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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한 이방인 Dec 17. 2015

설움을 딛고 피는 희망이라는 꽃

다 지나간다...

사노라면 대면하게 되는 서러운 순간들이 있다.

저마다 느끼는 서러움의 성격은 다르겠지만...

나에게, 남의 나라에서 살아가는 나에게 서러운 순간이란 크게 두 가지로 축약된다.

첫째는 같은 한국인으로부터 상처받는 순간이고,

두 번째는 아픈 몸으로 내 목구멍으로 넘길 죽을 손수 쑤는 순간이다.


누구나 살면서 배가 곯도록 굶주리지 않아도 먹을거리 때문에 서러웠던 기억은 하나 정도쯤 있을 것이다.

해외교포들 중 특히 산모들은 미역국에 얽힌 설움이 크다고 한다. 여건이 어려워서 또는 친정어머니 고생스러우실까 봐 와달라 말 못하고 혼자 독일 병원에서 출산한 산모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아이 낳을 때의 고통보다 출산 직후 첫 병원식으로 투박하고, 까칠한 검은 빵을 받는 그 순간이 가장 서럽다고들 한다. 우리 한국사람들은 아프면 따뜻한 국물에서 받는 위로가 상당히 큰 편인데, 건강한 이들에게도 쉬이 익숙해지지 않는 퍽퍽하고, 까슬까슬한 흑빵을 눈 앞에 두고, 아기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 숨죽여 힘들게 삼켰을 그 설움의 무게와 깊이가 생동감 있게 전해져 오는 듯하다. 한 지인은 그 서러운 순간을 피하려 출산 직전 미역국을 한 솥 직접 끓여 냉동고에 얼려놓었다 한다. 이들이 서러움을 느낀 이유는 단지 그 생소한 빵 때문이 아니었을 것이다. 따뜻한 엄마의 손길이 그리워 설움이 북받쳐 오른 것이 아니었으려나...

'고생했다!' 한 마디 엄마의 위로의 말과 '나'를 위해 끓여주신 미역국에 녹아든 그 정성과 사랑이 그립고, 애타게 필요한 순간이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어려서 워낙 건강체질이었던 아이라 '죽', '미음'의 의미를 몰랐다. 그냥 가끔 먹으면 별미처럼 느껴질 뿐. 한 번 아파봤으면 싶을 만큼 건강 체질인 아이가 별미로써의 의미 외에 죽을 먹는 이유를 알 리 만무였겠지.

그랬던 아이가 20대 중반부터 몸이 곯기 시작하면서 '죽'과 '미음'이 절실할 때가 많아졌다.

솔직히 남편은 아파 누워있을 때 그저 곁을 지켜준다는 게 고마울 뿐, 아픈 사람 기력 회복에는 썩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다. 다른 곳은 어떤 지 모르겠지만 독일에서 된통 앓아누우면 한국인 입장에서 볼 때 환자가 취할 수 있는 먹을거리가 딱히 없다. 몸 가누기도 힘든데 내 목구멍으로 넘기고자 긴 시간 곤로 앞에서 불린 쌀을 저으며 서서히 죽이 되기까지 기다리는 모습이란 상상만 해도 마음이 싸하다...

건강한 몸으로 단지 먹고 싶다는 이유에서 죽을 쑤는 건 된장국이나 김치찌개를 끓이는 행위와 별반 다를 게 없지만 '죽 한 수저 먹으면 기운이 날 것 같은데...'라는 소박한 바람은 어느 순간 '엄마'를 향한 그리움으로 발전해 결국 설움을 폭발시킨다. 이는 단지 먹거리로 뿐의 의미가 아니라 오랜 시간 정성 들여 쑨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을 함께 취하는 것이기에 그럴 것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먹어 본 가장 애정이 가득했던 죽은 바로 엄마의 것이었다는 먼 기억을 안고 사는 이들에게는 '죽' 그 자체보다 '엄마'의  빈자리가 서럽고, '죽'을 통해 받았던 '엄마의 사랑'이 그리운 순간일 테니까... 해외가 아니라도 엄마라는 존재가 멀리 계시는 모든 이들이 공감할 설움의 순간 이리라.


내가 설움을 느끼는 첫째 이유 또한 내 삶의 터전이 외국이기 때문에 더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외국 산다고 내 근본을 바꿀 필요는 없지만 이 나라의 규정과 관습을 익히며 현지화를 시도하는 것은 재외동포로써 임해야 할 최소한의 내가 사는 나라에 대한 예의가 아닌가 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 현지화를 못해 현지인들로부터 핀잔을 받거나, 눈총을 받는 경우에는 서럽다 호소할 근거가 없다고 생각한다. 잘못은 나에게서 시작되었으니 뭘 호소할 게 있을까? 로마에 가서 서울의 법을 따르면 누가 인정을 해줄 것인가?

