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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준한 시간부자 May 11. 2022

시간부자63-①하늘과 바람과 별(목차)

1일 1독 같이 하실래요?

1일 1독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매일 1권을 읽었을 때 나의 변화를 알고 싶어 시작한 프로젝트!

2022.2.9부터 시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 읽은 날짜 : 2022.5.6(금)    *63권째

2. 작가/출판사/분야 : 윤동주/더스토리/문학

3. 내가 뽑은 키워드(3가지) : 별 하나에 추억, 달조각, 오줌싸개 지도

4. 내가 뽑은 문장 :

-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내일도......



 <목차>

序詩


1

自畵像 / 少年 / 눈 오는 地圖 / 돌아와 보는 밤 / 病院 / 새로운 길 / 看板없는 거리 / 太初의 아츰 /

또 太初의 아츰 / 새벽이 올때까지 / 무서운 時間 / 十字架 / 바람이 불어 / 슬픈 族屬 / 눈 감고 간다 /

또 다른 故鄕 / 길 / 별 헤는 밤


2

흰 그림자 / 사랑스런 追憶 / 흐르는 거리 / 쉽게 씨워진 詩 / 봄


3

懺悔錄 / 肝 /慰勞 / 八福 / 못자는 밤 / 말갈이 / 고추 밭 / 아우의 印象畵 / 사랑의 殿堂/異蹟 /

비오는 밤 / 산골물 / 遺言 / 窓 / 바다 / 毘盧峰 / 山峽의 午後 / 冥想 / 소낙비 / 寒暖計 / 風景 / 달밤 /

장 / 밤 / 黃昏이 바다가 되어 / 아침 / 빨래 / 꿈은 깨어지고 / 山林 / 이런 날 / 山上 / 陽地쪽/ 닭 /

가슴 1 / 가슴 2 / 비둘기 / 黃昏 / 南쪽 하늘 / 蒼空 / 거리에서 / 삶과 죽음 / 초 한 대 /


4

산울림 / 해바라기 얼굴 / 귀뜨라미와 나와 / 애기의 새벽 / 햇빛·바람 / 반디불 / 둘 다 /거짓부리/ 눈 /

참새 / 버선본 / 편지 / 봄 / 무얼 먹구 사나 / 굴뚝 / 햇비 / 빗자루 / 기왓장 내외 / 오줌싸개지도 /

병아리 / 조개껍질 / 가을


5

투르게네프의 언덕 / 달을 쏘다 / 별똥 떨어진데 / 花園에 꽃이 핀다 / 終始



 <책 소개>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은?
하늘의 별이 된 젊은 시인이 2016년 우리에게 부끄러움을 묻다!


윤동주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으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면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 성찰의 시인이었고 부끄럽지 않고자 한 자신의 뜻대로 29세의 젊은 나이에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했다.


더스토리에서 펴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1955년 윤동주 서거 10주기 기념 증보판을 표지와 본문 디자인 등을 그대로 살려냈다. 1955년 10주기 기념 증보판은 31편이 수록된 초판본에 유족들이 보관하고 있던 시를 더하여 새롭게 낸 판본이다.


해방 후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피폐해지고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여줬던 1955년의 시집이 60년의 세월을 건너 메마른 현대인들에게 다시 삶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어떻게 살 것인가?”

“당신은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가?”

※출처:예스24



 <저자 소개>

일제강점기 저항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일제 강점기 암울한 현실 속에서 민족에 대한 사랑과 독립의 절절한 소망을 노래한 민족시인. 우리 것이 탄압받던 시기에 우리말과 우리글로 시를 썼다. 윤동주는 어둡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인간의 삶과 고뇌를 사색하고, 일제의 강압에 고통받는 조국의 현 실을 가슴 아파하는 철인이었다. 그의 사상은 짧은 시 속에 반영되어 있다. 1917년 12월 30일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윤영석과 김룡의 맏아들로 출생했다. 윤동주는 청춘 시인이다. 절친한 친구였던 문익환 목사의 시 ‘동주야’에 의하면 아직 새파란 젊은이로 기억되고 있었다. 한글을 구사하면서 작품을 발표한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만주 용정과 경성 신촌 일대에서 문학청년들과 몸을 부대끼며 시를 썼기에 청춘의 고뇌가 담겨 있다. 1925년(9세) 4월 4일, 명동 소학교에 입학했다. 1927년 고종사촌인 송몽규 등과 함께 문예지 [새 명동]을 발간했다. 1931년(15세) 명동소학교를 졸업하고 1932년(16세) 은진중학교에 입학했다. 1934년(18세) 12월 24일, 「삶과 죽음」, 「초한대」, 「내일은 없다」 등 3편의 시 작품을 썼고 이는 오늘 날 찾을 수 있는 윤동주 최초의 작품이다. 1935년(19세) 은진중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평양 숭실중학교 3학년 2학기로 편입했다. 같은 해 평양 숭실중학교 문예지 [숭실활천]에서 시 ‘공상’이 인쇄화되었다. 1936년 신사참배 강요에 항의하여 숭실학교를 자퇴하고 [카톨릭 소년]에 동시 「병아리」, 「빗자루」를, 1937년 [카톨릭 소년]에 동시 「오줌싸개 지도」, 「무얼 먹고 사나」, 「거짓부리」를 발표했다. 1938년(22세)2월 17일 광명중학교 5학년을 졸업하고 서울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 문과에 입학했고 1939년 조선일보에 「유언」, 「아우의 인상화」, [소년(少年)]지에 「산울림」을 발표하였다. 처음 윤동주 시들은 노트에 봉인된 채, 인쇄되지도 않았고 신문 지면에 발표되지 않았다. 그가 후쿠오카 감옥에서 숨지고 난 후 동문들이 그의 노트에 있던 시를 모아 정음사에서 출판한다. 유해가 안치된 지 3년 후, 그러니까 1948년, 조선은 대한민국으로 국호가 바뀌어 혼란한 시기에 청춘 시가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41년「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자필로 3부를 남긴 것이 광복 후에 정병욱과 윤일주에 의하여 다른 유고와 함께「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 1948)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다. 만주 북간도에서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에 「달을 쏘다」, 「자화상」, 「쉽게 씌어진 시」를 발표하였다. 연희전문을 졸업한 후 1942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쿄 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고, 6개월 후에 교토 시 도시샤 대학 문학부로 전학하였다. 1943년 7월 14일, 귀향길에 오르기 전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교토의 카모가와 경찰서에 구금되었다. 이듬해 교토 지방 재판소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2년형을 언도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복역 중이던 1945년 2월 16일 광복을 여섯 달 앞두고 스물여덟의 젊은 나이로 타계하였다       ※출처: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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