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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Nov 14. 2020

문을 열다

14화

양 손을 모아 목검을 쥐고  눈 앞 가상의 적을 바라본다.   빠르게 몸을 움직인다.  달린다.  벤다, 그리고 날아오른다. 라고 생각했지만 몸이 맘 같지 않다.  연습용 목검도 무겁다.  양 손으로 들고는 똑바로 걷기도 힘이 들었다.  비틀거린다. 그리고 고꾸라졌다.  그럴때 마다 저승사자 스승은  짧게

“일어서라.”

한다.  영혼이라 좋은 점은 넘어져도 부상당하지 않는다는 것.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서 목검을 쥔다.  버퍼링 걸린 동영상처럼 같은 동작만 되풀이하다 보니 벌써 한 밤중이 되었다.  아직 걷는 법도 못 배웠는데 첫날이 지나버린 것이다.

“오늘은 이정도면 충분하다.  내일 저녁에 다시 모여라.  올 수 없는 놈은 일찌감치 포기하던가.”

스승은 기대할 것도 없다는 얼굴이었다.  나와 앨런은 바람 없는 허공에 걸린 깃발처럼 축 늘어져 기숙사로 돌아갔다.  샤워만 하고 침대에 누워 눈만 감은 것 같은데 눈을 떠 보니 출근시간이다.  어젯밤 수련하던 것 보다 더 빨리 출근 도장을 찍으러 달렸다.  겨우 시간에 맞춰 박물관으로 출근했다.  그렇게 또 다른 아침이 시작된 것이다.  작은 도시에 있는 향토 박물관은 놀라울 만큼 한산하다.  오전에도 네 살쯤 된 여자애를 데리고 온 젊은 엄마 한 명이 다녀간 것이 전부였다.   수묵화와 채색화만 있는 박물관이다.  요즘 애들은 도통 재밌을 리가 없다. 역시 지루했던지 그들은 한바퀴 쓱 둘러보고 돌아가 버렸다.  그나마 있던 두 사람이 떠나고 나니 박물관에는 다시 적막이 찾아온다.   박물관에는 나 말고도 정시에 출근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박물관 관리인인 그녀는 4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얌전한 여성으로 안내 데스크 앞에 앉아 하루 종일 뜨개질만 하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박물관 안에 자신 말고도 영혼인 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지금처럼 태평히 책을 읽고 있지는 못할 것이다.  그녀가 나를 못 본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가 신경 쓰여서 일부러 안내데스크에서 먼 곳을 골라 자리를 잡았다.  목검을 휘두르며 지난 밤 스승에게서 배운 것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목검이지만 무겁다.  쉽게 휘둘러지지 않는다.  휘둘러 칼이 내 몸에서 멀어지면 그 쪽으로 휘청거린다.  지쳐서 칼을 늘어뜨리면 무게로 내 몸조차 땅속으로 꺼져 든다.  비실 비실거리면서도 칼을 놓을 수 없다.  나는 무작정 칼을 내지른다.

분노를 벤다.

두려움을 찌른다.

중심을 잃은 내 몸이 비틀거리며 빙글 반 바퀴를 돌았다.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 한 번 더 휘두른다.

무엇이 나를 괴롭히고 있는지, 내 안에서 부글대는지 모르겠다.  알지 못하는 것들을 무턱대고 공격할 뿐.  매일이 그렇게 흘러갔다.  나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순간 칼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생각을 하나로 모아라.  너의 모든 것이 칼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스승은 말했다.  그러나 하나가 되기는 커녕 칼을 휘두를 때 마다 조각조각 나뉘는 생각들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마음 한조각이 비었다.  어디에 뒀느냐?”

스승은 나를 책망하듯 말했다.  내 마음도 답답했다.   칼을 들고 휘두르던 팔이 빠져나갈 듯 아파왔다.  

“스승님은 얼마나 수련하셨습니까?”

지친 얼굴로 앨런이 물었을 때 스승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증오가 나를 끌고 달리고 있는 동안은 수련을 멈출 수 없었지.  나를 끌고 가던, 고문하던, 죽이던 놈들, 선량한 시민들을 함부로 짓밟던 놈들,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독재자 놈들을 모두 벨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길 때까지.”

그놈의 자신감은 아직 싹도 나지 않았지만 시간은 훌쩍 지났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난 후에는 드디어 목검을 들고 달릴 수 있었다.




