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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Nov 14. 2020

녹음실 귀신 1

15화

“지금 티브이에서 나오는 곡  들어봤엉?  가사  정말 좋지 않아?”

우리 맞은 편 테이블에 앉아 동동주를 마시던 커플 중 여자 쪽이 말했다.  목소리에서 애교가 뚝뚝 떨어진다.

반면 남자는 말 그대로 무뚝뚝한 무심함으로 무장한 쪽이었다.  그는 젓가락으로  파전을 집어 들면서  되물었다.

 “무슨 노래?”

 여자는 가사를 음미하듯 천천히 읊어준다.

“’나는 지난날의 추억을 후회해

후회해도 속죄는 죽은 후에 해

하늘에서의 속죄도 그녀는 들어줄까

이제와서 후회한들 그녀는 돌아올까’ ( 이부분은 읊조리듯. 음미하듯 읽어주시면 됩니다.)


이 가사 말이야. 이 곡 작가가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쓴 거래.”

“에이, 설마……. 인기 끌려고 지어낸 이야기 아닐까?”  <- 남자임

“이번에 슈퍼스타에서 8위로 뽑힌 제이피가 만든 곡이잖아.  얼마 전에 인터뷰하는 거 봤는데  데뷔를 늦게 하는 바람에 그동안 별의별 고생을 다 했대.  노래 내용도 정말 슬퍼.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애인을 그리워하는 것 같아.”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앨런도 맞장구를 쳤다.

“저 노래 요즘 인기 많던데.  어딜 가든 들리더라구.”

“정말이냐?”

“응.  나처럼 음악을 모르는 사람이 기억할 정도라면 꽤 유명한 곡일거야.”

“앨런, 노래 지은 사람이 누군 줄 알아?”

혹시나 해서 물었지만 앨런은 그걸 어떻게 알겠냐는 듯 고개를 저었다.

“요즘 한국 작가들은 내가 잘 모르잖아. 왜?  아는 사람이야?”

“동생이 지은 것 같아서.  저번에 흥얼거리는 걸 본 적이 있어.”

“그래?  동생이 지은 거라면  축하할 일인데?”

덕분에 내 어깨도 으쓱 거렸다.

“글쎄,  그 녀석이 곡을 쓰고 있는 줄은 몰랐어.  정한이 녀석, 학비도 없어서 고민하던 것 같은데 이 곡 덕분에 돈이나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바쁘시고 집에는 나하고 동생 뿐 이었는데……. ”

동생 이야기를 꺼내니 새삼 뭉클한 감정이 솟아나온다.  나는 기분에 취해 동생과 있었던 일들을 앨런에게 떠들어댔다.  일부는 과장되었고 주인공이 동생에서 나로 바뀌기도 했지만 앨런은 군말 없이 내 이야기를 다 들어주었다.




즐거운 기분은 다음날 아침까지도 계속 되었다.   새로 이동한 녹음실 부서에 출근하는 동안에도  내내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박진한.  기분 좋은 일 있나?   표정이 밝구나.”

출근 도장 찍는 곳에서 덩치가 말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덩치는 녹음실 귀신 부서에서 내 직속 상관이 되었는데 나와의 친분을 생각해서  좋은 곳에 배정해 줬다고 큰소리를 쳤다.

“세상에 녹음실이 몇 개나 되는 지 알고 있나?”

“수백개요?  아님 수천개?”

“글쎄, 정확한 개수까지는 모르겠지만 귀신이 출몰하는 녹음실은 많지 않지.  자네도 알겠지만 녹음실에서 귀신을 보면 녹음한 곡이 대박 친다는 말이 있다네.  심지어 어떤 가수는 귀신 있는 녹음실을 찾아다닌다는 말도 있을 정도야. 자네가 출근할  제이 에이치 엔터테인먼트 녹음실도  귀신 나온다고 유명한 곳이지.”

덩치는 내가 환호성이라도 지를 것을 예상한 듯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 해놓고  막상 내가 시큰둥한 표정을 짓자  적지않게 실망한 얼굴이었다.

“제이 에이치 엔터테인먼트는  요즘 케이팝 선두주자로  아이돌 보다는 색깔있는 뮤지션을 키운다고 유명한 곳 아니냐?  자네는 나보다 훨씬 젊은 사람이 유행을 그렇게 모르나?”

