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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Jun 03. 2019

청소의 기억

첫번째 이야기

유년의 기억 중에서 어떤 것은 당시엔 너무 어려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단지 기억 속에만 묻어두었다가 오랜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후에야 비로소 그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다.
고령화 가족 - 천명관


어깨가 아파 한동안 소홀했던 방청소를 했다.  평소에는 적당히 먼지만 닦아냈지만  오늘은 맘먹고 서랍부터 비웠다.  자잘한 것들, 오래된 것들을 다시 정리한다.   다 쓴 줄 알고  하나 더 샀던 자잘한 것들과  금세 먹을 거라고 생각해서 사둔 간식들도 꽤 많이  나왔다.  혼자 쓰는 양이 정해져 있다는 걸 자주 깜박하고   이것저것 써보겠다고  욕심부렸던 것이 문제다.  어느새 내 과욕의 증거가 방 한쪽에 쌓였다.  

그것들을  분류하고  다시 정리하면서  손이 바빠진 대신 생각은 한가해진다.  문득문득  지난 기억들이 떠오르고  깜박 잊고 지나쳤던 일들이 생각난다.   


재미있는 일은 문득 떠오르는 그 생각들 대부분이  '걱정'이나 '후회'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때는  사소하게 지나쳤던 일들이 다시 책을 읽듯 선명하게 떠오른다.   얼마 전 만났던 동생에게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못 한 게 아닌지,  미국에 계신 엄마도 어깨가 아프시다고 했었는데 지금은 어떠신지,  요즘 유난히 피곤해하는 그 사람의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그래서  청소를 하다 말고 동생에게 카톡을 하고   미국에 전화해서 부모님의 건강을 묻고  그 사람에게는 아픈 데가 없는지 묻는 메시지를 남겼다.   물론 돌아오는 것은 '너나 건강하게 잘 지내라.'는  시크한 대답이었지만.


동생이 "왜 갑자기, 뭔 일로?" 하고 생뚱맞은 카톡을 면박한다.  대답은 물론 '그냥'이다.  그냥 궁금해졌고  걱정되었고  그래서 그냥 보낸 것뿐이라고.


그러고 보면 엄마도 그런 적이 있으셨다.  직장에서 바쁜 나에게 갑자기 전화하셔서  잘 지내냐고  밥 잘 먹고 다니냐고 물어보신다거나  난데없이 옷이나 음식을 보내주기도 하셨다.  그럴 때마다 나는 또 무슨 걱정을 하시느냐고,  저는 잘 있으니 걱정 마시라고  지나가듯 대답하고는 했었는데.

오늘은 그날,  그때에  엄마에게 조금 더 다정하게 대답할 것을,  엄마의 말에 귀를 더 기울일 것을,  선물 감사했다고 한마디라도 더 해드릴 것을..   걱정에 더한 후회와 함께  다음에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조금은 더 다정한 사람이 되어주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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