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때문이 아니야
이 시국에도 잘 되는 곳
산 사람은 살게 마련이지만 산 사람은 배가 고프다.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 식비, 전기세, 수도세, 관리비 등등
사람의 본능을 무시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 본능에 지배되는 삶은 비루하지만, 배고픔 속에서 평화를 찾기란 극단적인 금욕주의자라도 불가능할 듯?
코로나 사태로 자영업자들이 울고 끄떡없어 보이던 잘 나가던 직장인들도 한숨 쉰다.
아직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음에 감사하라고, 살아있음에 감사하라고, 그 누가 설교할 수 있을까? 물리적 심적으로 모두가 위기상황에 내몰렸다. '굶어 죽나, 코로나에 걸려 죽나 매한가지...' 심지어 이런 소리가 장사하는 사람들 입에서 저절로 나온다면, 그 심정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지경이다.
하지만 이 시국에도 여전히 잘 되는 곳이 눈에 띄었다.
여전히 친절하고, 여전히 미소가 환한 곳, 그런 곳에 가게 된다. 나는 그렇다... 편의점이든, 옷가게든 변함없이 진정성으로 손님을 대하는 곳...
구태의연한 단어가 나와도 어쩔 수 없다. 그것만이 눈에 띄었다.
반면 안 되는 곳은 불만스러운 얼굴로 (누구에게? 바이러스에게?) 죽을 상을 하고 손님을 받는 곳엔 다시 가기 싫었다. 며칠 전 지나가다 본 그 가게는 결국 문을 닫았다. 묘하게 불친절하고 불성실한 직원이 걸러지기도 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코로나 사태)에 순종할 수밖에 없고 하루를 최선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최선을 다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있다. 얼굴에 수심과 당장 죽을 상을 한 곳에 손님이 재방문할 리 만무하다. 모든 것에 에너지가 있다는 책을 깊게 파고 난 후에, 그 에너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체감하는 순간이다.
결국 진리는 단순할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은 순응한다. 진심, 진정성, 친절, 이 상황에서도 일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면서 살아남는 것에 눈길을 두고 하루하루 숨 쉬고 미소 짓는 것.
먹고사는 일만큼 중요한 일이 또 있을까?
어느 여배우는 절박할 때 연기가 더 잘된다던데 그럼 글쓰기는 평온한 상태가 잘될까, 절박한 상태가 잘될까? 잡다한 생각이 밀려든다.
이 사태로 새롭게 알게 된 부분도 있다. 난 커피와 책, 인터넷, 약간의 음식만 있으면 집콕이 아주 체질에 잘 맞는다는 것이다. 거기다 요가매트만 추가하고.
현재의 불확실성에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모든 것에 기본을 충실히 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성실성, 진실성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선 순응하고 내맡기는 것. 앞으로 상황이 나아질 거라 생각하는 낙관성.
미래를 아니, 올겨울과 내년을 비관적으로 예측하는 모든 부정적 뉴스 보도를 거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