“아,  그렇습니까?”

“거기 출신 유명한 가수들 많지.  아이돌 그룹도 여럿이고.  요즘은 힙합 래퍼들도 많이 키운다고 들었네.”

덩치가 의외로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고 있을때  대화를 듣고 있던 앨런까지 끼어들었다.

“진한, 어젯밤에 우리가 들었던 그 노래를 부른 가수도  제이 에이치 엔터테인먼트 소속이야.  그런데 선임님은 그 회사에 대해서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십니까?”

앨런이 감탄하듯 묻자 덩치는

“그거야 …… 나도 영패 스물 네 개를 모았으니  곧 환생하게 될 거라  이것 저것 준비하는 차원에서 관심을 가진 것이지.  별 일은 아니네.”

말 해놓고 그만 얼굴이 뻘개진다.  속마음을 들킨 것이 무척 쑥스러운 모양이었다.   덩치는 조선시대에 살았는데 지리산에 숨어살던 화적떼 중 한 명이었다.  전란으로 부모를 잃고  떠돌아 다니며 안해본 고생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환생을 기다리며 들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뭘 그런 눈으로 보고 있는 건지 모르겠군.  사람이 고생만 하다 죽으라는 법 있나?  다시 태어나면 나도 남들 살 듯 행복하게 살아보고 싶은것이 이상한가?”

덩치는 머쓱한지  화제를 돌렸다.

“그리고 박진한, 녹음실 귀신의 목표는 ‘한 곡을 골라 세상에 알리는’ 거라네.  어떤 곡이든 자네의 마음에 와 닿는 곡이 있으면 따라 불러도 좋고, 기계를 만져도 되네.  귀신의 노래가 함께 녹음된 곡은 사람들을 매료시키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이 되고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이번에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자네는 승진도 못 할 뿐 아니라 소멸될 수도 있으니 주의하도록 하게.”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노래 한 곡을 고른다면 당연히 정한의 곡을 고를 생각이었다.  정한이 쓴 곡이 나 덕분에 유명해지고 나는 그 덕분에 승진하게 된다면 말 그대로 일석이조다.  모처럼 출근 길이 즐겁다.  기대에 찬 발걸음으로 회사로 향했다.  회사는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커다란 건물에 직원도 많다.  그런 곳에서 내 동생이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뿌듯해졌다.   출근하자 마자  녹음실을 구경했다.  수 십군데 녹음실을  순찰하듯 돌아다니며  혹시라도  동생의 곡을 녹음하는 것인지  귀를 기울였다.   사람들이  밀물처럼 들어와  노래와 연주를 하고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러나 지루한 줄도 모르고  그 곳을 지켰다.  




그 곡은 이렇게 시작된다.



나는 지난날의 추억을 후회해

후회해도 속죄는 죽은 후에 해

하늘에서의 속죄도 그녀는 들어줄까

이제와서 후회한들 그녀는 돌아올까’


내 영혼 결혼식날 느티나무 아래 앉아 있던 동생이 흥얼대던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지만 혹시라도 잊어버릴까 봐서 가사를 외우고 또 외웠다.  실수로 다른 사람의 곡을 불러 주기라도 한다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퇴근 후 무술 수련을 하는 도중에도 그 노래를 흥얼대는 바람에 스승에게 야단을 맞았다.  


그렇게 몇 주가 흐른 뒤였다.  목검을 졸업하고 가벼운 장검으로 연습 하던 즈음, 결국 그 날이 왔다.  마음의 준비를 해 두고 그토록 고대하던 시간이 마침내 온 것이다.

“가사는 좋은데 멜로디가 어딘지 아쉬워서 이번에 편곡을 제대로 하고 손 좀 봐서 제대로 내놓으려고.”

아침에 나타난 금발 염색머리 남자가 컴퓨터 스크린에 가사를 띄운다.  컴퓨터 앞으로 모여든 사람들 틈에 섞여 그 가사를 확인했다.



