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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한 이방인 Nov 15. 2017

엄마의 일탈

예기치 못한 획기적 사건

여름이 다 저물 즈음, 어느 주일 하필이면 예배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엄마가 상황이 괜찮으면 연락을 달라 신다.

우리가 예배드릴 시간임을 인지하고 계실 것이기에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이 되어 급한 용무냐고 확인을 청했다.

"엄마가 친구랑 여행을 가려고 하는데 언제가 제일 좋을까?"

일단 급한 건 아니니 예배 후 연락을 드리기로 했다.

별 일 아니라 다행이다 안도하려는 순간 "이거 뭐지?" 기분이 싸하다.


엄마의 여행 계획은 말 그대로 "사건"이었다.

단지 여행을 해볼까라는 생각을 품으셨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매우 획기적인 사건!

엄마가 의지할 가족 하나 없이 여행을 떠난다고?

그리 권해봐도 집구석이 젤 편하다시던 분이 대체 무슨 일이지?

느닷없이 여행을 가시겠다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아빠와 다투셨나?

우리에게 서운한 게 있으신가?

예배드리는 내내 나의 뇌는 온통 이 사건을 분석하기에 바빴다.

예배 중 설교말씀은 아랑곳 않고, "엄마에게 무슨 일이?" 걱정과 염려가 제곱에 제곱으로 불어 내 뇌를 미세먼지처럼 빼곡히 채워버렸다.


어느새 일흔의 중반 고지에 다다른 엄마.

어린 시절 나는 엄마 손잡고 나들이하는 날이면 그 순간이 마냥 우쭐했다. 굽실굽실한 천연의 갈색머리, 뽀얀 피부와 이국적인 외모로 주변의 시선이 온통 엄마에게 집중되는 걸 어린 나이에도 감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많은 아이들이 "우리 엄마가 제일 예쁘다", "우리 아빠가 제일 멋있다"라는 데 목숨을 걸 듯 자부심을 느끼지 않는가? 하지만 그 시절 그 멋진 엄마의 시간을 공유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처럼 힘들었다. 어린 시절 나의 가장 큰 불만이었던 엄마의 부재. 엄마는 하교 후 귀가하면 백중백 외출 중이셨을 만큼 매우 활동적이셨고, 주변의 인기를 휩쓸던 분이었다. 수많은 동창, 사회에서 만난 친구분들과 자선행사며, 다양한 문화생활, 쇼핑 등의 이유로 만남이 끊임없었을 뿐 아니라, 해외로 여행도 자주 다니셨고, 숨쉬기 운동에만 전념하는 요즘과는 달리 내가 기억하는 젊은 날의 엄마는 운동도 즐겨하셨다. 70년대 후반, 우리 가족이 살던 아파트 동 바로 앞 테니스장에서 마치 프로 선수처럼 하얀 미니스커트 나풀거리며 테니스를 치는 엄마가 시야에 들어오면 나는 친구와 함께일 때는 말할 것도 없지만 혼자였어도 그 모습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이마에 맺힌 땀마저 햇살 아래 빛나는 그 멋진 모습은 여전히 내 기억 속에 생생하다. 80년대에는 그 취미가 볼링으로 바뀌었고, 마치 선수처럼 볼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상당히 많으셨던 만큼 그 실력 또한 거의 준프로급 수준이었던 엄마는 어린 학창 시절 육상선수였다더니 나와 달리 운동신경이 남달랐음이 분명하다.


그때는 상상도 못 하였다,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 다양한 취미들을 다 잊은 채 엄마의 활동반경이 집과 교회라는 범위로 극히 제한될 줄은...

집안의 가세가 기울면서 급변한 환경도 물론 한몫했지만 다시 안정을 되찾은 후에도 엄마는 교회 활동 외에는 아주 가끔 극히 소수의 몇몇 친구분과의 만남이 유일한 일탈이었고, 매우  사교적이던 분이 바깥세상과는 담쌓은 사람처럼 지내셔서 동생들과 내 마음이 늘 짠하고, 걱정이 놓이질 않았다.


