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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Dec 19. 2018

2018년 12월,  그 마지막을 향해

편린  28

얼마 전  친구와  마주 앉아 식사를 한 적이 있다.   추운 날씨였기 때문인지,  저녁 식사 시간으로는 좀 늦었던 탓인지  식당안에는 손님이라고는 우리 두 사람 뿐이었다.   그곳은 친구의 단골집으로  일식전문점이었고   친구는 항상 히레까스를 주문했다.   나는 이것 저것 먹어보는 습관때문에  그 식당의 거의 모든 메뉴가 조금씩 등장하는 '오이시정식'을  주문한다.   어쩌다 보니  그 식당에만 가면  그렇게 하도록  되어버린 것처럼.


그날  친구는 밥을 먹다 말고  난데 없이  

"널 보면 전혜린이 생각나."

라고 말을 꺼냈다.   나는 젓가락으로 집어 들었던  돈까스 조각을  그대로  든채  한동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친구의 얼굴을 응시하고 있었다.   

"너도 불안할 만큼 텅 비어있는 느낌이 들거든."

친구는 더 말하지 않았지만  그 다음 말이 대강 짐작이 갔다.   

"왜?  내가 자살이라도 할 것 처럼 보여?"


친구는 내 질문에 고개를 젓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요즘 아무 생각도,  느낌도  미래에 대한 계획도 없이  살고 있는 내 상태를.  그래서 였을까?   가끔 가만히 나를 바라보기만 하던  친구의 눈빛이 기억났다.    그러고 보니  주위에서  알고 지내던 분들이 요즘 나를 보면  '좀 변한 것 같다.' 고 하시는 걸 여러번 들었다.   좀 변했다는 게  '우울해 보인다'거나  '의욕이 없어 보인다'는  뜻인것도  설명 들었다.   그러나  실제로  내가 느끼는 변화는  크지 않았으므로  그때 마다 좀 피곤한 모양이라며  웃어 넘겼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친구의 말을 들었을때는 그저 웃어넘길 수 없었다.   그 전날  잠이 오지 않아 이리저리 뒤척이며  '내가  과연 잘 살고 있는 것인지'  고민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눈에 보이는,  손에 잡히는 뭔가를 얻기 위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던 게 아닌지  반성하다 잠들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살고 있을때 까지도  나는 항상 '다른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왔다.   부모님의 마음에 드는 딸이 되기 위해,   직장에서는 능력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서  정작 나 자신에  대한  시간은  거의 없이 지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처음에는  적응하느라  나를 돌볼 시간이 없었다.   아마도  그럴때 나는  애써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다니고는 있었지만  사실은  허공에 떠 있기만 했던  나비였는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나에게는  짊어지고  날아다니기엔 버겁게 무거운 짐들이었는지도 모른다.   

한국으로 돌아와서야 마음 편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나서야 오롯이   자신을  위해 음식을 먹고   잠을 자고  책을 읽고  뭔가를 썼다.   그 과정을 통해 느낀 것은  내가 텅 비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알고 있는 것은  죄다  바닥났고   새로운 생각이 전혀 떠오르지 않을 만큼  감성이 메말라 있었다.  미친듯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여행을 다녀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았다.  어떤 갈증,   내 영혼이 태어날때 갖고 있었던  선천적 갈증만큼은  아직도 존재했다.   


"그렇다고  죽지는 않아."

나는 친구를 향해 대답해 주었다.   자살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의욕도 아무나 가지는 것이 아니다.   나는 살아있어야 하고  숨을 쉬고 있고,  지독히 비어버린 내 영혼을  채워 넣고 있을 뿐이다.   짐을 벗고  가벼워진  나비는  아주 쉽게 날아오른다.   가볍게 날아오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눈에는 의욕이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아주 자유롭다.   읽고 싶었던 책을 마음껏 읽고  좋아하는 것들을  즐길 수 있으니.   


내가 좋아하는 명언 중에는 이런 것이 있다.

I met a lot of people in Europe, I even encountered myself

(James Baldwin)

나는 유럽에서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심지어 나 자신까지도.


미국의  흑인 작가였던  제임스 볼드윈은  한동안 파리에서  살았는데  아마 그때의  볼드윈도  지금의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릴때 부터  정신 없이 달려오던 삶을  어느순간  멈추고  다시 돌아보는,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진정한 나 자신과 만나는,  괴롭게 고통스럽지만  더 이상 피해갈 수 만은 없는 순간을  마주하는 것.


나라는 사람이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아니  이 지점에서 더 자랄 수 있을까

내 미래는 어떻게  변화해 나갈까

어쩌면

전혀

변화라는 게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았지만  다행스럽게도  결론에 닿았다.


나는 더 이상 애쓰지 않으려고 한다.

의욕을 가져 보려고,  행복하게 살아보려고,   능력 이상의 글을 써보려고  애쓰지 않으려고 한다.

비어있던  나를  채울때 까지  책을  읽고 또  읽고   어느날  글이 써지는 순간까지  기쁜 마음으로 기다려 보려고 한다.

모든 것에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공허하고  의욕 없어 보이는 겨울을  보내고 나서야  생동감 넘치는 봄을  맞이하는 것처럼   지금  쓸쓸하고 힘들어 보이는 이 시간을  잘 보내고 나면  언젠가  행복한 시간이  달려올거라고,   그때는  더 멀리,  더 가볍게  환한 태양을 향해  날아갈 거라고   친구에게 대답해 줄 순간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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