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영인 Aug 23. 2018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옛날에 내가 죽은집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거의 읽었다고 생각했었는데   며칠 전 우연히 들른  중고 서점에서  아직  읽지 않았던  이 책을  발견했다.   2013년에  초판 인쇄를 했었고   한 번  책을 펴 들면  끝까지  읽어내리기  딱 좋은 두께다.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커피를 한잔  곁에 두고  읽기 시작했는데   다 읽어 내릴 때까지  손 닿는 곳에 커피 있었던 걸 잊어버렸다.   그만큼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다.  



등장인물은 겨우  두 명.  이야기의 배경은   한적한 곳에 숨겨지듯  지어진 별장과   어딘지 희뿌연  기억 속뿐.  단순히  미스터리한  사건을  풀어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감춰진 인간의 욕망이나  사회적 문제까지도  다루는 게  이 작가의  매력이다.  촘촘한  그물처럼  어느 한 곳 느슨한 구석이 없는 스토리도,  곳곳에  숨겨진 복선을  알아보는 것도  독자를  매혹시키는  특징 중 하나다.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일본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선악에 대한 태도 때문이다.   악하기 위해 악한 사람도,  선하기 위해 선한 사람도 없는,  누구나 그런 상황에서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까  공감하게 하는 능력이  존경스럽다.


어쩌면 나 역시 낡은 그 집에 죽어 있는 건 아닐까. 어린 시절에  죽은 내가,   그 집에서 줄곧 내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누구에게나 '옛날에  자신이 죽은 집'이 존재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곳에 누워 있을게  분명한 자신의 사체를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모른 척하는 것일 뿐 (320 page)


어릴 때  아이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애쓰고  부모의 뜻에 따라  인생을  살아간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보다는   부모나  세상이  인정해주는  것을  하느라  자신을  억누르고  그런 자신이  잘 살고 있는 거라고  자신을  속이며  살아간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도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친어머니와 키워주신 부모 사이에 끼어서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  강요당했던 집.  얌전하게 순종하는 아들 연기를 계속해야만 했던 집.  인간은 모두 외톨이라는 걸 뼈저리게 깨닫게 해 준 집 (320page)


이 책을   읽다  보면  헤르만 헤세 '데미안'의  몇 부분이    떠오른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나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을  솔직하게  찾아가고  이뤄내는 삶은  지금도  어렵기만 하다.  진정한  내 삶,  내가  주인이 되는 삶을  살기보다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뭔지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일 것이다.   주위의  기대,  남들의 시선,  사회적 인정이  자신의  삶을  사는 것보다  우선시되는 게  현실이다.

  
헤세의  데미안에서와는 달리  하가시노 게이고는  살아보고 싶은 주인공을  조용히 좌절시켜 버리고 만다.  덕분에  독자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살아간다는 것'이  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같은 시간 속에서   사는 공간에  상관없이  피해자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그 피해자들이  받은 상처로 인해  끔찍한  가해자로  변화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동안  독자는  자신의 내면에  숨겨졌던  열쇠를  찾아낼  있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인간의 삶은 각자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헤세의  말은  이 소설에서도  적용된다.   어쩌면 독자는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을  찾기 위해  이 책을 읽었는지도  모른다.   책을  다 읽고 난  나도  나에게로  이르는  집,  인간은 모두 외톨이라는 걸 뼈저리게 깨닫게 해 준 집,  외톨이임을  깨달았기  때문에  더 강해지는 법을  찾는  문 앞에서   책 안에서 찾아낸  녹슨 열쇠로  잠긴 문을 열고 있는 중이다.  











작가의 이전글 내 햇살 같은 너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