여행을 권해보기도 하고, 귀국하면 동생들과 또는 온 가족 함께하는 여행을 기획해 모시고 다녀봤지만 딱히 여행에 흥미를 못 느끼시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여행과 코드가 맞지 않으면 집 떠나는 게 고생스럽게 느껴질 수 있기에 자꾸 권할 수 없음이 속상했다. 더 많은 친구분들과의 만남도 종용해보았지만 엄마의 마음을 움직이기엔 역부족이었다. 해외 산다는 핑계로, 또 각자의 생활이 바쁘다 보니 자주 찾지 못하는 자식들의 가장 큰 걱정은 엄마가 한정된 공간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시는 것이었다. 한국사는 동생이 그런 모습이 안쓰러워 힘들게 짬 내어 함께 쇼핑가자, 식사하자며 외출을 유도해봤으나 실패하기 일쑤였다. 진짜 집이 편해서이기도 하시겠지만 자식들 입장에서는 하루 이틀도 아닌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마음이 더 공허하고, 우울해질까 몹시 불안해 다양한 제의를 했으나 엄마는 우리의 마음을 모르시는 듯 외부활동을 최대한 자제한 생활을 하며 꼼짝않으셔서 때로는 서운하고, 답답했다. 그나마 교회에 열심히 다니시니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그러던 엄마가 근래 열린 세상으로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감행하는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평생소원이던 책 발간이 결정적 계기가 되어 소식이 끊어졌던 많은 동창분들과 연락이 새로 닿고, 만남이 이어져 엄마의 삶에 신선한 활력소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그렇게 세상을 향해 수줍게 기지개 켜던 엄마가 드디어 자청하여 여행을 떠나볼까 라신다.

그토록 고대하던 순간인데 정작 그 순간과 대면하니 "내가 뭘 잘못 들었나?"

의심스럽다. 믿기지가 않는다.

의아하다. 놀랍기만 하다.   

섣부렀던 걱정과 달리, 아무런 부정적 동기도 없었다. 지금껏 함께 여행을 떠나보지 못한 오랜 벗 분과 좋은 추억을 만들고 오시려는 것이란다. 그분이 아니었으면 용기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하시며 목소리에 상기된 엄마의 설렘과 부푼 기대가 생생히 전해져 왔다.


오롯이 순수한 동기에서 비롯된 일탈임을 안 순간, 안도의 한숨과 함께 "참 다행이다!" 나도 모르게 마음을 쓸어내렸다. 참 길고 긴 터널을 지나 엄마의 인생에 새로운 빛이 스며드는 게 아닐까란 조금 앞선 기대에 뭉클해진다. 짧지 않은 세월이었다, 엄마가 스스로 엄마의 인생을 좁은 공간으로 가둬놓고 지내신 날들.

더 늦기 전에, 엄마가 가장 젊은 바로 그 순간의 결단이 너무도 고, 감사다. 누군가는 내가 어려서 그랬듯 "또?", "엄마는 무슨 여행을 그렇게 자주 가?" 불만스러운 반응을 보일 수도 있겠다.

내가 불만했던 과거 속의 엄마가 재소환된 듯하여 너무도 다행이다.  


엄마 여행 소식 접했니?

이게 뭔 일 이래? 안 믿기지?

다행이다! 너무 흐뭇하다!

동생들과 엄마가 선포한 일탈을 "최고의 사건"으로 다루며 톡을 한참 주고받는다.

엄마귀가 많이 간지러우셨을게다.


엄마의 일탈 선언에 놀란 가슴이 기쁨으로 변하니 또 다른 걱정이 몰려왔다.

날씨에 맞게 옷가지는 챙기셨나?

단체여행을 가 적 없으신 분이 잘 어울리실까?

장시간 버스 이동과 도보 양이 많을 텐데 체력은 괜찮으실까? 다니면서 손가방 조심해야 하는데... 마치 어린아이를 물가에 보낸 양, 온통  신경이 엄마로 쏠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걸! 엄마는 그런 나의 걱정을 읽으신 양, 틈틈이 여건이 될 때마다 여행지에서 친구분과 다정하게 찍은 사진과 더불어 따뜻한 현지소식을 보내주곤 하신다. "함께 온 모든 분들이 좋으셔서 유익한 시간 보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 "오늘 호텔도 식사도 참 좋아 잘 먹고, 너희 덕에 호강한다"

일흔이 넘어도 마냥 소녀 같기만 한 엄마이기에 늘 걱정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걱정하는 만큼 엄마는 약하지 않다는 걸 이번 기회로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래 이제 엄마 걱정은 그만 하자.
대신 엄마의 인생을 한껏 응원해주자!

오늘은 엄마가 친구분과 여행을 떠나신 지 닷새째.

나는 엄마가 느지막이 낸 용기이니 만큼 일탈 한 번 제대로 고 오시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일탈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깨닫기 때문이다.

인생은 황혼에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음을, 이번 기회를 통해 엄마의 황혼 인생에 새로운 벗이 될 신선한 활력소를 찾아오시길 간절히 바람이다.


내가 바랬던 엄마의 일탈.

이제라도 용기 내준 엄마,

그리고 그 용기를 내게 해주신 엄마의 오랜 친구분께 무척 감사하다.


엄마, 엄마의 인생을 응원해!

그리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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