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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Mar 13. 2018

좋은 친구를 찾아서

편린 14

노인의 모든 것이 늙거나 낡아 있었다. 하지만 두 눈만은 그렇지 않았다.
바다와 똑같은 빛깔의 파란 두 눈은 여전히 생기와 불굴의 의지로 빛나고 있었다.
『노인과 바다』어니스트 헤밍웨이


소설  초고가  끝이 났다.   다시 읽어보기 두려울 만큼  한심한  수준이지만    나름  대견한 일이다.  작년 9월,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기  직전부터  쓰기 시작해서   오늘까지  지난 6개월 동안   나에겐  많은 일들이  있었다.   힘들고  외로운 겨울도  지냈고   중심을  잃을 것만  같던  2월도  잘 보냈다.   그런  시간 동안  나를 버티게 해 준 것은  이 '소설 쓰기' 였다.    주인공에게  몰입하고  줄거리를  생각하면  시간이 참 빨리 간다.   외로웠지만   그 감정에  빠지지 않았다.   아니,  빠져서  슬퍼할  시간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소설을  다 쓰고  쉬는 기간이 되면   나는 항상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이번 쉬는 기간의 계획은

'좋은 친구 만들기'로  정했다.   소설 쓰는 데 도움이 되는,   내 인생 전반에  힘이 되어줄  친구를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집 안에서   글만 쓰느라  친구 만들  기회가 없었으니  이제부터는  자주 외출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글 쓰는 일이란 원래가  외롭고  힘든 일이겠지만   요즘 나는 외로움을 더 많이 느꼈다.   가족들은  미국에  계시고   나 혼자  떨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돌아온  한국에  아직은  적응 중이라  그럴 것이다.    소설 쓰는 이야기,  사는 이야기를  나눌 만한,  믿음직한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요즘 더  깊어졌다.    


어제  우연히  어떤  여성분을  알게 되었다.   내 나이 또래라서  더 마음이 통했는지 모르겠다.  처음  만났는데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집으로  돌아와   전화를 한 시간도 넘게 했다.   인스타 하신다는 말에  인친 도 되었다.     나는  그녀에게  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좋은 친구를  만나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  미래는  내가 만들어 가는 거잖아요.   정해져 있는 미래가 어딨어요?   수많은 미래 중  하나를  엿보는 것뿐이에요.   중요한 건  새로운  친구를 만날 수 있도록  내가 바뀌어야 한다는 거지요."

그녀는 조심스럽게  대답해 주었다.

"그럴까요?"

"내가  준비되면  우주는  주지만  내가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주지 않아요."


그녀의  말이  기억에  남았다.    특히  '내가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우주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는 말에   조금 걱정스러워졌다.    거울 앞에 앉아서  나 자신의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좋은 친구가  있었으면 싶었지만   내가   그 사람에게  어떤  종류의  친구가  될 것인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너는 감성적이지만  이성적이야.  이성이  감성을 넘어가.'

대체로  나는 그런 평을  듣는 사람이다.   거울 속의  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너는  새로운 친구에게  어떤 친구가  되어줄 생각이니?'

그렇구나.    내가  나를 준비하고 있어야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것을,   좋은 친구가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에만   불만스러워하고 있었다.  

 

'어떤  준비를  해야  좋은 친구를  만나게 될까?'


종이를  가져와  적기 시작했다.     


새로운  친구에게  내가  좋은 친구가  되어주기  위해서   나도  마음의 문을 열어두어야 할 것이다.   친구의  생각을  재단하거나   마음대로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친구일수록 서로에게 예의도 갖추어야 한다.   항상 변함없는  신의도  지켜야  할 것이다.... 크게 봐도  열 가지 정도를  준비해야 할 형편이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그렇지만   좋은 친구를  가질 수 있다면  열 가지뿐 아니라  열두 가지도  준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뭔가를  고치고  배워서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외로움과  싸울 시간을  작품 활동에  쓸 수 있을 것이다.   감정을  교류하고   교감하고   생각과 창조성을  나눌 수 있다.   생일을  축하해 줄 수도 있고   함께  여행을  갈 수도 있다.   아니,  무엇보다도   그런 친구가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3월을  다 보내고  나서는  좋은 친구 찾기에  나설 계획이다.   나와  생각을 나눌 수 있는,   마음과  믿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    그렇게  속 깊고  다정한 친구를  만나기 위해   나도  준비해야겠다.    우주가  나에게  그런  친구를 내어주길  진정으로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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