월하향이 가향 박물관에  들른 것은 내가 목검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되고 나서였다.  처음에는 칼 쓰는 연습만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칼에 익숙해지면서 몸 전체가 가벼워지는 느낌이 든다.  걸음걸이와 자세도 점점 변하고 있었다.

“박물관에 얼씬대는 죄인들을 여럿 혼내 주었다고?”

칭찬인지 월하향은 인사 대신 물었다.

“혼내주었다기 보다는, 요즘 연습하는 걸 보더니  지레 겁 먹고 도망쳤어.  칼에서 바람 소리가 휙휙 나는걸 보면 간 작은 놈들은 벌벌 떨게 되어 있으니까.”

월하향이  내 손에 들린 목검에 눈길을 주자 나는 보란듯  목검을 휘둘렀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남자란  고로 자기 자신은 지킬 줄 알아야 해.  보기에는 하찮은 목검이지만  무척 무거워.  너는 제대로 들지도 못할거야. ”

말하느라 정신이 팔려 나는 목검을 하마터면 손에서 놓칠 뻔했다.  다행히 월하향은 내가 휘두르는 칼솜씨에 감탄하는 것 같다.  빙긋 하고 웃었기 때문이다.

“네가 나쁜 놈들을 쫓아주고  박물관을 잘 지킨 덕분에 곧 승진하게 될 것 같아.  좋은 소식이라 전해주러 왔다.”

“승진을?  벌써? 내가 뭘 한게 있다고.”

별로 신경쓰지 않는 척 무심하게 말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기분이 좋다.  나는 어깨에 힘이 들어가 쓸데 없는 소리까지 지껄였다.

“아참, 월하향!  이 박물관에 네 그림이 있다는 건 알고 있어?”

“내 그림이라.  네가 보기에도 그림 속 여인이 나였더냐?”

“응.  전모 사이로 보이는 얼굴이 너와 아주 닮았어.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이  상선 임수인.  조선 중기 유명한 화가였다고 들었어.”

나는 목에 걸린 가시같던 이름을 입밖에 내고 월하향의 안색을 살폈다.  ‘임수인’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과연 그녀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임수인.  그것이 화공의 이름이라고 하더냐?”

“임수인이 이곳 가향에서 유명한 기생을 만나서 좋아 지냈다는 말도 들었어.  그래서 그림 이름이 ‘어느 기생’이라는 것도.”

“그래?  허튼 소리를 하는구나.”

월하향은 고개를 약간 돌려버린다.  덕분에 그녀의 표정을 볼 수 없다.

“뭐,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해. 네가 상선인지 생선인지 하는 위인을 만났던 것도 500년이나 전 일이고  나를 만나기 전 일이니까  나는 신경 안 써.”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 모든 신경은 월하향의 다음 말을 향해 곤두섰다.

“순수한 진실 보다 진실이 반쯤 섞인 거짓말이 더 진실 같다는 말을 아느냐?  사람들은 듣고 싶은 것들만 듣고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한다.  덕분에 남겨진 것들은 죄다 각색된 것들뿐.”

월하향은 말을 마치고 소매에서 새하얀 손수건을 꺼내더니 자신의 귀를 씻어냈다.

“그건 뭐하는 거냐?”

의아해 져서 내가 묻자 그녀는 씁쓸한 목소리로

“재수 없는 이름을 들어서.”

라고 대답했다.  이상하게도 그녀의 말에 기분이 정말 좋아졌다. 헤벌쭉 벌어지려 했던 입이 그녀의 한 마디에 다시 닫혔다.

“네 신부 영지씨도 잘 지내고 있단다.  안부 전해달라고 하더구나.”

한동안  잊었던 그녀의 이름에  결혼식날 기억이 소환된다.  

“영지씨를 알아?”

“잊었느냐?  나는 저승에 온지 500년이나 되었어.  내가 모르는 영혼이 있을까?”

앨런이 등장한 것은 그때였다.  언제나 그렇듯 퇴근 도장을 찍고  무술 연습을 하러 온 모양이었다.  그는 이야기 중인 나와 월하향을 번갈아 보았다.

“선임님!  안녕하십니까?”

“앨런이구나. 너에게도 승진 소식을 전할 생각이었는데 마침 잘 왔다.”

월하향은 의례적인 인사를 남기고 총총 사라졌다.




“오늘은 평소와 좀 다르구나.  네 몸이 훨씬 가벼워 졌다.”

