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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Feb 04. 2018

내 소원은....

편린 11

틀림없이 실현된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을 만큼 바랄 수 있다면 그 바람은 반드시 이루어져요.

-데미안, 헤르만 헤세

****


얼마 전에  재미있는 경험을  한 가지 했다.   지인 한 분께서 '9일 기도'를 해주신다며   소원 한 가지 알려달라는  말씀을  하신거다.   소원을  정해 딱 9일만 하면  다 이루어진다는  말씀에는  신념 같은 것까지 느껴졌다.
"이 기도는 보통 기도가 아니에요."
그분은 큰소리를 치셨다.   
"꼭 이루어지는 기도랍니다.   정말 원하는  소원을 9일 동안만 빌면 되는 거예요.  얼마나 쉽고  아름다운 기도인가요?"
요즘  소설 쓰는 일이  점점  버거워지고 있었던  나에게는  귀가 솔깃해지는  제안이었다.   그날 밤이  지나기 전에  얼른  카톡으로  내 소원을  적어 보내 드렸다.



다음날 아침에  깨어서  문득  욕심이 생겼다.   9일 기도를  다른 사람이 해줘도  좋겠지만  내가 직접 해보면 더 잘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지인께  9일 기도에 필요한 책을 여쭤보고  성당에 가서  책을 사 왔다.  당장  9일 기도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9일 정도야  싶었다.  단 9일뿐인데  기도 조금 한다고  그 소원이  이루어 질까?  의심도  생겼다.   그렇지만  기도를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에는  기도 말고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없지 않은가  싶었다.   혹시 잊어버릴까 봐서  일기에  9일 기도 시작이라고 썼다.  날짜에  1일, 2일, 3일... 9일까지  적어 넣었다.   1일에  해당하는 기도를  해냈다.

기도는  한 번 할 때마다  약 30분 정도 걸렸다.    여러 가지 기도문을 읽고  내 소원을  빌었다.   이틀째,  삼일째도  쉽게 지나갔다.   9일 정도야 별거 아니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이렇게  쉬운 기도가 다 있었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5일째  되는 날에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그다음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생각하게 된 것이다.    소원이  이루어진 후  꼭 좋은 결과만  생길까?   그렇지 않으면 어쩐다?   만약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  불행의 시작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6일째  되는  날에도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징후는 전혀 없었다.    이렇게  기도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어 진다.   그렇지만  6일이나 했으니  더 해보자 했다.   7일째는  더  힘들었다.   소원은  이루어질  기미도 없었고   처음 빌었던 소원이  과연 내 소원이 맞는지,  소원을 바꿔야 하는 게 아닌지  갈등이  시작되었다.     그러다  일기장을  다시 보고 생각했다.   기도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는걸.   일단  이 소원이라도  빌어보자.   다른 방법이 없잖아.

8일째와  9일째  기도를  하는 동안엔  될 대로 되라는  기분이었다.   처음부터  소원이 이루어질 거라는 생각은 안 했어,  그냥 기도해 보는 거야.   그래도  기도하면 되지 않을까?   소원이라는 걸  들어달라고  빌 수 있다는 게 어디야.. 갈등이 갈등을  낳던  9일 기도를  결국에는  끝냈다.  단  9일만  하면 되는 기도라  쉬울 거라는  생각은 매우  틀린 것이었다.   그 9일 동안에도  수 없이 많은 흔들림을  경험했다.   중간에는 몇 번이나  9일 기도 자체를  포기할까 싶기도 했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래 봐야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그래도  9일 기도를 끝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좋은 소식을  들었다.  기적적으로  내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던져 버리듯,  어떤  희망도 없이  9일을 채웠던  기도였는데   소원이 이루어졌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갈등했던 것만큼  행복이  나를 채웠다.   기쁨의  눈물이  흘러나왔다.

9일 동안  기도 하는 과정에서  내가 얻은 것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소원을  원하기 전에는  내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자주  작은 것들을  원했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대부분  얻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원했던 것들을  얻지 못해도  그만이었고  얻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9일 동안'  한 가지 소원을  빈다는 행위는  '내 안에 숨겨져 있던'  진정한 욕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처음엔  그 소원만 이루어지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   내가 소원을 이루고 나서  감당해야 할 결과물에 대한 고려도  하도록 만들었다.  내 욕망을  이루기 위해  혹시  희생당하는 이들이 있는지도  돌아보게 했다.    그 결과물을  감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야  9일을 채울 수 있었다.

또 한가지는 단 9일 동안에도 유지하지 못하는 소원을 내가 얼마나 많이 갖고 있었던가 하는 점이었다. 이루어져도 그만  이루어지지 않아도 그만인 바람들이 욕망이라는 이름으로 내 삶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들고 있었는지..

한 가지 소원이 이루어지고 나자  다음에는 다른 소원이 떠올랐다.   일기장에  그  소원을 적어 넣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깨닫게  되면서   삶에  방향이 잡혀가는 기분이 든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뭔지 몰라  이것저것 찾아 헤매는  낭비가  줄어든 기분이라고 할까.

지인께 부탁드린  9일 기도도  끝이 났다.   그 소원도  꼭 이루어질 거라고,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걸어가 볼 거라고  믿어본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향해  걷는 삶이란  꽤  괜찮은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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