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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Mar 04. 2018

용은 무엇으로 날아오를까

편린  13

"20초만 미쳤다고 생각하고 용기를 내봐. 상상도 못 할 일이 펼쳐질 거야"


- 영화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 中


어떤  꿈은  잠을  깨우기도 한다.    새벽에  더  잠들지 못하게 된 것도  그 꿈 때문이었다.

어둠 속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  빛 한 줄기도  스며있지 않은  어둠이   세상을  감싸고 있는 곳,    넘어지지 않고  어떻게 그곳까지 갔을까  대견할 만큼  바닥에는 돌과  자갈 투성이었다.    

'여기가  어디지?'

주위를  둘러보려 해도  어딘지 가늠하기 어렵다.   눈을 아무리 깜박여도  어둠이  검은색인 것은  변하지 않았다.    발에 걸리는 돌을 피해  겨우 한 발자국을 옮기고   다른 발을 옮기는  동안   빛을 발견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러다  발이  무엇에  닿았다.   숨결이  느껴지는 걸 보니  살아있는 생명체였다.   발을 멈추고  손으로  더듬어 본다.  북실북실  털이 잔뜩 난  등과   거친  비늘이   익숙하게  손에 닿았다.

"너,  여기 있었구나!"

내  꿈에  자주 찾아왔던 그 아이였다.    '영화  끝없는 이야기에  나오는  용'과  매우 닮은 녀석.   

그동안  내내 꿈에 보이지 않아  궁금했었는지   반가움이  먼저 밀려왔다.    어디가  아픈 것일까?  코 끝을  만져본다.  축축하고  부드러운 코끝을  만져보니  아픈 것 같지는 않아  일단 안심했다.

"여기서  뭐 하고 있니?"

인사 대신  물었다.   용은  그제야  눈을  조금 뜨고  나를 바라보는 것 같더니  이내 눈을 또 감는다.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방이  막혀 있는 곳이었다.   그곳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린 왕자가  말했던  '사막에 있는 우물'쯤  되는 곳이라고나 할까?     말 그대로  물 없는  우물같이  깊고 깊은  어떤 곳이다.


"너  여기서  오래  있었던 거야?"

어쩌다  이곳에서  엎드려 있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어둠 속에  잠겨 있었던 것일까?   길을  잃고  헤매다  이렇게 된 것일까?   수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용은  내 말에  귀를 쫑긋 세우고   고개를  들었다.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아,  이 녀석.... 이곳에서 오래 있었다는 말인 모양이다.     이 어둠 속에서  무섭지는 않았을까?  문득 가슴이 아파왔다.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내  질문에  용이  작게 대답했다.

"나는  나를 의심하고 있는 중이었어."

그  순간   내 손에  흐른 것은  그의  눈물이었다.   뚝뚝  떨어져 흐르는  뜨거운 눈물이  내 손등에  맞아  흘러내렸다.   순간  많은 것을  알 것 같았다.    뭐라  위로하고 싶었지만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도  알 수 있었다.   '자신을  의심한다'는  고통이  뭔지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테니까  말이다.
나는  위로의  말 대신  그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등도  토닥거려 주었다.   

"우리는  위로 올라가야 해."
내가  제안했다.   깊고 깊은 우물 속에서,   이 끝없는 어둠 속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였다.
용이  위로   올라가는 것.    날아오르는 것.   용이  용 다워지는 것.
"난  잘 모르겠어."
용은  힘없이  대답했다.   어깨에  달린  작은  날개가  조금 퍼덕거려 봤지만   큰 덩치를  끌어올리기엔  역부족이다.  
"난  날 줄을 몰라."
용은  또 말했다.   지쳐 버린 것처럼 보였다.   나는 내내 생각했다.   해답을  제시해 주어야 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너는 용이잖아.  맞지?"
"그걸  의심하고는 있지만.... 그래  내가 용이라고 치고..  만약 내가 용이라면...  그다음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용은  처음으로  길게  물어왔다.    목소리에  힘도 조금 들어갔다.
"용은  날개로  날지 않아.  네 날개는  장식용이야.   날개를 퍼덕여서  나는 것 같지는 않았어."
"그렇다면?"
용은  눈을 뜨고  물었다.    그의  눈은 깊고  슬펐다.
"음... 나도 잘 모르지만   날개로  날지는 않아.   용은 보통  그냥  위로  휙 솟구치던데.   전신을 사용해서  난다고 해야 할까?"

용이 날아다니는 것을 본 적도 없는 주제에  나는 아는척을 했다.   그렇게라도 해야 그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전신을 사용해서?"
용은  되물었다.   그러고는 한참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이었다.  


날아오르기  위해  날개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는 것인데 말이다.   이 녀석,  날개로  날아보려다  안되니까  속상했던 모양이구나.   그렇지만  과연  용은   무엇으로  날아오르는 걸까?   깊고  깊은 우물 속에서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수는 있을까?  끝없는  의심과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용은  무엇으로  날아오르는 걸까?"
내가  그에게 묻자  그는  눈을 크게 떴다.
"용이  무엇으로  날아오르는 것인지  알 수 있는 것은  용뿐이니까...   그 대답은  네가  해주어야 할 것 같아서."
내  말에  용도  동의하는 표정이다.   그건 그렇다.   용이 무엇으로  날아오르는 것인지  인간인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건 용 만이 대답할 수 있는 문제다.
"생각해 봐.  네  유전자  깊은 곳에서   그 기억을  끄집어낼 수 있을 거야."
나름대로   용을  격려하려던  것이   내 머리도  함께  복잡해져 버리고 말았다.     
'용이  어떻게  날아다니지?'
생각하다  잠에서  깨어버린 것이다.   

용이  무엇으로  날아오르는 걸까?  하는 문제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용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결국은 날아오를 테고   깊은 우물을  탈출할 수 있을 테니까.    그 시간이 언제든,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다는 것을  믿는다.    문제는   날아오를 때까지의  과정을   견디는  힘이다.   언젠가는  날아오를 거라는  희망과  신념을   버리지 않도록,   절망과 우울에  지지 않도록,    본능 속  나는 방법을   저절로 터득하게 될 때까지   참아낼 수 있도록..     그  인내가  결과물을  볼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용기와  행운이  함께 하기를.

어둠 속에서  눈을 크게 뜨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 용에게  이런 말들을  전해 주고 싶다. 
"너는  너라는  희망과 신념을  잃지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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