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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한 이방인 Nov 23. 2016

이름만 이쁘던 아이

비교 선상에 선다는 것

나는 꽃밭에서 자랐다.

어려서부터 친가 쪽과 별 교류가 없었던 우리 집은 단 하나인 외가 쪽 혈육 이모네와 한 때는 모두 함께 한 지붕 아래에서 살기도 했고, 장기간 같은 아파트 단지 내 앞뒤 동으로 매우 가까이 살았다.

둘만 나아 잘 기르자 저출산 정책이 실시되던 1970년대, 공교롭게도 우리 집과 이모네 합이 딸만 무려 일곱. 한참 뒤 내게 막내 동생이 하나 더 늘면서 지금은 여덟이 되었다. 양 집안의 남자 멤버는 이모부와 아빠 단 둘. 그러나 두 분은 오랫동안 중동의 건설현장 지휘를 위해 한국땅을 떠나 계셨으니 외할머니가 함께 사신 우리 집도, 딸 넷인 이모네도 각각 합이 여자 다섯씩이었으니 참으로 꽃밭이 아니었는가?


우리 일곱은 너 나할 것 없이 우애 좋게 지냈다.

놀이터를 가도 우르르, 심부름을 가도 짝지어 또래들끼리 함께, 목욕을 해도 순서를 정해 같은 날.

명절이면 당연히 종일 함께라는 기대에 설레었고, 서로 좋은 건 나눔으로 기쁨을 키웠다.

집안 어른들은 이런 우리가 자랑거리셨다.

명절, 생일 때마다 모두 한자리에 모이면 우리들의  합주와 합창 등 발표 프로그램도 다양했고,  함께이기에 수줍음보다는 즐거움이 먼저였던 추억이 살포시 웃는다. 


이모와 엄마는 "내 딸"이라고 더 이뻐하고, 더 아낀다는 느낌 없이 모두를 늘 동일하게 대해주셨다. 그 누구도 누군가와의 비교 대상으로 삼지 않으셨다. 그랬기에 나는 그런 순간이 내게 닥칠  것임을 미쳐 예기치 못했다.


아마도 초등학교 중급반이었던 것 같다, 내 기억에 또렷이 남은 처음으로 비교 선상에 선 순간.

우리는 늘 그랬듯 숙제를 마치고 모두 어울려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한 어린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나오신 할머니와 아주머니께서 한참 동안 우리를 지켜보시다가 한 자리로 불러 모으셨다. 우린 늘 그러했듯 나이순으로 줄 맞춰 나란히 섰다. 관계가 어찌 되기에  이처럼 잘 어울려 노는지 궁금하셨던 모양이다. 역시나 이름이 뭐냐, 누가 젤 큰 언니냐 등등 호구조사를 하신다. 그 시절엔 자주 볼 수 있었던 풍경이다. 이름 석자를 수줍게 내뱉을 때마다 한 마디씩 덕담을 건네주신다. 참 이쁘구나, 무척 똘망하네, 아유 귀여워! 등등 모두에게 생김새에 대해 감탄사를 연발하시던 분들이 내 차례에는 "넌 이름이 참 이쁘구나!"

그 순간은 그게 즐겁고 뿌듯했다. 뭐라도 이쁘다니까. 아마도 어린 나이에 외모가 비교된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잘 몰랐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누군가와 비교된다는 것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음을 무의식 중 느낀 걸까? 그때까지만 해도 그 순간을 이처럼 오래 기억하게 될 줄은  몰랐다.

실제로 동갑내기 이종사촌은 가녀리고 늘 인형 같아 이쁘단 말을 지겹도록 듣는 존재였고, 나를 제외한 모두 한 미모 하는 소녀들이었다. 그들과도 비교될 수 있다는 현실을 나는 어쩌면 그 순간 처음으로 감지했던 가보다.


그때엔 솔직히 이름만 이쁘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몰랐다. 그 후로 한 해 두 해 나이가 계속 늘어도 이쁘다는 외모 칭찬은 나와 먼 관계였고, 늘 내 이름표처럼 달라붙는 "의젓하다", "맏이 같네"가 최고의 찬사였다. 남들이 한참 외모에 눈을 뜰 시기, 난 먹는 게 마냥 좋았고, 또래들보다 비교적 뒤늦게 멋을 내고 싶은 나이가 들어서야 그때의 그 징한 상처가 세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나 보다. '남들 눈에는 내가 이뻐 보이지 않기에 상처받을까 봐 다른 말로 칭찬을 대신해주시는구나!' 이 또한 인생의 깨달음이겠지!


그 후로 이름만 이쁘던 아이가 이쁜 외모까지 추구하며 헛된 꿈을 좇는 시기를 맞았다. 악바리로 살도 빼고, 나름 멋도 내어 보고.

배우자를 고를 때 마음부터 본다는 말이 가식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누구든 생김새에 호감이 가야 그 마음도 캐보고 싶기 마련 아니던가?

그러나 이뻐지고자 애써도 한계가 있는 법.

철이 들어서부터 이쁜 외모보다는 매력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졌고, 어느새 마음이 이쁘게 늙어가고 싶은 아줌마가 되었다. 이 세상의 외모지상주의가 나를 유혹해도 굽힘 없이 마음 가꾸기에 더 애쓰며, 이 세상 뜨는 그 날까지 부끄럼 없이 살다 가고 싶노라는 바람.


지금이나마 이름이라도 이뻐 행복했노라고 나지막이 고백해본다. 그마저 칭찬 대상이 아니었다면 나는 하나의 자랑거리 없이 어깨 축 늘어뜨리고 주눅 든 아이가 되었을지도 모르니까.

나를 제외한 내 주변이 모두 외모로 후한 점수를 받았기에 살짝궁 그들이 부러웠음도 인정. 하지만 이내 "넌 이름이 참 이쁘구나" 란 그 한 마디에 설렜었기에 그로부터 먼 훗날인 현재에 이르'마음이 이쁜 한 사람'이 되고자 다짐하는 계기로 연결이 되었노라고 먼 기억 속 그분들께 감사인사드릴 수 있다면...


이름에는 내가 투영되어 있다.

나의 이름이 나의 얼굴이요, 나의 인격처럼 다루어지기도 하는 나의 가장 친한 벗이자, 삶의 동반자가 아니던가. 평생을 나로 살아주어 고마운 너에게, 어여쁜 이름을 손수 지어주신 부모님께 문득 고맙고 또 고마움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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