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배우기

에필로그 : 작은 시작과 거대한 변화

by 영인

자전거를 배우는 동안 내내 흥얼거리던 음악이 있었다. 페달을 빨리 밟으면 짜릿하게, 천천히 밟으면 느슨하게 들리는 곡. 요즘 자주 듣는 '보사노바' 장르의 Corcovado (Quiet Nights Of Quiet Stars) (Feat. Astrud Gilberto, Antonio Carlos Jobim)다. 시적인 가사에 가슴에 스며드는 것 같은 멜로디, 가끔 깔리는 관악기 소리에 속삭이는 여가수의 목소리가 자전거 타는 것과 은근히 어울린다.

포르투갈어로 ‘새로운 경향’을 뜻하는 보사노바는 1960년대 브라질에서 탄생했다. 브라질 삼바에서 갈라져 나왔지만 삼바보다 덜 격렬하고 더 감미롭다는 평을 듣는다. 악기 역시 삼바에 비해 타악기의 비중이 적고, 어쿠스틱 기타나 피아노 하나만으로도 연출이 가능하다. 느긋한 코드의 변화와 은근한 리듬, 여기에 자연스레 울려 퍼지는 멜로디가 보사노바를 전 세계에 알린 요인이다. 스탄 게츠와 주앙 질베르토가 함께 녹음한 앨범 [Getz/Gilberto]가 보사노바 붐을 일으켰다. [네이버 지식백과] 보사노바 [Bossa Nova] (음악 장르 백과, 김학선, 박정용, 이경준)


자전거를 배우기 전에는 나름 로망이 있었다. 어릴 때 인상 깊게 보았던 광고 한 부분에서처럼 자전거 앞 바구니에 바게트 빵을 담고 시골길을 달리는 상상을 했다. 한가로운 숲길이나 우아한 들길을 달려 빈티지풍 카페에 내리면 포근한 카페 안에서 책을 읽고 있던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상상을. 자전거를 배우기 시작하면서는 재즈보다 보사노바를 더 듣게 되었는데 그건 재즈보다 흥겨운 보사노바의 리듬 탓이다. 음악을 들으며 타면 달리는 데 말고 음악에 정신이 팔려서인지 힘든 것을 모른다. 아침마다 두 시간 달리는 수업시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나름 고안해 낸 필살기 정도로 해두자.

자전거 타는 이들을 바라보면 경쾌하고 신나게 보이지만 타는 사람 입장이 되어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언덕을 올라갈 때는 숨이 막히고 심장이 터져나갈 것만 같고 내려올 때는 넘어질까 봐 아찔아찔 하다. 다리가, 허리가 아니 온몸이 배기고 아팠다. 연못 위에서는 우아한 백조가 연못 아래에서는 허겁지겁 발을 놀리듯 자전거도 그렇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다리를 쉼 없이 움직여야 한다. 멈추지 않으면 넘어지지 않으니 넘어지지 않으려면 계속 앞으로 가야 하는 거다. 기본 체력이 좋지 않은 나같은 사람에게는 '노동'처럼 힘들고 버거운 운동이었다. 자전거 잘 타는 친구도 '자전거 탈 때마다 죽을 것처럼 힘들었다.'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이 끝난 지금도 자전거를 사고, 따릉이를 빌려가며 자전거를 계속 타게 되는 이유가 있다.


그 첫 번째는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는 성취감이다. 덕분에 자전거 자체에도, 타는 데 필요한 장비에도 큰 관심이 생겼다.


두 번째는 자전거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다. 달리는 탈것을 타면 느낄 수 있는 짜릿함, 행복감 그 자체를 즐기다 보니 자전거를 배운 이후 전보다 건강해진 느낌이다. 지난 2 년 동안에는 내내 몸이 좋지 않았다. 자주 감기에 걸렸고 소화장애에 불면증, 우울증, 어깨와 목 통증, 심지어 먹는 음식마다 알레르기까지 생겨 몸을 괴롭혔다. 몸이 아프니 정신이 피폐해졌고 생각이 약해졌다. 글을 써도 자꾸만 비관적이 되어갔다.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 온 후 한 달 만에 자전거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거짓말처럼 아픈 게 나았다. 운동으로 피곤해서인지 밤에는 푹 잠들었고 어깨와 목 통증도 사라졌다. 음식 알레르기며 소화장애도, 감기도 걸리지 않은 채 겨울을 보낸다. 몸이 상쾌해지고 생각이 밝아지고 그래서인지 우울증도 나았다.


세 번째는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수업을 함께 했던 분들이 40여분. 다양한 직업과 연령대의 여성들이었다. 자전거를 타며 애쓰던 모습을 서로 아는 탓에 다시 만나면 지금도 자전거 이야기로 웃음꽃이 핀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자신을 잃어버렸다. '나'라는 사람은 '나'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딸이거나 엄마, 할머니, 아내, 직원, 부하로 살기 급급하다. 엄마라서 아이들에게 베풀어야 하고 아내이므로 남편을 도와주어야 하고 부하이므로 사소한 것은 참고 넘기다 보니 나 자신의 감정은, 생각은, 꿈은 잊어버린 지 오래다. 자전거를 탈 줄 모르던 나에게 있어, 자전거는 나와 거리가 먼 물건, 남들에게나 가능한 희망, 내 주제와 어울리지 않는 허튼 꿈이었다. '자전거 배우기' 수업에 참여한 것은 '나는 자전거를 탈 수 없다.'는 선입견을 깼고, '자전거도 탈 수 있었구나' 하는 가능성을 찾았던 작지만 거대한 도전이었다. 나 혼자였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르지만 함께 했던 분들의 반짝이는 눈빛을 바라보며 힘을 냈었다. 그분들이 준 에너지는 '나도 할 수 있구나' 하는 확신과 함께 꺼져가던 내 안의 열정을 다시 켜주었다. 수업이 끝난 후에도 나는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보다는 계단을 이용하고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니는 습관을 들이는 중이고 날이 따뜻해지면 자전거에 다시 오를 생각에 즐겁다.


그러고 보면 이번 수업을 통해 나는 '자전거'를 배웠던 게 아니라 '꺼져가던 가능성'을 다시 배운 모양이다. 다시는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래서 포기했던 가능성을 다시 마주하고 두려움과 싸워 이기던 그 짜릿한 순간을 앞으로도 자주 기억하며 행복해하리라. 열정의 불을 켜고 새로운 길을 향해 달려가리라. 내가 가려는 곳이 아무리 멀어도, 안개로 길이 보이지 않더라도 이제는 포기하거나 주저앉지 않고 계속 페달을 밟아보리라. 움직이고 있는 동안에는 넘어지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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