‘나는 지난날의 추억을 후회해

후회해도 속죄는 죽은 후에 해

하늘에서의 속죄도 그녀는 들어줄까

이제와서 후회한들 그녀는 돌아올까


 그녀를 만나려 오늘도 그 장소에 갔지

그녀의 모습은 내 눈안에 선명히 보였지

내 모습은 그녀의 기억속에 선명히 남았지

하지만 내 영혼은 저멀리 하늘로 갔지


그녀도 내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제 그만 그녀를 잊기로 해’

눈을 비비고 다시 읽었다.  정한의 곡이 확실하다.  녹음하러 들어온 가수는 나도 알 만큼 유명한 얼굴이다.  고음처리를 잘 하는 걸로 유명한 실력파 보컬이었다.  소문 답게 가수는 매끄럽게 녹음을 마쳤다.  물론 나도 녹음에 합류했다.  가수에게는 들리지 않았겠지만 그의 뒤에 서서 코러스를 넣고 박자에 맞춰  춤도 추었다. 내 목소리가 함께 녹음되었을 테니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 곡을 좋아하기를 바랐다.   녹음을 마치고 나오자 녹음실 밖에 있던 금발 머리도 만족한 얼굴로 말했다.

“좋은데. 느낌 있고.   이렇게 좋은 날 작사가 형님은 안 오셨나?”

“그 형님이 수퍼스타 8에서 뽑힌 이후로 계약이 밀려들어서 엄청 바쁘대요. 며칠 전에 프랑스에 가셨다고 들었는데 그 이후로는 연락이 안 돼요.”

“하긴 워낙 까다로운 성격이라.”

금발 머리에게 옆에 앉았던 레게머리가 대답하자 나도 덩달아 가슴이 벅차 올랐다.  정한이 하는 일이 무척 잘 되는 모양이다 싶으니 뿌듯하다. 그 녀석 소원이 해외여행 한 번이라도 가보는 거였는데, 지금 프랑스에 있다니 얼마나 좋아할까? 아버지도 얼마나 기뻐하실까?  이럴때가 아니다. 동생을 찾으러 가 봐야 겠다.  먼발치서라도 그녀석의 행복한 모습을 보고 싶다.  나는 두 눈을 감고 마음을 모았다.  이런 순간에는 나 자신이 영혼이라는 것에 감사한다.  눈을 감고 가고 싶은 곳을 떠올리기만 하면 언제든, 어디든 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에.




눈을 뜬 곳은 작은 카페 안이었다.  가득한 커피향이  내 코를 자극한다.  벽에는 흑백 사진과  마른 꽃다발이 걸려있다.  어쩐지 프랑스 풍인 것 같기도 하다.  흐음.  이곳이 프랑스에 있는 카페인 것인가?  출세한 정한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문 하시겠어요?”

고운 목소리의 여성이 손님에게 묻는다.  그런데 그녀도, 손님도, 심지어 벽에 적힌 글씨도 한글이다.  의아한 생각에 얼떨떨 하다.  영혼에게는 프랑스어도 한국말로 들리는 것이었던가?  

“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 부탁드립니다.”

“벨 울리면  가져다 드릴게요.”

낯익은 목소리에 곧 정한을 찾아냈다.  낡은 백팩을 짊어진 정한은  전에 봤을 때 보다 더 야윈 것 같다. 목소리에도 기운이 하나도 없다.  주문 벨을 받아든 정한이 터덜터덜 구석 테이블자리에 앉자   나는 비어있는 그의 앞자리에 앉았다.   

“정한아, 너 일이 잘 되었다며?  유명해졌다면서?  프랑스에도 왔다면서?  어떻게 된 거야?  얘기를 좀 해봐.  나는 오늘 네가 지은 곡 녹음을 도와줬어.  귀신이 녹음 도와주면 대박친다는 소문 들어봤지?  그게 헛소리가 아니래.  내가 도와줬으니 너도 대박칠거야.  그게 내가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라는 게 마음 아프지만   조금이라도 너를 도울 수 있어서 다행이야.”

나는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쏟아냈다.  그러나 정한의 어두운 얼굴이 마음에 걸려 말을 멈추었다.

“저기, 손님!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예쁜 카페 직원이 커피를 가져다줄 때야 알아차렸다.  이곳은 프랑스가 아니다.  한국이었다.  카페 창 밖에 제이 에이치 엔터테인먼트 건물이 보였다.  그리고  정한은 거지꼴을 하고 있었다. 쭈뼛 쭈뼛 자라난 머리에 덥수룩한 수염.  입술도 부르텄다.  한동안 창밖을 바라보던 정한이 무너지듯 중얼거렸다.

“죽고 싶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나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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