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와 감기

2020년 9월 3일 ; 태풍 마이삭의 영향권 안에서

by 영인

마루는 하루 종일 잠만 잤다.

마루가 동생 네에서 돌아온 후 며칠 동안에는 밥도 거의 먹지 않고 잠만 잤다. 내가 돌아다니면 나만 따라 다니고 내가 앉아서 쉬면 곁에 붙어 잠만 잤다. 잠도 내 무릎에 올라 앉아 내게 몸을 기대고 잔다. 마치 며칠을 못 잔 애 마냥 잠만 잤다.


동생네 집에서 너무나도 잘 지내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미국에서 돌아와 마루와 다시 만났을때 만 해도 생기가 넘친다 했다. 그런데 잠만 자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재채기도 하고 콧물도 흘린다. 더위에 지쳐가던 8월이 지나 갑자기 서늘해진 날씨 탓인지 나도 머리가 띵 하며 감기 증세가 오기는 했다. 내가 먹을 감기약을 지으면서 근처에 있는 동물 병원에 들렀다.

"저희 강아지가 재채기도 하고 콧물도 나요."

했더니 수의사 선생님께서 강아지 몸무게를 물어보셨다. 3.4키로라고 말씀 드렸더니

"일단 이틀치 지어드릴게요. 먹여보시고 효과 없으면 데리고 나오셔야 돼요."

하신다. 나랑 있으면서 마루가 아픈 게 처음이라 여간 신경쓰이는 것이 아니다. 걱정스런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약 봉지를 건네 주셨다. 캡슐이나 알약일 줄 알았는데 가루약이었다.

"가루약이네요. 이거 어떻게 먹이나요?"

놀라 여쭤보니

"딸기잼에 섞어 억지로 먹이시거나 통조림 사료에 섞어서 먹이세요."

하신다. 아주 쉬운 일처럼 말씀하시니 나도 더는 여쭤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 약 부터 먹고 마루에게 막상 약을 먹이려는데 가루약을 잘 먹일 자신이 없다. 가루약 먹이는 방법을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동생에게도 카톡으로 물었다.

"가루약 어떻게 먹이지?"

"오, 가루약 나 완전 잘 먹이는데."

"진짜?"

"입 벌리고 탁 털어넣으면 돼."

동생은 오래전 부터 강아지를 키웠던, 애견 계의 고수다. 나 같은 초보가 알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역시 도움이 안되겠다 싶은데

"언니, 통조림 사료에 약 섞어서 먹여봐."

한다. 역시 그 방법밖에 없구나 싶었다. 마루는 입이 짧고 사료도 많이 먹지 않는 편이어서 통조림 사료를 골고루 사두었다. 그 중 이번에는 닭고기 사료를 꺼냈다. 약을 섞어 그릇에 담아주니 의외로 잘 먹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쉽게 해결 된 것이다.


20200904_063856.jpg
com.daumkakao.android.brunchapp_20200904084544_1_crop.jpeg




갑자기 날씨가 이렇게 서늘해 질 때면 불쑥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그 순간 그 사람은 왜 그랬을까? 그리고 나는 왜 그러했을까. 씁쓸히 돌아보게 되는 자잘한 기억들이. 그랬었지, 그래서 그랬겠지. 혼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아련한 추억들이. 그때의 나는 몸이 아닌 마음의 감기를 앓았고 영원히 낫지 못할 것 같았던 그 감기도 어느새 말끔히 나아 지금은 가슴 한 켠 퇴색한 기억 몇 조각만 남았다.

죽을 것 처럼 힘들었지만 견뎌냈고 이겨냈던 마음의 감기도 지나갔다. 지나가서 참으로 다행이다.


약을 먹고 나서 마루는 계속 잤다. 콧물도 멈추고 재채기도 안한다. 약 먹기 전 보다 훨씬 좋은 표정으로 깊이 자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내가 아플때 부모님 께서도

"아플때는 약 먹고 쉬는 게 최고야. 푹 쉬어라. 잘 자고."

하셨던 기억이 있다. 마루에게도 비슷한 이론이 적용되는 듯 하다. 약을 먹었으니 조금은 쉽게 회복되기를, 전처럼 생기 넘치는 녀석으로 변화해 주기를. 감기는 지나가는 거란다. 앓다가 어느새 나아버리는, 힘들게 스쳐가는 바이러스성 질환. 어찌 보면 감기는 사랑과 꼭 닮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