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과 이야기를 거의 마쳤을 무렵이었다. 우리가 바라보던 그림 족자가 바람에 흔들리듯 ‘휘릭’하고 움직였다. 바람 한점 없는 전시장 안에 걸린 족자가 흔들릴 일이 없다. 잘 못 본 것일까 싶어 눈을 크게 뜨고 다시 그곳을 살폈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것인지 앨런도 하던 말을 멈추고 그림을 응시했다.
“뭐지, 저게? 개구리야? 사람이야?”
앨런이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족자 뒤에서 검은 형체가 튀어나온 것이다.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영혼 열 댓 명이 그를 쫓기 시작했다. 적막하던 박물관안에서 난데없는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모두가 죽어라 달리고 있지만 발소리는 나지 않는 기이한 풍경이 이어진다. 쫓기는 것은 분명 사람꼴을 하고 있었지만 개구리처럼 바닥을 네 발로 기어간다. 불안한 얼굴로 주위를 살피며 다급히 벽과 바닥이 잇닿는 그늘 속만 골라 달린다. 그런 그를 쫓아가는 이들이 몇 갈래로 흩어졌다. 토끼 사냥 하 듯 몇 명은 그를 쫓아가고 다른 몇 명은 그의 진로를 미리 막아섰다. 결국 쫓기던 남자가 쫓던 사람들에게 잡히고 말았다. 쫓아가던 남자 영혼들은 모두 낡아빠진 작업복 차림이었다. 고무신을 신은 사람도 있고 낡은 운동화 차림도 있었다. 그들과 함께 있던 여자들도 허름한 옷에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반면에 바닥을 기어 다니던 남자는 고급 양복 차림이었다. 사람들은 망설이지 않고 남자에게 달려들어 마구 발길질을 해댔다. 개구리처럼 바닥을 기던 남자는 이번에는 고슴도치처럼 온 몸을 말고 바닥을 굴러 다녔다.
“아이고, 나 죽네. 살살 패십시오. 여러분, 제발 살살 패세요.”
맞는 남자가 가느다란 목소리로 애걸했지만 때리는 사람들은 신경쓰지 않았다. 다들 무척이나 화가 난 듯 보였다. 발길질에 주먹질, 이빨로 물어뜯기를 한참이나 하고 난 후에도 분이 사그라지지 않는 듯 씩씩거린다. 그 중 남자 한 명이 목청을 높였다.
“이번에는 저승사자가 올때꺼정 놓치면 안되여. 접때도 봐달라니까 맘 약해져서 망설이는 새 놓쳤잖어요. 오늘은 끝장을 봐야 쓰겄소.”
그 말에 남자는 다 죽어가는 소리를 냈다.
“아이고, 선생님들! 한 번만 봐주십쇼. 제가 잘못 했습니다. 속이 풀릴 때까지 두들겨 패든 물어뜯든 마음대로 하십시오. 제발 저승사자만은 부르지 말아요. 우리들 다 잘 해보려다가 이렇게 된 거 아닙니까?”
“뭐시여? 잘 해보려고? 주둥이로 떠든다고 다 말인줄 알어? 너 땜시 죽은 사람이 몇명인디 그 소리를 혀? 에라 이 상놈의 시키야.”
남자는 또 한차례 먼지나게 두들겨 맞는다. 비명소리와 욕지거리가 난무한다.
‘지지직’
종이가 찢어지듯 빛이 허공을 갈랐다.
한데 엉켜 몸싸움 중이던 사람들 한 가운데로 거대한 칼을 거머쥔 남자가 나타났다. 잘 닦여 반질거리는 은백색 투구에 등에는 땅에 끌릴 만큼 긴 망토를 둘렀다. 투구에 반쯤 가려진 반듯하게 잘 생긴 앳된 얼굴은 편안한 미소까지 머금고 있었다. 이마를 살짝 내려 덮은 앞머리도 그의 검고 깊은 눈을 가리지 못했다.
“이거, 기다리게 했군요.”
남자가 말했다. 그의 말이 신호라도 되는 듯 뭉쳐있던 사람들이 반으로 갈라져 흩어졌다. 눈 깜박할 새였다. 그리고 바닥에는 방금까지 두들겨 맞던 남자가 아직도 온 몸을 동그랗게 말고 옆으로 누워 있었다.
