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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한 이방인 May 01. 2018

과한 화려함

정체불명의 계절

올해 4월은 스펙터클하였다.
봄날 예사롭지 않은 화려함이 너무도 눈 깜짝할 새  펼쳐졌기 때문이다.

"봄은 언제나 오려나?" 하염없던 기다림.

몽올 몽올 물 오를 듯한 벚꽃의 수줍은 미소를 설렘으로 기다리던 중, 느닷없이 계절이 봄을 뛰어넘은 느낌,

하물며 여름 문턱에 와 선 생소함으로 혼란스러웠다.

어둡고 축축하던 긴 겨울의 잔재가 가신 후 찾아오리라 기다렸던 화창함이라기엔 몹시도 지나쳤.


나는 소망했다, 수줍음으로 조용히 봄이 내게로 와주길...
 바람과는 달리, 유화 물감이 어지럽게 풀어진 어느 화가의 팔레트처럼 온 세상이 화려하게 빛을 입는다, 색을 입는다. 예외적 기온 상승으로 갑작스레 온 세상이 유화로 변한 수채화처럼, 강열하게 변해 버렸다.


살구꽃인지, 벚꽃인지, 사과꽃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흡사한 종류의 꽃나무들 어깨가 무거울 정도로 꽃방울들 활짝 피어내고, 숨죽여 우아한 자태로 몽오리 지던 목련은 며칠 새 헤픈 웃음을 남긴 채 땅 위로 추락해버렸다.

신선하게 피어오른 라일락 vs 헤픈 웃음으로 지는 목련
탐스러운 꽃방울들

너른 들판은 노랑 물감을 수혈받은 듯 눈 깜짝할 새 노랑 파도로 넘실대고, 여기저기 보랏빛 라일락 향기가 코 끝을 간질이며 하늘거린다. 이 모두 홀로 피는 튤립과 수선화도, 넝쿨지는 개나리도 다 저물기 전에 등장한 예기치 못한 바람 체증이었다. 순차적으로 지고 피어오를 꽃들이 너도나도 앞다퉈 동시다발적으로 피어올랐다.

온 천지 수놓은 노오란 유채꽃 물결

독일인 동료가 이 자연의 전투적 태세가 너무 낯설다며 꽃씨 터지듯 툭 내뱉는다, "(독일에) 살면서 이처럼 많은 꽃들이 한꺼번에 만개하는 걸 본 적이 없다"라고...


모든 게 너무 급진적이다.

비정상적인 것은 부담스럽다.

아무리 아름다운 것이라고 해도 지나치면 조금 부족하니 못하다. 수줍은 듯한 사랑스러움보다 지나친 애교의 부담스러움이랄까.


정상이 아닌 것에 부작용이 없을 수 없다.

동네 사과꽃 축제는 아직 시일이 꽤 남아 있는데 이미 활짝 피어 오른 꽃잎들이 우려했듯 잠시 내린 비와 때 아니게 닥친 강풍으로 듬성듬성 가지마다 빈 틈을 남기고 사라져 간다.

이 계절 이 시기 코를 자극하는 향이 라일락인지, 등나무 꽃인지, 유채인지 또는 이름 모를 또 다른 식물의 향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온갖 향수를 섞어 놓은 과함. 향기롭다 싶다가도 지나쳐 거북한 순간이 없지 않다.  


따가운 봄햇살에 방방마다 창문을 열어 놓 집 안으로 누런 자작나무 꽃가루가 무단침입을 하여 남겨놓은 흔적이 마치 새로 사들인 실크 양탄자처럼 남는다. 하루 수 차례 청소기를 돌려도 집안 공기 속에 섞여 재채기를 유발한다. 덕분에 미뤘던 대대적 봄청소를 하고야 만다.
전문가들도 이상적 기후로 인해 올처럼 많은 종류의 꽃들이 동시 패션을 선보이며 화려했던 봄이 드물다한다. 덕분에 꽃가루 알레르기 환자들에게는 최악의 시기가 될 것이라는 경고다.

봄의 얼굴,  봄의 풍경이 점차 이렇게 우리가 소망하는 것과 다른 방향으로 변해갈지도 모른다.

익숙해져야 할까? 적잖이 난감하다. 

정상적이지 않은 것에 항복을 해야만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딱히 달갑지 않은 때문이다.


앞다투어 피는 온갖 꽃들 사이로, 헐벗었던 나뭇가지들에도 아기의 속살처럼 연하고, 순수한 연둣빛 하늘하늘 봄바람에 장단 맞춰 춤을 추더니 하루가 다르게 나뭇가지를 촘촘히 채워간다. 빈 틈 없이 빼곡히 잎사귀가 돋아난다.

이 맘 때면 화려한 자태로 시야를 강렬히 끌어당기는 온갖 꽃들보다 이 순수한 새싹들의 여린 빛깔이 나의 감성을 더욱 자극한다. 눈동자를 정화시켜주고, 마음에 안정감을 선사하는 그들의 색감이, 그 작은 잎새들의 하늘거리는 손짓이 몹시도 사랑스럽다. 햇살 가득한 날이면 연초록 잎사귀 사이사이로 빛이 반짝반짝 쪼개져 내린다.

어린 생명의 신비감과 사랑스러움 가득 품은 새싹들

긴 세월 견디며 짙어진 노장의 나뭇잎들 사이로 풋풋하게 물오른 어린 나뭇잎들을 바라보노라니 정체불명의 계절 속에서 흔들리는 감정에 살짝 진정이 찾아든다.

앙증맞은 모습 살짝 고 내민 작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존재감은 빛이 나는구나. 들 또한 사방의 헤픈 꽃웃음과 박자를 맞춘 듯 급진적으로 풍성해져 가는 4월의 끝자락. 하늘 아래 모든 양상이 마치 5월의 중앙 또는 6월 초입에 서 있나 착각이 들 만큼 푸르름도 무성해지고 있다. 

아기 속살처럼 연한 새싹과 향긋한 봄향기의 주역 등나무 꽃

많은 시간들을 견뎌낸 노장들의 진국 같은 무게감 속 파릇파릇한 새 생명의 연녹이 대비되어 더 맑게 각인되어 우리 눈에 비춰지는 동안 한껏 즐겨보자. 어쩌면 모든 것의 진행과 발전 속이 병든 지구와 더불어 지속적으로 가속화될지도 모르니까... 그래도 다행이다, 비록 비정상적으로 치닫는다 해도 아름다운 대자연에 이처럼 가까이 접해 살고 있음이...


이제 막을 올리는 5월에게 나는 당부한다,
"내 옆에서 보폭 좁히고, 좀더 찬찬히 나와 함께 걸어줄련?"

천천히 간다고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도, 크게 손해 볼 것도 없지 않을까?

저물어가는 4월이 내게 교훈을 건넨다,
'느림의 미학을 새기며 살아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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