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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Mar 28. 2018

사랑은 끊을 수 없는 운명

상실의 시대 ;  원제 노르웨이의 숲

 옛날,  처음으로  이 책을 읽었을 때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을  찾아들었던  일이 있다.    내  귀에는  호두껍질처럼  딱딱했기 때문에  슬펐고  한 겨울  숲 바람을  닮은  곡이라고  생각했다.   이 소설이 마치  가을이나  겨울,  버려지고  버리고 있는 숲을 연상시켰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연한 기회에  아는 친구로부터  이 소설을  다시 읽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지금 읽으면  느낌이 다를 거야."

그  말에  책을 다시 펼쳐 들었다.    가을빛 닮았다고  생각했던  소설은  의외로  봄빛 숲 색을  안고 있었다.   한 겨울에  죽은 듯 숨어있던  생명이  '상실'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삐죽이  얼굴을  내미는  새싹처럼   살아 나오는  느낌이었다.   술술 읽혔다.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끝에 닿았다.



주인공은  와타나베.   서른일곱의  남자는  보잉 747 기에 앉아  비틀스의 '노르웨이의  숲'을  듣는다.   준비 없이  맞닥뜨린  음악은  고통스러운 과거를  불러오고  파생된  추억은  그를  과거로  데려간다.   그가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  뭐  그런 나이일 때로.

와타나베는  모순적인  시간에서  허우적 대고 있었다.   절친한 친구 가즈키가  자살하고,   그  상처는 그대로 남아 그를  옥죄고 있다.     그 상처로 인해  그는   몇 명의  사랑을  만난다.

가즈키의  연인이었던  나오코.   정신적인 연인이었던 ,   자살할 때까지  가즈키를 사랑했던  나오코에  대한 사랑은  창백한  형광등 빛이라면   미도리에  대한 사랑은  따뜻한     백열등 빛과  비슷했다.    그리고  레이코는  죽은  나오코와  결합하지 못했던  그를  위로하는  어머니 같은 ' 데미안의  아프락사스'와  비슷한  존재가 아닐까  생각했다.     



와타나베는  평범한  우리들의 모습이다.   보통으로  가난하고  정상적으로 사고하며  그러나  상처를  보듬고  살아가는  젊은 우리들,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상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상처 가진  '그녀들'을  사랑한다.   그녀들이   그를 사랑하듯,   그는  그녀들의 상처를  사랑한다.  

하루키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작가다.    그가 말하는 사랑은  '아름답'거나  '이상화된'  것들이 아니라  익숙하다.  '보통'의  가면을 쓰고 있지만  냉소적이고  객관적이기 때문에  담담해 보인다.  그러나   내면의  온도는  어느 소설보다  뜨거웠다.



"자기 이야기 좀 해줘." 하고 미도리가 말했다.

"내 어떤 이야기?"

"글쎄...... 싫어하는 게 뭐야?"

"닭고기, 성병, 그리고 말 많은 이발사가 싫어."

"그밖에?"

"사월의 고독한 밤과  레이스 달린  전화기 커버가 싫어."

"그 밖에는?"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p374


"별로 없는데?"

"정말?"

"네가 입고 있는 건 뭐든지 좋고,  네가 하는 일도,  말하는 것도,  걸음걸이도,  술주정도 무엇이든 좋아해."

"정말 이대로가 좋아?"

"어떻게 바꾸는 게 좋을지 모르겠으니까  그대로가 좋아."

"얼마만큼 나를 좋아해?" 하고 미도리가 물었다.

"온 세계 정글 속의 호랑이가 모두  녹아  버터가 되어버릴 만큼 좋아."  하고 내가 말했다. p375


이 소설이  연애 소설이라는  증거는  이런 달달한 멘트에 있다.   이렇게  대답하는 남성을  사랑하지 않을 여성이 어디에 있겠는가?   사랑이란 뭘까?  갖가지  심리서적과  의학 서적,  소설책과  자기 계발서에서  다루고 있는  이론은  이런 멘트 한마디를  이기지 못한다.   사랑을 책으로 배우려는  이가 있다면  심리학 서적을  읽을 필요 없이  이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여성을 사랑하는 법,  사랑하는 마음의 자세,  그리고  여성이 원하는 말들을  다 알아낼 수 있다.    사랑을 찾는  이들에게는  위로 같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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