“1976년까지 서울에서 살던 김 동환을 잡으러 왔다.”
남자는 자신의 소속도 직업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도 그런 것을 묻지 않았다.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누구라도 그가 저승사자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그의 말에 바닥에 누워 있던 남자가 얼굴을 빼꼼 내민다. 눈 앞에 선 사람을 확인 한 순간 남자의 얼굴에는 포기와 절망이 스쳐갔다.
“결국 오셨군요.”
남자가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하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짙은 은회색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어 넘긴 그는 입고 있던 고급 바지에 양 손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었다. 니트 가디건에 동그란 뿔테 안경을 쓴 것만 보면 학자처럼 보였다. 그가 서 있는 모습을 보니 너무나도 멀쩡해 보여 놀랐다. 온화하게 생긴 나이든 남자가 무슨 이유로 그토록 두들겨 맞았을까? 나는 궁금해져서 그들의 대화에 귀를 쫑긋 세웠다.
“오래 도망다녔구나. 너에게 원한을 가진 수많은 영혼들을 피해 다니느라 고생좀 했겠어. 안그러냐, 사이비 교주, 김동환이.”
“사이비라니, 그런 말씀 마십시오. 저는 천국에 갈 길을 우리 신도들에게 알려준 것뿐입니다. 세상 사는 게 힘들어 지친 이들에게 죽어서 하늘로 올라갈거란 희망을 줬어요. 그리고 종교적으로 열심히 살도록 인도해서 수많은 신도들을 구원했단 말입니다. 살아있을 땐 저승에 천국과 지옥이 없다는 걸 몰랐으니까요. 모르는 건 죄가 아니지 말입니다.”
“신도들의 재산 착복, 인신 매매, 일 시키고 월급 갈취하고 말 안듣는 신도들에게 감금, 폭력, 마지막에는 집단 자살로 수 백명을 죽게 만든 죄가 가볍지 않다.”
“저는 아무것도 강요한 적 없어요. 모두가 신도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일입니다. 저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바득바득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던 남자가 결국 저승사자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제발 저를 소멸시키지만 말아주십시오. 시키는 대로 뭐든 하겠습니다. 사과하라면 하고 두들겨 맞으라면 맞겠습니다. 저승에 와서도 단 한순간 맘 편한 적이 없었습니다. 지은 죄가 많아서 취직도 안되었고 언제 어디서 피해자들이 나타나 저를 두들겨 팰까 괴로운 날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소멸될까 두려웠던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게 착하게 살지 그랬느냐? 살아있을때 죄를 짓지 않을 선택권은 너에게 있었다. 갈림길에서 나쁜 쪽으로 선택했던 것은 다름아닌 너 자신이었다. 이승에서나 저승에서나 쓸모없는 영혼, 다른 영혼을 해하고 괴로움을 준 영혼, 다른 영혼이 죄짓게 했던 영혼. 너는 이 세상에서 소멸될 것이다.”
저승사자가 들고 있던 칼을 뽑았다. 번쩍 하며 엄청난 에너지가 쏟아져 나왔다. 하늘 어딘가에서 시작된 에너지는 칼 중심을 향해 이어졌다. 그리고 그 칼이 눈 앞의 남자를 향했다. 남자는 죽어라 내빼기 시작했다. 개구리처럼 바닥을 기어 달리고 쥐처럼 구석을 향해 뛰었다. 그러나 저승사자가 한 발 빨랐다. 휙 허공으로 날아오른 그가 남자 앞을 막아섰다. 휘황한 그의 은백색 망토가 휘릭 허공을 갈랐다. 나비처럼 가볍게 하늘로 떠올랐다가 꽃잎처럼 바닥에 착지한다. 휘두르는 칼이 정확히 남자를 베었다.
“춤 추는 것 같아.”
