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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Feb 28. 2018

혼자로도  편하다

혼자가 편한 사람들

우리가 모르는 어느 멋진 날이.. 달력 어딘가에 끼워져 있는 것이다.
『스스로 행복한 사람』랄프 왈도 에머슨

****

혼자 있는 방안에서 나는 가끔 사물들과 이야기 한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웃을 일이지만 지금 내 속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아이들은
방안에 있는 미니 가습기와 화분에 있는 난초다.

별로 내성적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내 성격이 외향적이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고 본다.
그러나 환자를 볼때는 친절한 사람으로 변하는데 우스운 것은 환자와 나로 만났을때는 발도 씻어줄 만큼 친하지만 직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마주치면 남보다 더 못한 사이로 대한다.
그러한 나를 나 스스로도 알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스스로 생각이 많다고 느끼는 현대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론적인 위안을 준다.
결정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내성적인 성격의 착한 사람들에게
소위 " 괜찮아, 너만 그런거 아니야." 라는 속삭임을 들려주는 듯 하다.
책 내용중 2/3는 동의하지 못하면서 읽었지만 1/3 정도는 꽤 마음에 와 닿았다고 생각한다.

결정하는 것이 특별히 어려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큰 결정을 쉽게 하는 편이다.
일단 큰 결정을 하고 나면 후회도 별로 없다. 결정된 대로 밀고 나갈 뿐이다.

 작은 것들을 결정하는 데는 생각이 많은 편이다.
결정하고 나서 후회하는 경우도 많고, 급한 결정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닌것도 알기 때문이다.
한가지만을 선택하는 것이 매우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꼭 그것을 선택해야만 하는 이유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솔직히 말해보자.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이다.
선택이 잘못된 경우라고 느꼈을때 느껴야 할 죄책감과 괴로움.
두고 두고 따라오며 괴롭힐 후회같은 것들.
감당하기 어렵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샴푸 하나를 잘못 샀을때 머리를 감을때마다 그 기분을 느껴야 할것이다.

그런 나에게 아버지는 자주 말씀하셨다.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면 생각을 줄여라."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면 후회조차도 별 의미가 없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생각했다.
여러번, 자주, 아주 많이했고
내가 감당할 수 없다고 느껴질 때는 생각을 멈춰버리고 말았다.
생각을 멈춘다는 것은 '포기함'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이 많아지면 지레 포기해 버린 것들도 꽤 있었다.

이책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생각이 많은 이들이, 소위 내향형 인간이며 '안테나'를 세우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변화에 민감하고 흔들리기 잘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예민한 성격은 나 스스로를 위축시키고는 했다. 상대는 눈치조차 못채고 있는데 나는 혼자서 불편해 하거나 미리 도망쳐버리고는 했다. 결국 이제 와서야 깨달은 것은 다른 사람의 변화에 대처하는 내 기분을 내가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기분 나쁜 표정을 짓더라도
'나때문에 그런것은 아닐거야.'
라고 먼저 생각한다. 그리고 상대를 내버려 둔다. 일단 그의 불쾌한 변화를 내 의식 밖으로 밀어내 버리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한참동안 시간이 지나면 대체로 상대는 스스로 감정의 균형을 잡고 다시 내 주위로 돌아온다. 만약 그 이유가 나때문이었다면 언젠가는 나도 알게 될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하게된 이후에는 내가 지레 먼저 도망치는 일이 없어졌다.

나도 사실 결정하는데 어려움이 많은데
사람들은 내가 꽤 결단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심지어 몇가지를 놓고 고민하는 이들은 내게 대신 결정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나름 최선을 다해 조언해 주지만 그들이 나와 다른 결정을 한다고 해도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충고는 충고일 뿐이니까 말이다.

이 생각은 나에게 있는 장점중 하나다.
소위 유행을 타야만 행복한 사람이 아니게 된 것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분명히 있고 브랜드나 명품에 관심이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입고 쓰는데서 행복을 느낀다. 심지어 여름에는 사람들을 피해 온천에 가는 것을 더 즐겁게 여긴다.
사람이 많은 곳, 유행이 넘치는 곳은 나를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집안에서도 나를 평화스럽게 해주는 공간이 필요하고
하루에도 잠시동안은
나만 홀로 스스로를 충전시킬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생각을 더 많게 하고,
선택을 더 주저하게 한다.

내 결정이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을까?
혹시라도 일이 잘 못되면 나로 인해 슬퍼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것 까지도 생각을 흔들어댄다.

가끔은 미래의 일이 적혀있는 달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때가 있다.
며칠까지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몇년에는 어떤 일이 있을거라는
예언서라도 한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미래를 알게된다면 사람들은 선택할 필요가 없어지고,
초조함과 불안을 덜 느끼지 않을까?

그러나 소망은 소망일뿐,
미래는 모르는 것으로 남겨두고
오늘은 작은 선택에 목숨을 걸며
큰 선택을 책임지기 위해 또 하루를 견뎌낸다.

2018년이라고 쓰던게 어색했던 날도 있었는데
벌써 2월이 다 갔다.

우리가 모르는 어떤 날이 행복의 이름으로 다가오는 것을 기다린다.
아침이면 혹시 오늘이 그날일까? 기대로 마음을 설레어 보는것도 좋을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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