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기억

여덟 번째 이야기

by 영인

진실을 전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필요하다. 하나는 그것을 말하는 사람이요, 또 하나는 그것을 듣는 사람이다. 진실을 전하는 유일한 방법은 사랑을 담아 말하는 것이다. 사랑이 담겨있는 말만이 호소력을 갖는다. 명분만 앞세운 말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우리는 오래도록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머뭇거리다 꺼낸 말을 들은 그가 읽고 있던 책에서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발.'

하고 나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우리가 예전과 같이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러나 현실은 항상 나에게 가혹했었다. 상상하기 싫은 일들이 일어났고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감당해나가야 했다. 그래서였다. 오래오래 감추어둔 그 말을 꺼내지 못했다. 소중한 그를 잃고 싶지 않아서.

매번 진심은 내 심장을 간질였다. 입을 열고 튀어나오고 싶어 했다. 간직한 진심과 진실한 사랑은 항상 상충되며 내 혈관을 조여왔다. 오전에 한잔 마신 커피에 더해 한잔 더 마신 오후의 커피 탓이었을까.


진심은 갑자기 튀어나왔다. 오래 잠겨있던 금기의 상자가 열렸다.

'아마도 그는 나를 떠날 거야.'

한때 나에게는 소중한 사랑이었던 순간들이 '너의 착각'이었다며 부정당할지도 모른다고.

그는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분노하거나 증오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떠난다면 붙잡을 수 없을 거라고.

일초 하고도 약 삼분의 일 초를 더 하는 동안

나는 수 십 번의 이별 연습을 했다.


"미안해."

겨우 한마디만 할 수 있었다. 그 이상의 진실은 없었으니까.

진심인 줄 알았는데 거짓이었던 마음에 데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진실을 보여준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른 이가 보여주는 마음이 진심일까 아닐까 자꾸만 의심하게 된다는 것을. 발목까지 차오른 사랑이 더 깊어지면 곤란해. 도망칠 마지막 기회였다. 나도 모르게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씩 홀짝거린다.


"나는 바닐라 라테로 마실래."

그의 대답이었다. 내 반응을 보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어제 마시던 것과 똑같은 그것을 주문하고 돌아왔다. 맞은편 자리에 앉아 읽던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침묵.

"화 안내? 아까 내가 말한 거 들었잖아."

"화를 왜 내? 별것도 아니구먼. 예전부터 네가 항상 하던 말이었잖아."


진심인 줄 알았는데 거짓이었던 마음에 데어본 적 있는 사람은 안다.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텅 빈 말과 짧지만 고귀한 진심이 담긴 말이 어떻게 다른지. 사랑처럼 보여도 사랑이 아닌 것과 사랑이 아닌 듯 보여도 사랑인 것을 안다.


"우리도 다음에 이곳에 가볼래? 읽어보니까 참 좋아 보이네. 같이 가보고 싶을 만큼."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오래 망설이던 내 손이 그의 손을 잡았다. 진심이니까. 나와 그의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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