넋을 놓고 있던 앨런이 탄식했다. 베어진 남자는 서서히 안개로 변했다. 할 일을 마친 저승사자는 자신의 키 만큼이나 거대한 칼을 가볍게 휘둘러 칼집에 넣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이 베어버린 남자가 수증기로 변해 소멸하는 모습을 차분히 바라본다. 우리는 그의 모습에 압도당한 나머지 구석에 숨어있던 것도 잊고 몇 걸음이나 앞으로 나온 것도 모르고 있었다. 저승사자는 넋이 빠진 우리를 발견하고 물었다.
“너희들은 박물관 귀신 부서원들이냐?”
“네, 그렇습니다.”
“박물관에는 오래된 물건이 많다. 오래된 물건에는 그 주인의 상념도 함께 하는 법. 죄 짓고 숨어드는 영혼이 많은 곳이다. 앞으로도 오늘 같은 일이 종종 있을 테니 너희들은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대답 하려니 목이 잠겨서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 감격에 겨운 것은 앨런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그도 대답대신 꺽꺽 소리만 낸다. 대답이 시원치 않자 저승사자는 고개를 돌려 우리를 쏘아보았다. 눈빛이 형형할 뿐, 투구에 가려진 얼굴은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저도 저승 사자가 되고 싶습니다.”
나도 모르게 대답해 버렸다.
“저도 그렇습니다. 저승사자, 꼭 되고 싶습니다.”
둘이 차려 자세로 대답하자 저승사자가 불쑥 그의 칼을 내밀었다.
“이 칼을 들고 걸어봐라. 키 작은 녀석, 너부터.”
부르는 대로 나서서 거대한 칼을 받아 들었다가 다리가 휘청한다. 무시무시한 무게다. 칼을 들고 걷기는 커녕 그대로 무릎을 꿇고 땅에 넘어지고 말았다. 다음 차례로 지명된 앨런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앨런은 나보다 체력이 좋은 모양으로 넘어지지 않고 잠시 버텨냈다.
“저승사자가 되려면 체력부터 길러야 겠구나.”
저승사자는 간단한 충고를 뒤로 한채 칼을 다시 받아들었다.
“체력을 어떻게 길러야 할지, 저희들에게 방법을 알려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앨런이 무릎을 털썩 꿇으며 애원했다. 멀뚱히 서있던 내 팔을 잡아당겨 내 무릎까지 꿇게 한다.
“방법은 없어. 걷기부터 다시 배우는 수 밖에는. 저승에서는 몸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생각으로 영혼을 움직이는 기술을 새로 배워야 해.”
저승사자는 우리가 딱해 보이는 듯 이마에 세로 주름을 잡았다.
“무엇이든 말씀만 해주시면 배우겠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저승사자가 될 수 있다면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우리가 한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저승사자는 망설이는 듯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가 물었다.
“그럭저럭 지내다 보면 승진도 하고, 영패 스물 다섯개를 모아 환생할 수 있어. 모두가 가는 쉽고 편한 길이 있는데 굳이 험난한 길을 가려는 이유가 무엇이냐?”
“환생 같은 건 관심 없습니다. 다시 태어나 만나고 싶은 사람도, 해보고 싶은 것도 없습니다. 저승사자가 되어 결계에서 길을 잃은 어머니를 저승으로 모셔오고 나쁜 놈들을 소멸시키는 것만이 제 꿈입니다. 도와주십시오.”
내가 대답하자 앨런도 양 손을 앞으로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저승사자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좋다. 매일 퇴근 후에 모여라. 너희들이 힘든 훈련을 견뎌 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저녁 우리는 총알같이 퇴근 도장을 찍고 다시 돌아왔다. 아무도 없는 박물관 마당에서 훈련을 위해 모였을 때는 둥실 보름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저승사자는 투구와 망토를 벗은 가벼운 차림으로 나타났다. 갓 스물을 넘겼을까? 얼굴만 봐서는 그의 신분을 상상하지 못할 만큼 앳된 청년이었다. 그가 주는 목검을 양 손으로 받아 든 앨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스승님! 혹시 존함이 어떻게 되 십니까? 어떤 분이신 지 궁금합니다.”
“1937년 함경남도 원산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재학시절 스물 셋이던 1960년 4월 19일에 대한 민국 서울 시청 앞에서 독재반대 시위 중 총상으로 저승으로 온 이 상훈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