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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Mar 17. 2018

마음아, 미안해...

편린 16

기다린 시간은 길었고 괴로웠지만 지금 이렇게 되고 보니 그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다.

— 아리카와 히로,『사람 도감』

****

얼마 전에  아는 언니 한분께서  전화로  '직장 걱정'을  하셨다.   새로 옮긴 직장에서  여성 실장님이  일은 제대로 가르쳐 주지도 않으면서  실수할 때는  소리도 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진다는 거다.

"내가  변해야 하는데.... 내가 무능력해서...  난 왜 이렇게 바보 같지요?"  

그분은  신세 한탄처럼  말했다.  

"실장님이라는 분은  어떤 사람이세요?"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키도 크고   힘도 좋고   결혼도 했고   사장님 부인이지요.  한 마디로  실세지요,  실세."   

  언니는  키도 작고  몸도 작고  목소리도  작은 데다가  감정도  풍부해서  울기도 잘 하는 분이다.   그런 분에게   덩치도  크고  목소리도 큰 데다  직장에서  '갑'인  '실장님'이  물건 던지고  소리 지르는  게  얼마나  무서웠을까   싶었다.  

"사무실에  누가  또 있어요?"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어요.  저랑 실장님 두 명밖에요."

순간  마음이 참 안 좋았다.   두 사람밖에 없는 방안에서  한 사람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지고   다른 한 사람은 꼼짝 못 하고  혼나는 그림이  눈 앞에서  펼쳐졌기 때문이다.

"내가  변해야 하는데... 영인 씨는  내가  어떤 면에서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분은  또  '변화'  타령이셨다.  


 나이  스물이 넘으면  인성이 거의 다 형성된다고들 한다.   서른이 넘으면  성격을  고치기 어렵다고들 한다.    습관을  고칠 수는 있다고 하더라도  타고난 성격을  고쳐야  한다는 생각에는  반대였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부하 직원에게  소리 지르는  상사가  나쁜 것이지   '실수'하는  직원이  잘못은 아니다.   '실수'는  저질러도  다시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면  될 일이지만    상사의  포악은   '실수'와는 차원이 다른  '폭력'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 중에  그 행동을 고쳐야 할 사람이 있다면  '소리 지르는 ' 상사의  행동이지  화난 상사 앞에서  기가 죽어하는 '실수'는 아니다.

"고치긴 뭘 고쳐요?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내 말에  그분은 귀가 솔깃한 듯했다.

"내가 잘못한 게 없다고요?"

"그럼요.  누가 그래요?  잘못했다고."

"다들  그러던데..  동생도  언니가 좀 고치라고 하고.. "

"지금 상사가  하는 행동은  부모가  어린애들  다락에 가둬놓고  혼내는 거랑  같아요.   아무도 없는데서 소리 지르고  물건 던지면  어린애들이  얼마나  두렵겠어요?  그다음부터는  실수 안 할 것도  하게 되지요.  불안해서라도."

"그렇죠?  그런 거죠?"

"네.   절대  잘못하신 거 없어요.   그러니까  내가 뭘 잘못했을까  생각하지 말고   그 사람에게  '그런 행동 하지 마세요,  불안해서 일을 못하겠어요.'라고  말하세요."

"그래서  잘리면요?"

"그래서  잘리는 게  낫겠어요,  아니면  이렇게 참고  계속 다니는 게 낫겠어요?"

언니는 한동안  생각에  잠긴 듯했다.


다음날 저녁에  그분이  전화하셨다.  사직서를  가슴에 품고  출근했다면서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내가 그랬거든요.  이런 식으로  하면  그만두겠다고.  사직서를  실장님 책상에  던졌죠.  그랬더니  실장님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거예요.  왜 이러냐고,  우리 잘 해보자고 하면서...  소리 질러야 할 타이밍인데  안 지르고   화내고  던질 타이밍인데  참고..  실수는 오히려  더 했는데도  오늘은 평화롭게 흘러가서  이게  꿈인가 했지 뭐예요?"   

행복해하는  목소리에  가슴이 아팠다.   실장님은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을 테고   하지 않으려고 들었다면  예전부터  멈출 수 있었던 것이다.   포악을 부려도 될만하다 얕잡아 보고 함부로 행동했던 거였다.  언니는  그 포악을  다 받고도  참아내고  매일 저녁 울면서  집으로  돌아와  '내가 부족하니  이런 취급받아도 충분하다'라고  생각했을 텐데.   그녀가  보냈던  슬픔의  시간,  눈물의  밤들은  누가  보상해 준단 말인가.   그렇게  다친  마음은  누가  다독여 줄까.


"내가  요즘은  아무라도  나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사랑하게 될 것 같아요."

그분의  말에  내 눈물이  흘러나왔다.    상처 입고 벌어진  마음이  끙끙 앓고 있었다.  


"실장님이  화내지 않고,  잘 해보자고 하면서 일하는 게 정상이었던 거예요.   새로 들어온 직원이  실수하는 게 정상인 거예요.  실수할 수 있고,  두 번, 세 번 하지 않으면 돼요.   자책하지 마세요.   잘못하신 거 없어요."

"사직서  가슴에 품고 다녀요.  이제는.  그래,  자르려면  잘라 봐라.  정 그러면  나가면 되지. 하면서요.  그러니까  실장님도 내 눈치 보고요,  제가  더 배짱도 생겼고요,  큰소리도 내요."   그분은  너무나  행복해하셨다.  


나도 그럴 때가  많다.  일이 잘 못되면  내 탓이 아닐까?  내가 뭘 잘못해서  이렇게 된 것은 아닐까?  내가 실수한 것인가  고민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있고  내 능력 밖의 것들도  존재한다.   '실장님'의  패악을  고스란히  당할 필요가 없듯  세상의  폭력을  다  받아낼 이유도 없다.  우리는 '인격체'로  태어난 것이지  '누군가의 샌드백'이 되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은  포기하고  내려놓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열심히  하면 된다.   싫다고  표현할 줄도 알아야 하고  화도 맞받아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막상 사건이  생기면  생각이  엉키고  감정이  흔들린다.   감정이  많아지면  판단이 흐려진다.  판단 흐릿해진  생각 속에서  실제 사실은 사라지고  '감정'만 크게 부풀어 오른다.   그렇게 커진 감정은  실제 상황까지 왜곡시킬 때도 있다.   결국 잘못된  판단을  야기할 수도 있다.   옛 말에 '장고(長考) 끝에 악수(惡手) ; 바둑, 장기()에서 이롭지 않거나 상대방()에게 이롭게 해 주는 수(手);둔다는 것도 있지 않은가?   

힘든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고  그 이유가 다  내 탓은 아니다.   내  성격에 문제가 있다,  내가 바보 같다고   자책하며  우울에  빠져 지내지 말고  감정에서  벗어나  상황을  읽어보자.   생각에 빠져  행동을 미루고 있지는 않은가?   고쳐야 할 것은  내 성격이 아닌  행동 하나일 경우가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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