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영인 Nov 01. 2018

제1장

두 번째 이야기

상대는 레이첼의 헬멧을 자신의 왼손으로 ‘텅’ 소리가 나도록 세게 내리쳤다. 금속성 소리가 레이첼의 귓가에 공명하듯 울려 퍼진다. 귀가 먹먹하고 머리가 울려왔다.  덕분에 레이첼은 다리가 풀린 듯 비틀거렸다.

“너,  신참이구나.”

순간적으로 레이첼의 겨드랑이에  상대의 손이 들어왔다.  넘어질 뻔했던 레이첼이 다시 중심을 잡는 것과 거의 동시에 상대는 레이첼을 부축하던 손을 빼어 레이저총을 재장전한다.  아주 빠르고 능숙한 손놀림이었다.  커다란 레이저 기관포는 처음부터 군인과 한 몸이었던 것처럼 부드럽게  움직였다.

“조심해라.  죽지 말고.  너무 빨리 죽으면 재미없잖아.”

낮게 속삭이듯  하는 말이었다.  그 말만 남기고 상대는 태양이 내리쬐는 방향으로 달려가 버리고 말았다.  군인의 목소리는 헬멧을 통해 변성되어 나온다.  목소리만 듣고서는 군인이 여성인지, 남성인지, 나이가 어린 지,  노련한 장교인지 알 도리가 없다.  174센티인 레이첼보다 약간 작은 키에  어쩌면 레이첼보다 더 야윈 몸매로도  상대는 푹신푹신한 모래바닥 위를 통통 튀듯 힘 있게 뛰어다니고 있다.  모래가루가  공기 속에 스며들어 바람을 뿌옇게 만들고 있었다.  안개처럼 시야를 가리는 모래가루 속으로  군인이 사라지고 나서도 잠시 지난 후에야 레이첼도 정신이 들었다.

“같이 가!”

   

훈련소에서 제대하면 대체로 하루나 이틀은 휴가를 준다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훈련병들은 눈이 빠져라 제대 날짜를 기다렸다.  자대 배치 통지서를 받기 전에 ‘적어도 이틀은’ 어디든 가서 쉴 수 있다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가 않았다.

   

일단 전투가 너무 치열했다.  그래서 특수 부대원들에게는 휴가를 줄 수 없다는 게 상사의 설명이었다.  덕분에 휴가도 없이 특수부대로 이송된 것이 어젯밤이다.  그것이 겨우 하루 전인데 지금 그녀는 모래를 잔뜩 뒤집어쓴 채 전장을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더러워진 갑옷과  오른쪽 윗부분이 찌그러진 헬멧을 쓴 채 굴러다니는 자신의 모습은  그동안 꿈꾸던 특수부대원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특수부대에 자원할 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자신이 꽤 유능한 군인이라고 생각했다.  훈련소에서 성적도 최상이었다.  그렇지만 실제 전장에 던져진 그녀는 서투른 신병에 불과했다.  그녀는 포복하듯 몸을 낮추고 앞서 달리는 군인을 따라 뛰기 시작했다.  몸 아주 가까이 스쳐가는 레이저 총알이 그녀의 액체 티타늄 갑옷 위에 반사되며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머릿속은 이미 하얗게 비어있었다.  판단력과  생각은 타고 온 군 수송선에 두고 온 게 틀림없다.

   

“아직 살아있었네.”

앞서 달리던 군인의 목소리다.  레이첼은  달리던 속도를 늦추며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대답도 나오지 않을 만큼 숨이 가쁘다.  헬멧 속은 그녀가 내뿜은 이산화탄소와 수증기로 가득 찬 느낌이었다.

“어두워졌으니까  이젠  덜 위험할 거야.”

군인이 바라보는 쪽에는  거대한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거대한 달 한 개와  작은달 세 개.