종종 별 다른 이유 없이 단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외국인인 주제에...', '외국인인 너희가 뭘  알아?'... 이런 취급을 하는 현지인들도 없지는 않겠지.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자기네 땅에 와서 사는 외국인들을 모든 독일인들이 다 너른 마음으로 포용해 줄 것을 기대하지 않으면 비우는 마음만큼 받는 상처도 적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가 외국인 노동자들을 고운 시선으로 보는 것이 아니듯 어딜 가던 외국인에 대한 선입견은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현지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외국인, 같은 외국인이면서도 내 눈살을 찡그리게 하는 또 다른 외국인,   그중 '좀 자제해주지...' 싶은 한국인들도 있기 나름이고, 나 스스로도 다 잘하고 있다 자신할 수 없다. 또한 나 혼자 잘 한다고 외국인에, 특히 한국인에 대한 인상이 변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거나 업신 여김 받게 되어도 순간은 기분이 매우 상하지만 그래도 삭혀지는 게 어쩌면 다행이고, 그러기에 이 땅에서 계속 살아지는 게 아닐는지...  


반면 같은 한국인들에게 상처를 크게 받는 순간은 생각보다 오래 머문다, 깊숙이 응어리가 남아 곪는다. 떨쳐 버리는 게 약이란 걸 알면서도 쉽게 삭혀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스스로 그건 아냐라고  도리질하면서도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도 무의식 중 기대가 있는 걸까? 기대를 비워버리면 된다는 간단한 공식을 단지 한 민족이라는 이유 때문에 적용하지 못하고 실끝같은 기대가 진정 남아서란 말인가?

허긴 이네들이 이해할 수 없는 우리의 관습, 행동, 감정들을 "우리"끼리는 이해해주고, 보듬어 주면 좋겠다는 기대가 전혀 없다면 거짓이겠지? 서로 도우며 사이좋게 살아도 소수라는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기 힘든 여건이기에 더더욱 '설마 우리끼리 누군가를 해코지할까?', '그래도 외국에서 살면서는 한 민족끼리 한 마음으로 의지해야지' 라는 기대, 바람은 의도하지 않아도 무의식 중 마음 깊숙이 침투해 자리 잡고 있는 가보다. 그래 그 탓일 것이다, 내 나라 사람에게 받는 설움의 맛이 더 씁쓸하고,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이유는...


우리나라 민족의 특성이 그렇게 변한 걸까? 원래부터 그랬었는데 내 기억이 희미해진 걸까?

우리 민족은 특별한 관심사가 있을 때에만 세계를  놀라게 할 만큼 하나로 뭉쳐지는 것 같다. 월드컵 때를 상기해보면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이웃 간의 정? 그런 게 뭐지? 그런 게 왜 필요해?라는 사람들의 태도. 현재 방영되고 있는 '응답하라 1988' 이 담고 있는 이웃 간의 따뜻한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가 단순한 각색일 뿐 아닌 현실이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세대도 있겠지?

그래 서로 모르는 사이에 정까지는 필요 없다고 치자. 작은 배려만으로도 충분히 따뜻해질 것 같은데 그것조차 실종된 내 고향, 내 나라.

인간 사는 곳이라면 다 그럴 테지만 남 잘되는 것 배 아프고, 남 말하기 좋아하고, 내가 잘 되기 위해서라면 누군가에게 피해가 가도 된다는 의식이 당연시되는 듯한 우리의  현주소. 우리나라가 급작스런 경제적 풍요를 누리게 되면서  '자기중심적 이기주의', '무관심', '지나치게 과열된 경쟁의식'이 팽배해져서 나타나는 부작용일까?


외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한국인들이 모여 사는 사회는 어디던 같은 문제를 안고 산다.

한 동안 독일의 한인 사회를 뒤흔든 사건사고들이 연달아 발생했었다. 사기는 물론이며, 총기 사용, 강도질 등 나라 이름에 먹칠 않으려 열심히 살아가는 많은 한국사람들의 얼굴을 떨구게 만들었던 사건들. 그 무엇보다  피해자뿐 아닌 가해자 역시 한국인이었다는 게 얼마나 속상했는지!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불미스러운 사건에는 항상 피할 수 없는 연결고리처럼 한국인이 연루되어 있었다. 앞으로도 그러하겠지? 왜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핡키고, 서로를 짓밟고, 상처주며 살아야 하나? 남의 땅에서 꼭 이래야만 할까... 왜 독일사람보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는 본인이 올라서기 위해 누군가에게 상처 주고, 얽눌러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비교적 많은 걸까? 모두라고 할 순 없지만(그래서 또한 다행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 중 상당히 많은 이들이 약자에겐 강하고, 강자에겐 약해지는 특성을 품고 산다는 게 피할 수 없는 현실이기에 안타깝 그지없다. 사회가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것인지, 사람이 그런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인지... 단점을 고칠 수 없다면 감출 줄 아는 것도 능력이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제발 같은 한국인들끼리 함께 어우러져 사는 곳에서 서로 상처주기 보다는 따뜻한 사람 향기가 은은하게 풍길 수 있다면...


