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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Jun 28. 2019

사랑의 기억

세 번째 이야기

당신이 내 곁에 앉자마자 버스가 출발했다.   한 시간 이상 버스를 타면 멀미가 난다.  평소라면 절대로 타지 않았을 고속버스를  당신과 함께라서 탔다.   아침이라 아직 한가한 고속도로위를 버스가 달린다.  따가워지는 햇살 때문에  버스 창문이 허물어지는 것만 같다.  커튼을 내리고 그늘 속에 숨는다.  얼굴과 팔과  몸을 그늘 안에 숨긴다.

"피곤하지 않아?"

당신은 자상하게 묻는다.  자상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가끔 생각해 보지만 결론은 항상 같다.   나는 당신을 좋아했을 거라고,  자상하든  자상하지 않든.


버스가 속력을 내자  앉은 좌석이 마구 흔들거린다.  오래된 자동차 부품이 삐걱이는 소리가 들린다.   여기서 죽으면 어쩌지?  갑자기 두려워진다.   나도 모르게 당신의 손을 내 손으로 붙잡는다.  나는 길 잃은 아이다.  보살펴줄 어른이 필요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나를 위로해 줄 다정한 어른.  

"괜찮아?"

내가 손을 너무 세게 잡았는지  당신이  놀란 듯 묻는다.  괜찮아 라고  대답하려는데  걱정스러운 당신을 보니  마음이 달라진다.  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   당신이  내 이마를 한 손으로 짚어본다.   사실은 아무렇지도 않아.  아니,  아무렇지도 않아졌어.  하고 나는 웃는다.   당신은 따라서 웃는다.  흔들리는 버스가  함께  웃는다.


버스가 너무 세게 달리나 싶더니  가파르게 차선을 바꾼다.  차가 좀 이상하니  한번 봐야겠다고  기사님이 말씀하신다.  낯선 휴게소  넓은 주차장에  버스가 섰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휴게소 건물에 들어가기로 한다.

"멀미  어때?"

당신이  내 손을 잡으며 묻는다.  살짝 잡혔던 손이  가볍게 흔들거린다.   아직은 괜찮아하며  얼마나 더 가야 하냐고 물었다.  

"온 만큼 보다 세 배는 더 가야 해. "

당신은  가끔 지나치게 과학적이고  철학적이고  정확하다.  심지어 핸드폰에서 지도를 열어 보여준다.  지도를 보는 척 하지만  나는 당신만을 보고 있다.  당신의  듬직한 팔뚝과  무심한 어깨를 본다.  


버스가 다시 출발했을 때  승객 한분이 크게 말했다.

"이 버스 다 고친 거 맞아요?"

속도가 올라가자 버스는 다시 달그락거리기 시작했다.   승객의 걱정이 전염된 것인지  슬그머니 불안해진다.  다 고친 것 맞을까?   고속도로 위에서 갑자기 버스가 고장 나서 멈춰버리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워진다.  버스가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큰 사고가 날지도 모른다.  불안이 자꾸 커져가서 나는  곁에 앉아  책에 몰두한 당신을 흘끔 댄다.  만약 사고가 생겨 내가 죽는다면  당신도 함께  죽겠구나.  그걸 깨닫자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만약 죽는다면  나는 다시 태어날 거야.   당신의  눈 옆에 자리 잡은  작은 사마귀로.  왼손 넷째 손가락에  숨겨진 보라색 점으로,   당신의 미소로, 행복으로.


"힘들지 않았어?"

당신의  물음에 어린아이 같은 내가 고개를 젓는다.  결핍으로 허덕이던 슬픈 영혼이  당신과 함께 하는 동안 힐링되고 있다고,  예전에 받았던 커다란 상처를  아물게 해 준 이가 당신이라고.

속삭임이 부풀어 올라 내 심장을 채운다.  행복으로  나를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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