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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Jun 25. 2019

게임의 기억

두 번째 이야기

요즘 열심히 하는 게임이 있다.   말이 좀 많았던 광고에  성인용 콘텐츠라며 비판을 받았던 종류로  처음 그 게임을 시작했을 때는 주위 여론이 그런 것인지 전혀 몰랐었다.    역사에 흥미가 있고  특히 중국 역사에 관한 책을 찾아보고 있었기 때문인지  중국 어느나라를 배경으로 한  이 게임은 내 취향에 꽤나 맞아 들어갔다.  내용도 그럴듯 하고  광고만큼 성인용 게임도 아니어서  나중에 광고에 대해 알게 된 후에는 게임 내용과 맞지 않아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내 것은 긴 머리를 묶어 올린 여성 캐릭터로  닉네임은 '검신'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실 때  '너는 과거에 급제하여 성공하라'신 유언을 받들어 세상에 뛰어드는 인물.   처음에는 종 9품이었던 나는  게임 시작 한 달 만에 관리로서 백성을 다스려 치적을 쌓고,  성에 쳐들어 오는 적과 전투하고,  내 휘하 문객들을 승급시키며 아름다운 미녀들을 수 십 명  아내로 거느린  정 4품 관리가 되었다.


이 모바일 게임은 꽤 많은 퀘스트와  미니 게임을 함께 하는데  유저들끼리 '연맹'을 만들어 전투하는 미니게임도 있다.   관품이 올라감에 따라 나도 연맹에 들어갔고 ( 연맹은 맹주와 부맹주,  정예와 인원으로 구성된다) 게임도 잘 못하는데  내 의지와 상관없이 부 맹주가, 그  이후에는 맹주가 되었다.   한 서버에 50여 개 되는 연맹중 내가 속한 곳은   그중 10위 정도 하는,  얌전한 연맹이다.  '얌전한'  연맹이라 함은  내가 속한 연맹 구성원들이 다른 분들과  딱히 크게 다투지 않고  정해진 룰을 잘 따르는 편이라는 의미다.  다투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 내 성격탓인지  이상하게도  연맹 분들 모두가 나처럼 조용히 게임만 하신다.    전투를 하기 위해서는 맹원들 간의 화합이 필요한 탓에   카톡 창을 열고  다른 연맹에 대항하며 함께  게임을 하다 보니 어느새  연맹원들 사이에 '정'도 들었다.  


얼마 전,  10권 이쪽저쪽을 맴돌던 얌전한 우리 연맹에게  1, 2 위를 다투는 센 고수들만 모인 연맹에서 합병 제의가 들어왔다.  14명 맹원들이 카톡창에 모여 한동안 회의를 했다.  센 연맹으로 옮기게 되면  고수분들이 많아져 게임이 더 다이내믹해지기는 하겠지만  지금처럼 아기자기한 즐거움은 사라지지 않겠냐는 불안감이 큰 모양이었다.   반면 게임은 게 게임일뿐,  더 센 연맹원이 되어 더 큰 즐거움을 누려보는 게 좋다고 생각하던 나는 맹원들을 다독였다.  결국 합병이 성사되었고  나는 약한 연맹 맹주에서 센 연맹 부 맹주가 되었다.  게임 속 작은 세상에서도  수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연맹이 합병도 되고  작은 연맹은 사라지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1등을 위해  큰돈을 쓰기도 하고  다른 이들은 끝끝내  돈을 쓰지 않으며 게임을 하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는  그걸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게임 속 캐릭터가 아무리  최고가  되어도,  1등이 되어 왕이 된다고 해도  게임은 게임일 뿐,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이 게임을 할 때마다  나는 '김만중'의 '구운몽'을 떠올린다.   작은 오두막집이었던 배경이 작은 고을로 변하고  그 고을이 점점 커지고 화려해지고,  관품이 올라갈수록  세력과 영토가 커지는 모습이,  아름다운 아내들을 맞아들이고  그녀들이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이 혼인을 하고....   게임 세상 안에서는 한 인간의 인생이 이어지는데  게임하는 우리들에게는 하루 한 시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일 뿐이다.   관품을 올리려고  공부를 하고,  전쟁에 나가고  토벌을 하고....  주인공은 잠잘 새도 없고  취미도 없는 삶을 산다.  그의 취미는 관아에서 문객들과 토론하는 일이거나  무역에서 돈을 벌어들이는 일일 뿐이다.    그렇게 미친 듯 열심히 살던 주인공은  어쩌면  '왕'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금빛 왕복을 입고  게임 세계 안 모든 혜택과 존경받으며  으스대고   나보다 약한 이들에게 자비도 베풀고  아름다운 미녀들의 투정에도  껄껄 대며 웃어댈지도 모른다.   장성한 아이들을 어느 집안에 혼인시켜야  세력을 키울 수 있을까  고민하며 잠들지도 모다.  그는 행복한 것일까?  행복할 권리가 아예 없는 게 아닐까 싶다.  그는 인간이 아니라 게임 케릭터일 뿐이므로.  혹은...  자신이 행복하다는 최면에 걸려 열심히 맡은 일을 수행하고 있는지도.




하루하루 수많은 전쟁에 참전하고 돌아와  막 쉬려고 앉은 주인공은   자신의 의지가   삶을 이룬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주인공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유저의 손끝이다.  유저가 게임을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주인공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게임 속 주인공들은 유저의 절대적 힘을 알지 못해서,  오로지 할 줄 아는 일이라고는 주어진 캐릭터에 충실한 것뿐이다.   악당은 화를 낼 뿐이고  미녀는 웃을 뿐이다.  그리고 주인공은 오늘도 열심히  고을을 돌보고  전쟁에 나가 승리한다.   

만약.....

이 모든 것이 게임일 뿐이었다고 말해준다면 ,  인생은  유저들의 심심풀이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주인공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어쩌면....

현실 속 우리도 같은 존재일지 모른다.

수많은  욕망이 가리키는 곳에  존재하는 것들조차도  살아보면 별거 아닌,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그렇게 아등바등할 가치는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다행인 것은  게임 속 캐릭터가  그들이 게임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영원히 깨닫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그 안에서 나름 심각하고 열심한 삶을 살다  끝마치겠지.   자신의 삶을 조종하는 거대한 힘 따위는 존재하는 줄도 모르는 채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삶에서  찾아 달려가야 할 내 삶도 그랬으면 한다.     눈에 보이는 성공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재력도,  욕망의 정점을 정복한  쾌감도  내 삶의 목표가 아닐 테지만  어딘가에는 인생의 목표가 존재한다고 믿으며 그것을 찾아 열심히 달리고 싶다.    행복과  불행을 좌지우지하는 거대한  힘이 있어   아무리 내 삶을 흔들어 댄다고 해도   나는 내 삶을 나답게  나만의 모습으로  살아나가고 싶다.    게임 속 항상  예쁘게 웃는 캐릭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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