레이첼이 살고 있는 행성 글리제에서 밤하늘을 장식하는 달은 두 개뿐이었다.  그것도 거대하고 붉은 이곳의 달과 달리 차가운 푸른색을 띤 것들이다.  

“이곳 달은 글리제에서 보이는 달과  많이 다르지?”

잠시 밤하늘을 바라보던 군인의 말에 레이첼도  하늘을 바라본다.  레이첼 곁으로 바짝 다가온 군인은 작은 모래 언덕 위에 털썩 주저앉더니 쓰고 있던 헬멧을 벗었다.  

“헉!”

벗은 헬멧 사이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은회색 머리카락이었다.  길고 풍성한 머리카락이 군인의 허리까지 닿게 길었다.  붉은 달빛으로 뚜렷하게 음영진 얼굴도 놀라웠다.  

   

너무 예뻤으니까.

   

헬멧 속에 감춰져 있었다고 보기에는 어린 티가 흘렀다.  어쩌면 레이첼과 비슷한 나이인지도 몰랐다.

“오늘의 전투도 멈췄네.”

한숨 쉬듯 말하는 목소리도 예쁘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조용한 목소리는 군인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부드럽다.   여성이었다. 그것도 어린티를 벗지 못한.. 미묘하게도 고혹적인 향기를 뿜는 작은 프리지아처럼 아름다운 여군.


“달이 뜨면 전투가 멈추는 거지?”

레이첼의 대답에 그녀가 시선을 돌려 레이첼을 응시했다.  아름다운 얼굴을 살짝 가린  은회색 머리카락 사이로 미소 어린 검은 눈동자가 눈에 들어온다.  그제야  그녀의 ‘중령’ 계급장을 발견한 레이첼은 그만 얼굴이 붉어질 만큼 당황했다.  

“레이첼...?”

그녀는 레이첼의 명찰에 적힌 이름을 한 번 불러본다.  

“넵!  신병 레이첼 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대답했다.  상대가 중령인 줄도 모르고 감히 반말로 떠들어 댔으니 이젠 죽은 목숨이구나 싶다.

“달이 뜨면 전투가 멈추는 이유를 알고 있나?”

“넵!  이 행성의 달은  붉은색이며 거대하기 때문에 자기장을 교란시킵니다. 어떤 전자 장치도 제어할 수 없으므로 이때는 전투가 불가능합니다.”

“대답 잘 했어, 레이첼... 이병.  덕분에 붉은 달이 떠오르면 세상을 울리던 총소리며 비명소리가 딱 끊기지.  달이 하늘을 점령하고 있는 열 한 시간 동안은  침묵과  어둠의 세상으로 변하는 거야.  붉은 달을 또 본다는 것은... 우리 같은 군인들에게  또 하루를 살아남았다는 약속과도 같은 거란다. 레이철 이병은...  전장에서 이렇게 살아남은 날이 며칠째인가?”

“네?  저... 저는.. 붉은 달을 보는 건 지금이 처음입니다!”

“살아남느라 고생했군.  지금부터는 맘 편히 쉬도록 해.”

“저기, 중령님!”

레이첼은 그녀를 불러 세웠다.

“뭐지?”

“중령님은.. 중령님 정도로 잘 싸우게 되려면.. 며칠이나 걸립니까?”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상한 것을 질문한 것일까?

레이첼은 그렇지 않아도 쌍꺼풀진 큰 눈을 몇 번 꿈뻑이며 그녀의 눈치를 봤다.  

“나는... 아마도... ”

마침내 그녀가 입을 열었다.

“7 년쯤 살아남았을 거야.  크리스마스와 공휴일엔 전투에서 빠진 날도 있지만.  그리고 내 이름은 벨로나 야.”

“벨로나... 요?”

레이첼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글리제 행성에서 가장 독한 여전사, 가장 많은 적을 죽였다는 그녀, ‘붉은 코브라’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아무도 얼굴을 본 적이 없다는 바로 그 벨로나가  지금 그녀 눈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제1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