이었다. 내 나이 또래 윗 세대들은 어렵게들 살았고 과부가 시장바닥에 앉아 생선장사하며 먹고 산 이야기는 신파 축에도 끼지 못한다.
시장 상인들 모두 할머니를 좋아했고 (유머감각 때문에) '오천 평'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체구가 컸다.
사람 좋아하고, 농담이 자연스럽고, 인정 많고, 항상 웃는데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어찌 보면 인간관계가 이렇게나 단순한데... (난 단순한 이게 잘 안 된다.)
'오천 평'이라 불리던 외할머니는 결국 당뇨합병증으로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1년 전쯤이 떠오른다.
장사를 접고 아들 집에 사시면서도 여전히 식탐이 많으셔서 자식들 걱정과 잔소리를 들어야 했지만 식습관은 바뀌는 게 힘들었다. (옆에서 지켜본 결과)
체구가 큰 외할머니가 집 앞 공원에 나가실 때도 화장대 앞에 앉으시던 모습을 보면 이해가 안 됐다. (그때 나의 시선으로는)
얼굴에 뭘 바르시고 서랍에 있던 반지를 꺼내 끼시던 모습이 잊히질 않는다.
저 나이에(할머니가) 왜 외모에 신경을 쓰실까? 반지 하나 꼈다고, 입술에 색 좀 칠했다고 내 눈엔 전혀 달라 보이지 않았다. 의미 없어 보였다. 물론 시장에서 일하셨을 때처럼 몸빼바지에 비린내 나는 옷차림도 상상하긴 싫지만.
그때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여자는 60이 넘어도 외모에 신경 쓰는 족속이라는 걸 말이다. 단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나 또한 남들이 말하는 중년이지만 가까운 외출이라도, 아무도 날 보지 않아도, 내 얼굴이 잡티로 덮여있는 것보다 최소한 파우더로 뽀얀 얼굴이 더 좋다.
마흔이 넘어가면서 사고방식이 유연해진 걸 느낀다. (아직 턱없이 부족하지만) 예전엔 '절대로 안돼'가 많았고 모든 일에 의미를 따졌다.
이 사람에게 계속 설명하는 것이, 이 일이, 이런 것에 내 에너지를 쏟는 것이, 아깝다... 그렇게 의미를 따져 가며 중단된 대화와 일들을 생각해보니 수도 없이 많다.
옳고 그름을 내 판단으로 재단하고 선을 그었다. 그렇게 따지면 '어차피 죽을 건데 뭐하러 열심히 사나'까지 가는 비약과 모순에 빠질 수 있다.
'내려놓는' 연습을 한다. 연습한다고 쉽게 될 일은 아니다. 적어도 '그러려니' 하고 사는 것에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족의 발전이다.
모든 것에 의미가 있고 모든 일상에, 모든 사람에게 의미가 있고 소중해졌다. 이것도 나이 듦의 한 현상인지, 성숙으로 가는 과정인지는 모르겠다.
선입견과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불평하거나 투덜대거나 까탈스럽게 굴지 않고 무의미한 말을 시끄럽게 하지 않고 떼지어 몰려다니지 않고 나대지 않으면서도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가능한 한 계속하는 것. 현재로선 이것이 내가 나이듦에서 바라는 모든 것이다
<자유로울 것> 임경선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