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121일 차

취재거리는 늘었다. 침대는 따뜻하다.

by 백윤호

막 잠에 들려고 할 때 걸려온 전화는 고민을 하게 만든다. 그 전화의 용건과는 상관없이 편안한 잠을 이루고 싶으니까. 이 귀찮음을 뛰어넘어 받은 전화. 취재와 관련된 내용이다. 꽤 흥미로운 내용.

호주에 와서 취재를 하게 될지는 정말 몰랐다. 더군다나 꽤 의미있는 취재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도 온다. 물론 큰 기사는 아닐 것 같지만 그래도 의미있는 일에 한 몫 하는 것 같아 기분은 좋다. 오프 더 레코드 상태이니 자세한 건 나중에.

요새는 집에 오면 침대와 한 몸이 되는 경우가 많다. 날씨가 그렇게 춥진 않지만 따뜻한 이불은 마성이다. 이 속은 용광로다. 흐물흐물 사람을 녹여 침대와 부착시킨다. 가까스로 침대와 떨어지고 나면 불어오는 한파. 이불은 그렇게 다시 유혹한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노곤한 몸. 이 몸을 침대가 붙잡는다. 되도록 멀리 떨어지는 수 밖에.

취재란 일이 겹치다보니 좀 더 객관적으로 나를 돌아보게 된다. 다시 말해 일과 내가 분리가 됐다는 것. 컴플레인이나 지적에 그렇게 신경쓰지 않게 됐다. 쿨하게 넘기게 됐다고 할까. 혼자서 일하는 시간이 길다보니 안 좋은 버릇이 생겼다. 한번 말할 때 빠르게 많이 한다는 것? 워낙 대화할 곳이 없어서 그런가 보다. 이것도 직업병이라면 직업병이겠지.

친구가 곧 퍼스로 간다. 이 친구의 짐정리(?)를 돕기 위해 필요한 물품을 가져가기로 했다. 선풍기와 같은 부피가 제법 큰 것부터 반찬거리까지. 시드니에서 5000km 떨어진 곳으로 간다니 최대한 짐을 줄이는게 이득이다. 그의 짐을 가져가는 것이 도와주는 것. 합법적으로 약탈(?)할 수 있는 기회다. 호시탐탐 노리던 커피머신부터 가져가자.

한편으로는 마음이 휑하다. 이제 시드니에서 같은 학창시절을 보낸 친구가 한 명 뿐이다. 추억을 곱씹을 수 있는 사람이 떠나간다는 것이 막상 현실로 다가오니 마음이 울적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미국에 간 그녀는 영어로 카톡을 한다. 으으. 나에게 영어는 높다란 산이다. 오를려면 오르겠지만 굳이 가야되나 싶은 산. 주저리주저리. 라면이 익어가는 걸 지켜보며 오늘 하루를 정리 한다. 두서없이 그리고 느낀대로 쓴 오랜만의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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