그날 밤 스승이 나에게 말했다.  연습이 한참 무르익고 있을 때 였다.

“마음도 가벼워 졌습니다.”

내 대답에 스승은 모든 것을 다 알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이  달빛에 휘황했다.  수 없이 많은 영혼을 베어낸 그다. 살아있는 사람이었다면  얼굴 뿐 아니라 온 몸 이곳저곳에  흉터가 남아있어야 한다.  영혼이라는 이유로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운 탓에 세월의 흔적이 없을 뿐이다.  

“마음이 점점 강해지는 모양이다.  잘 했다.”

말 수 적은 스승이 모처럼 칭찬을 해주었다.  

“너희가 쫓을 놈들은 평범한 영혼이 아니다.  살아있을때  사람을 죽였거나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은 놈들.  무거운 죄를 끌고 다니지만 참회는 커녕 살아있을때 버릇 개 못주고  저승에 와서까지도  약한 영혼을 괴롭히는 것에 익숙한 놈들이지.  그런 놈들이 순순히 너에게 잡힐 리 없다.  타고난 성품이 잔인한 데다가 소멸되지 않기 위해 무슨짓을 할지 모르는 놈들을 상대해야 한다. 그러니 무리해서 저승사자가 될 필요는 없어.  한 번 영혼을 베어버리면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계속 훈련할 겁니다. 강해질 때까지.  어떤 나쁜 놈도 벨 수 있을 때까지 말입니다.”

“목검 조금 쥐었다고 입으로는 저승사자가 다 되었구나.  애송이 녀석.”

“죄송합니다!”

내가 대답하자 스승은 기분 좋은 듯 웃었다.   

“역시 월하향의 눈이 정확했어.  너희들은  조금 다를 거라고 하더니.”

“선임 월하향님이요?  스승님,  월하향님을 아십니까?”

듣고만 있던 앨런도 놀라 되물었다.

“너희들이  진정으로 좋은 저승사자가 되고 나면 궁금한 것들을 알려주마.  특히 앨런!  너는 검 쓰는데 익숙하지 않으니  총과 석궁을 써보는 게 어떠냐?”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스승님.  총과 석궁은 칼보다 훨씬 잘 씁니다.”

앨런은 힘차게 경례했다.


월하향의 말대로  우리는 이틀 후 승진을 했다.   내가 일할 곳은 ‘녹음실 귀신 부서’였다.  반면   앨런은 ‘도서관 귀신’ 부서로 이동했다.  승진의 대가로  우리는 영패와  기숙사,  새로 입을 옷도 한 벌씩 받았다.  

“출근 하면 식당 있으니 먹을 걱정 없고,  깨끗한 기숙사가 있으니  집 걱정도 없고  승진 할 때 마다  선물을 한가지씩 준다고 하니 점점 저승 생활이 편해지는구나.  다시 태어나지 않고 저승에 눌러 있겠다는 영혼들이 많아지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야.”

“오랜만에  승진 기념으로 같이 한잔 어때?”

앨런의 말에  나도 따라 나섰다. 그 즈음 우리는  구내 식당에서 식혜를 마시는 대신  살아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술집에 종종 놀러갔다.  물론 술은 마시지 못한다.  단지 살아있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술집의 소음을 듣는 일을 즐길 뿐이지만 그곳에서는 우리도 살아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오늘도  우리는 파전에 동동주를 파는 근처 술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진한,  파전 냄새 정말 군침 돌지 않아?  나는 저승사자가 꼭 될 것이지만 만약 환생한다면  꼭 파전에 동동주를 배가 터지도록 먹으면서 친한 사람들과  마구 떠들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있어. 여기 앉은 사람들 처럼 말이야.”  

술집의 소음과  웅성거림,  앨런의 목소리에 섞여  내 귀를 툭 건드리는 소리가 있었다.


‘나는 지난날의 추억을 후회해

후회해도 속죄는 죽은 후에 해

하늘에서의 속죄도 그녀는 들어줄까

이제와서 후회한들 그녀는 돌아올까


그녀를 만나려 오늘도 그 장소에 갔지

그녀의 모습은 내 눈안에 선명히 보였지

내 모습은 그녀의 기억속에 선명히 남았지

하지만 내 영혼은 저멀리 하늘로 갔지


그녀도 내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제 그만 그녀를 잊기로 해’


어디서 이 노래를 들었더라?  귀에 익은 랩 가사다.  나는 두 눈을 지긋이 감고 기억을 더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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