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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May 16. 2019

그들의 덕목

너무 높은 기대치에서의 탈출 1

얼마 전 피트니스 센터에서 팔운동을 했던 게  문제였다.  그날부터 살살 아프던 왼쪽 어깨가 요 며칠 더 심하게 아프더니 움직이지도 못할 만큼 심해졌다.  잠도 못 잘 만큼 아프다 보니 결국 병원에 가야겠다 결심했다.   나는 병원 가는 것을 싫어한다.  '좋아하지 않는다'정도가 아니라 매우 싫어하는 편이어서  어지간히 아프지 않으면 병원에는 가지 않는다.   미국에서 살 때는 종합병원에서 근무했으니까  내 몸이 좀 안 좋다 싶으면  동료들끼리 도움을 줄 수도 있었는데  심지어 그때에도 아픈 걸 참아버리곤 했다.   물론 그때는 어렸으니까  조금만 참으면 곧 나아질 거라는 확신도 있었고  솔직히 아픈 곳도 많지 않았다.   그런데 요 며칠 어깨가 심하게 아프고 나서는 '병원 가야겠는데' 싶어 졌다.

우스갯소리로  병원에서  하는 말이 있었다.   '의료계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이 환자로 오면 가장 진상 환자가 된다.'는.  실제로  은퇴하신  간호과장님은  병원에 입원하시고 모든 간호사들을  울리신 적이 있다.  겉으로는 다정하고 깔끔한  파란 눈의 할머니셨는데  막상 환자복을 입고 나서는  들어오는 간호사마다  주사 바늘을 왜 그렇게 쥐느냐,  링거 수액을 왜 그렇게 주느냐,  약을 주는 방법이 틀렸다,  병실에 들어올 때  인사를 제대로 안 하느냐는 질책을 쏟아놓으셨다고 한다.   덕분에 간호사들은 그 분이 퇴원하고도 한동안 기억했다.



어제 아침에 집 근처 정형외과를 찾아갔다.  네이버에서  검색했을 때  리뷰가 좋지 않았지만   타고난 길치인지라  더 멀리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일단 어깨가 너무 아프기도 했다.  네이버에서 본 리뷰에 따르면  '접수 데스크' 단발머리 여직원이 무척이나 불친절하고  '의사 선생님이  목소리가 너무 크다' 고 한다.

어깨가 너무 아픈데  불친절한 것 쯤이야 상관 없다고 생각했지만  마음 한켠에는 불안한 마음도 있었다.


    3층에 있는 병원에 딱 들어갔는데  정말 단발머리 여직원이 접수 데스크에 앉아있다.   나도 모르게  자꾸 쳐다볼 만큼 미인이었다.   여성이라면 알겠지만  단발머리가 시크하게 청초하게 잘 어울리는 건 정말 쉽지 않다.   "신분증 주세요."얼음공주처럼 예쁜 직원은 내게서 신분증을 받는 내내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볼이 빨갛게 변했다.  아마도 수줍음이 무척 많은 성격인 걸까.   나와 겨우 눈이 마주치니까  살짝 웃어 보인다.  수줍음이 많아서 대답을 어물어물하다 보니 불친절하게 보인 게 아닐까.  혼자 생각하며  진료를 기다리는데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니,  내가 그 팔을 부러뜨린 것도 아닌데  왜 자꾸 나한테  그러세요?"


환자는 얌전해 보이는 할머니시다.   너무 팔이 아파 왔다는 말만 자꾸 되풀이하시는데  의사 선생님은 더 크게 말씀하신다.


"그러니까요,  그 말을 보험회사에다 하셔야지요.  왜 저한테만 자꾸 그러세요?"


네이버 리뷰가 맞나 보다.  목소리가 크긴 무척 크시다.  그리고 조금은 불친절하게 보이기도 한다.    어찌어찌 내 차례가 되어 진료를 받는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보통이 아니시다.   검사도 참 세심하게 하시고  약도 엄청 신경 써서 주신다.  문제는 무뚝뚝하고 목소리가 크셔서  그 부분이 가려져 보이는 것이라고 할까.  엑스레이도 찍고  검사가 끝나자  선생님은 역시 큰 목소리로  "물리치료받고 가세요!"하시더니  "내가 군의관으로 일할 때 귀가 다쳐서 잘 안 들립니다.  목소리가 너무 컸지요? 미안합니다."하는 말씀을 역시 무뚝뚝하게 하신다.


오해는 참 작은 것들로부터 시작된다.    목소리가 큰 의사 선생님과  예쁘지만  수줍어서 불친절한 여직원이 있는 이 병원은  네이버에 달린 리뷰 탓인지  환자가 거의 없어 참 한산하다. 덕분에  별로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미국 병원에서 근무할 때  '친절 교육'이라면 신물이 나게 받았었다.  말 한마디 하는 법도 다시 배우고 또 배웠다.   복장에 대해서도 지겹게 교육받다 보니  근무하는 동안에는 '수술복'만 입는 게 더 편했다.    환자를 보면 웃고  어떠냐고 묻고,  환자의 모든 말에 귀 기울이고  공감해야 한다고 배웠다.  

물론 그 교육은 맞다.  다정한 얼굴로  어떻게 오셨어요?라고 물어주는 사람이  의료인이 되는 게 좋은 것도 맞다.   그런데  우리가 잠깐씩 잊고 있는 사실이 있다.


수줍음을  많이 타는 접수대 여직원도  귀가 잘 안 들리는 의사 선생님도  계시다는 걸.


친절이란 겉으로만 보이는 태도와 말투면 다 되는 것일까?

앞에서는 웃으며 대하고  돌아서면 흉보는 사람보다는  수줍어서 눈도 잘 못 마주치는,  목소리는 크지만  진료를 잘해주시는  분들이 있으면 되는 게 아닐까?  

오히려 내 눈에 거슬렸던 건  진료를 기다리며  커다란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핸드폰 게임에 빠져 있던  남자 환자와  이어폰을 꽂지 않고 핸드폰 음악을 크게 듣고 있던 다른 환자들이었다.    내 옆에 앉아계시던 할머니께서도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접수대 여직원에게  "음악 좀 줄여 달라고 말 좀 해봐요." 하시니까  여직원은 "그런 말 하면 더 난동 부리는 사람들이 있어서요." 하며 말꼬리를 흐린다.


병원의 불친절을  리뷰에 올리며 토로하시던 분들은 과연  환자들의 태도에도  같은 반응을 보였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난 좋은 의미의 개인주의자라고 생각해요. 내가 중하니까 남도 중한 거지, 전체를 위해서 나 개인을 희생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사람이 사람을 억압하는 사회가 싫은 거죠."


-『박완서의 말』(마음산책) 중






이상은  '동네에서  네이버 평점이 가장 낮은 병원에 다녀온 기록'이다.   '불친절하다'와  '목소리가 크다'는 말들의 중의적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 오늘,   갑자기 찾아온 어깨 통증 덕분에  누군가가 꼭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관념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다정하게 세심하게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타고난 성향 때문에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대신 그들의 마음은  다정하고 세심한 거라고,  그러므로 나는 앞으로도  이 병원에 계속 다닐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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