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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한 이방인 Jun 14. 2016

삶의 향기

초라하지도, 과하지도 않은...

'우리 나이 곧 쉰이다!'

라는 사실에 경끼를 일으킬 듯 자극받는 친구도 있다.

'그런 얘기 하지도 마, 어휴 끔찍하다.'

'뭐가 끔찍해? 그게 우리의 현주소인데?'

살며시 건네는 내 웃음 건너편으로 친구는 무언의 메시지를 건넨다,

'그래도 굳이 말로 표현은 말자'라고.


나이를 바라보는 기준이 이처럼 저마다 다른 모양이다.

누군가에게는 숫자에 지나지 않으나,

어떤 이에게는 전부를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유아기에는 손가락으로 표현하는 능력으로 인지되고,

아동기에 접어들면 손 위아래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고,

철부지들은 하루빨리 더 많아지는 날을 소망하며,

그 시기를 지나 먼 길을 걸어온 이들에게는 되돌아 가고픈 향수를 일으키는 것이다.

 

나의 십 대는 치열했다.

이십 대에는 청춘과 삶으로 아팠고,  

삼십 대 들어서는 무작정 숨 가쁘게 달렸다.

어느새 불혹 하고도 후반기에 접어든 인생.

이제야 숨결이 한결 가벼워졌다.

내가 남기며 걸어온 발자국에도 눈길이 간다.


내가 선 현주소는 풋풋했던 이십 대에 꿈꿨던 미래,

나름 철 좀 들었다 자신했던 삼십 대에 이루고자 했던 목표와 일치하지는 않다.

뭔가를 자랑스럽게 내세울 만큼 이룬 것도 없다.

하지만 적잖이 대면하며 견뎌온 시련과 고난이 갈고닦아 지금의 나로 빚어주었다는 믿음 그리고 자부심이 내 마음 한편에 자리하고 있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우리는 한 덩어리 모난 바위로 태어나, 거친 파도와 풍랑이 잦은 바다라는 세상에 내던져진다. 그렇게 피할 길 없는 고통을 벗 삼아 지내노라면 악 쓰던 모습이 인내를 낳고, 어느새 둥글둥글 이쁘장하게 빚어진 새 모습으로 선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젊음으로 무장해 부러운 청춘에게도 주어지지 않는 연륜만이 쟁취할 수 있는 포상이니 세상은 참으로 공평하다.

  



나는 물려받은 우수한 유전자가 있다.

내 나이 또래에 대비, 아직까지 흰머리 때문에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아직까지는 멋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닌 무엇인가를 숨기려는 의도로 염색을 해본 적이 없다. 때문에 작은 해프닝도 있었다. 이 나이 되도록 내 중심적으로 생각하며 살아온 버릇은 왜 다 버리지 못한 것인지 내 주변도 다 나와 같다고 생각했던 탓이다.

대다수의 친구들이 진즉부터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현상으로 인해 피하지 못하는 염색을 하고 있었는 사실을 접한 게 얼마 전이다. '염색 안 하면 허어 연 백발이야!', '나잇살 먹고도 너의 현실감이란...', '우수 유전자 받아 좋겠구나!' 타박 아닌 타박을 받아도 마땅했다. 그 순간, 미안함과 당황스러움도 잠깐, 나는 살짝궁 희열을 느꼈다. 그리고 부모님께 감사했다. 왜 이런 순간 나는 쓸데없는 승리감에 사로잡힌 것인지 참 못났다 싶으면서도 우습다. 하지만 그 희열도 잠시. 시점이 들쑥날쑥할 뿐, 언젠가는 한계에 달하는 게 인간이려니.

며칠 전 병가로 누워 있다가 우연히 들여다본 거울 속 내 모습이 이처럼 나약하고 초라해 보일 수가 없었다.

'나이가 든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여기저기 탈 나는 게 나이가 든다는 증거로구나...'


평소 나이 든다는 사실 앞에 쓰리다는 감정보다는 태연한 모습으로 마주 서있었던 나.

자연스러운 변화인 만큼 세월따라 늘어가는 주름이 자랑스러울 수 있기를 희망하는 나에게 이 순간은 솔직히 조금 당혹스러웠다. 엎친데 덮친 격이랄까? 그 순간 거울 속 내 이마 위로 불뚝 선 하얀 머리 한 가닥! 남의 머리 뽑아준 경험뿐인지라 내 머리 한 가닥 손수 뽑으려니 쉽지 않았다.

설마 싶어 머릿발을 이리저리 뒤집어 헤쳐본다. 뒤집는 족족 이 쪽에서, 저 쪽에서 한 가닥씩 눈에 띄는 흰머리.

살포시 묻어둔 기억이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되살아 오른다. 작년 연말 서울에서 들렀던 헤어샾에서 스물 초반으로 가늠되는 어여쁜 직원 하나가 다소곳하게 내 마음에 혹여나 상처가 될까 조심스레 건넨 말들이 단어 하나하나 그대로 재현이 되어온다. '나이 때에 비해 적지만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에요, 다행히도 아랫부분에 잘 가려져 있어요.' 훗~ 싸하면서도 재밌다, 내가 볼 수 없어 잊고 산 내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

잠시 시무룩해졌던 마음도 미소를 되찾는다.

이게 정상인 거지, 곧 쉰인데 어찌 흰머리 하나 없이 이쁘게만 나이를 들려고 하니?