나 역시 아무리 한국기업이라고 하지만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너무도 당연하지만) 한국인 대비 독일 직원이 훨씬 많은 직장에 다니면서 극히 소수인 한국 동료들에게 모함을 당해본 직접 경험자이기도 하다.  

얼마 전 내가 가장 서럽다 느끼는 순간이 한꺼번에 몰아쳤다. 한국인으로 인해 난생 최악의 악몽 같은  일을 겪고, 정신적 충격과 혹시라도 가해자의 해코지가 번복되면 어쩌나 불안 속에서 결국 탈진 탈수 직전까지 이른 것이다. 그러던 중 어느 순간 나의 생존본능이 발동을 걸었다.

"내가 가해자도 아닌데 왜 이 꼴로 이러고 있지?" 억울함에, 스스로를 추스르고  일어나야겠다는 절실함에, 어느 순간 강한 현기증 속에서 '죽'을 쑤고 있는 내 모습이 인지됐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가가 시뻘겋게 달아오르며 내 안에 가둬두었던 서러움이 한꺼번에 북받쳐 올랐다.

"그래 살아야지, 언제부터 네가 그렇게 온실의 꽃이었다고, 털고 일어나 가해자에게 당당하게 보여줘야지, 남에게 비굴하게 상처 주고 짓밟고 올라서면 벌 받는다는 걸 알려줘야지. 일방적으로 당하고 내가 쓰러져 못 일어나면 그 자는 더 기세 등등하게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 낼 거야, 어쩌면 그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 했는지조차 모를는지도 몰라. 내가 알려줘야 해 큰 소리로 소리쳐야 해 약자라고 함부로 대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오기가 발끈했다. 하필 왜 같은 한국사람한테 이런 일을 당해야 했을까, 왜 이리 삶은 야속하고, 잔인하냐 따지기만 했더랬는데 그 순간 깨달았다, 그간 살아오면서 이번처럼 험한 일은 처음이라는 게 참으로 감사함을, 참 다행임을...

더불어 어떤 고통과 시련이 와도 최소 한 가지 감사의 조건이 허락된다는 믿음도 스믈스믈 피어났다.

온실 속에서  과잉보호받으며 살아온 과거는 청산하고 이제는 잡초의 근성을 닮아 수많은 발길에 밟히며 짓눌려도 다시 일어서고, 혹한 겨울을 알몸 그대로 부딪히며 견뎌낸 후 맞이하는 봄의 의미를 스스로 깨닫고 싶다는 의지와 대면하기에 이르렀다. 손수 정성껏 쑨 죽을 입 안으로 밀어 넣으며 나는 느꼈다, 잦은 시련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그 과정을 겪으며 내가 조금은 연마되어 이 사실을 깨달을 만큼 단단해졌다는 사실을...


더욱이 감사한 것은 주변에 근거리 원거리 막론하고 가족은 물론, 나를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지인들이 적잖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한 친구가 덤덤하게 던져준 한 마디가 가장 내 가슴을 흔들었다.


'지나고 나면 그런 때도 있었지... 그러는 거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거라잖아.  견뎌낸 후

 아름답게 은퇴하고 우리 함께 노년을 즐기자.'  


오늘날의 우리는 사람으로부터 가장 큰 상처를 받고 살아간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로부터 위로받는다.  

그러하기에 살아가며 아픈 순간 자체도 나에게는 은혜로 통하는 하나의 과정일 것이다.

그 고통의 순간 속에서 내 편이 누군지 알 수 있기에 더욱 소중한...

이처럼 나의 2015년은 수없이 넘어지고,  또다시 일어나는 오뚝이와 같은 날들로 가득 채워져 간다.

그 어느 해보다 서러움이 많아 버겁고, 견디기 힘들었던 시기였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이 시간들을 통해 큰 것을 얻을 수 있었기에 감사한 시간들이었다고 자부하고 싶다.

'설움을 단지 설움으로 간직하지 말고, 그 순간을 통해 또 다른 희망을 찾게 된다면 승리는 내 몫이 될 것이다'라는 내 삶을 향한 외침. 난 이 외침을 그치지 않을 것이다.




'아름다운 은퇴'란 어떤 것일까?

나는 지금부터라도 그 길을 찾아 떠나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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