몇 가닥 열심히 뽑던 손도 내려놓는다.

굳이 나이 든다는 사실을 감추려 할 필요가 없잖아?

그게 섭리임을 받아들이면 절로 편해지는 것이니까.

나를 부러워하던 친구들도 소심한 복수심으로 한 방 날리겠지? '거봐 너도 늙는다니까!'

그럼 입 실쭉대며 세침 떨지 말고, 이쁘게 웃어줘야지.

그래야 내 나이가 부끄럽지 않다는 의미로 제대로 전해질 것만 같으니까.


유전자 하나 잘 타고난 것보다 감사한 것은 나이에 대한 나의 마음가짐이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이십 대 말에는 여러 친구들이 삼십 대를 두려워했고, 사십 대를 앞두고 한숨을 푹푹 내뿜는 이들도 많았었다.

나는 나이를 두려워할 경황없이 그 순간들을 지나 지금에 달했다.

이제 와서 분석해보니 두려움은 여유 있는 자들이 누리는 사치가 아닐까...

때문에 그 두려움을 인식하지 못한 채 나는 다행히도 지금 이 자리에 선 것은 아닐까라고...



나이는 내 인생의 현주소이다.

언젠가부터 젊은 청춘이 내뿜는 멋스러움보다는 곱게 세월을 이겨낸 이들의 모습에 더 눈길이 간다.

우리네 얼굴은 살아온 삶이 있는 그대로 묘사된 한 장의 스케치북이 아닌가.

청춘 때는 누구나 멋지고, 아름답다.

하지만 긴 세월의 흔적을 안고 선 이들의 모습은 천지 차이일 것이다.

누군가는 거친 유화의 모습으로,

누군가는 화사한 수채화로,

또 다른 누군가는 선명한 스케치화의 모습으로 변해 갈 것이다.

그 어떤 그림으로 내 모습이 변해 가던 정답도, 오답도 있을 수 없는 것이 인생 이리라.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나는 쉰, 그리고 예순, 일흔의 나이를 초연하게 맞이할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내 얼굴에 주름이 깊이 패이고, 각인되어도 괜찮다,

삶이 선사한 어둔 그림자 한두어 군데 내리 운 들 어떠하리.

하나 전반적인 느낌만큼은 삭막한 겨울도,

어울리지 않는 싱그러움이 부각되는 봄도,

서슬 푸른 기상이 부담스러운 여름도 아닌

익을 만큼 익어 아름답게 고개 숙인 가을처럼 온기가 가득했으면 좋겠다.


젊음은 아직 연륜의 무게를 측정하기 이르기에 패기 넘친다.

청춘은 시리고 아름답기에 무조건 옳다.

절정기를 넘긴 중년, 그리고 내리막길을 걷는 노년의 나이 또한 아름다울 수 있음은 젊음과 청춘이 모르는 인생의 쓰고 단 맛을 겪고, 저마다의 스토리들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나보다 젊은 이들을 부러워만 말고, 나보다 연로하신 분들을 보고 배워가자, 오늘을 어찌 살아야 강퍅함을 벗고, 유한 모습으로 사랑스럽게 나이 들어갈 수 있을지를... 더 이상 젊음으로 돌아갈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옳게 나이 드는 법을 익히자.  


나는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스스로에게 증명시켜주고 싶은 만큼 젊음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 또한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다. 심신의 평안과 안정을 위해 여러 방면으로.

또한, 저물어 가는 젊음을 단 하루라도 더 연장시키기 위해 얼굴도 가꾸고, 운동도 하고,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고, 나에게 주어진 삶을 감사함으로 대하며 최선을 다해 보리라. 누군가는 이런 나를 미련 때문이냐? 결국은 나이 먹는 게 두려워하는 행동 아니냐며 은근슬쩍 비판할 수도 있겠다. 그렇게 보는 시선을 굳이 부정할 수도, 필요도 없다. 나는 나에게 있어 가장 젊고 아름다운 이 순간을 임하는 나의 최선이라고 말해 주고 싶다. 자연스러운 현상은 피해갈 수 있는 성격의 것은 아니지만 이에 대면하는 자의 노력에 따라 더 멋진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지 않겠는가? 최선을 다한 모습에 깃드는 주름과 삶이 남긴 흔적은 개개인 저마다의 유일한 특허품이 될 것이기에.


혹 나이 들어가는 현실이 불안하거나, 두려운 이들에게 묻고 싶다.

불안해한다고, 두려워한다고 그 전개가 멈춰지겠느냐고.

내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닌 이상, 건강할 때 즐기고, 맘껏 누림이 가장 멋진 해결책이 아니겠느냐고.

싱그럽고 풋풋한 봄과 눈부시게 푸르름이 빛나는 여름을 품은 중년의 나이,

스스로 낮출 줄 아는 가을의 겸손함과 빈 손으로 혹한 시기를 이겨내는 겨울의 인내까지 모두 접수할 조금 먼 노년의 미래를 지금부터 찬찬히 준비해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법하다.

과연 사계절을 품은 나의 모습에서는 어떤 향기가 풍겨 오를까?

원컨대 건하지만 정겨운 볏짚 내 사이를 비집고,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은방울 꽃 향기가 묘하게 어우러진, 나만의 전매특허 향기로 승화되어, 내 살아온 날들을 대변해줄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소박하되, 초라하지 않게.
고상하되, 지나치지 않게.
당당하되, 겸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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