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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Jan 24. 2018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

편린  09

떡볶이를  무척 좋아한다.  자주 먹고 싶지만  한 번 해서 먹고 나면  다음날 또 먹지는 않는다.  집에서 떡볶이를 하면  아무래도  일 인분보다는 많이 하게 되고  먹지 못한 나머지는 버려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떡볶이만큼은  사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사 오고 나서  집 주위를  둘러보며  혹시  떡볶이 파는 곳이 있는지  가장 먼저  찾아 보았다.   집 아주 가까운 곳에  유명 떡볶이 전문점 한 곳을 발견했지만   이사하고  여러 가지 일이  많아  바빴.   가봐야지 생각만 하는 중에  그곳이  문을 닫고  새로  떡볶이집이  오픈했다.   언뜻 봐도  수줍음 많고 얌전한  아주머니께서  새로운 사장님이 되셨다.    어딘지  그분의  인상이  좋아 보여서  자주  들러 떡볶이를 사 왔다.


이 주일쯤 전에도  들렀다.  떡볶이  일 인분을  사는데   그날따라  사장님께서  

"다른 것도  드셔 봐요."

하신다.   한 번에 먹기 너무 많다며 사양하는 나에게  굳이  몇 가지를  더 싸주셨다.

"내가 아주 넉넉하게 담았어요.   집에 가서 먹어봐요."

따뜻한 말씀이다.   카드로  계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영수증을  들여다보았는데   금액이 좀 이상했다.   분명  내가 산 것은  떡볶이 일 인분뿐일 텐데   그보다  천 원이 더 계산되어 있었다.   떡볶이 일 인분 말고  따로 싸주신  음식이  뭔가  불편해지고 말았다.   봉지를  열어  들여다보니  튀김 몇 가지와  순대,  어묵도  들어있다.


'이렇게  해서  천 원이면  아주 싼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내가 원하지 않는 음식을  마치 서비스하듯 싸주시고  카드 결제하는데  천 원을 '슬쩍' 더하셨다는 데에는  기분이  상했다.   얌전하게만  보였던  사장님의  미소 뒤에  검은 뭔가가 숨겨져 있었던가  싶기도 했다.  아주 이상한 기분이다.   '배신감'이라고 하기엔  좀  약하지만  그렇다고  '배신감'이 아니라고  부르기에는  강한  느낌이라고  하겠다.


그 후엔 한 동안 떡볶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떡볶이 가게  앞으로  가지 않고  다른 길로  지나기도 한다.   미세먼지 탓을 하며  집에서  떡볶이를 해 먹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일요일   오전에  성당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누가  나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돌아보니  떡볶이집 사장님이시다.

"저번에  갔다가  안 오셔서   내내 기다렸어요."

언제나처럼  다정하게  웃으시며  인사하셨다.   나도  따라 인사를 했다.   경어체에는 경어체,  미소에는 미소.   그렇게  사람을  대하라고  배웠으니   나도  예절 바르게  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어딘지  불편한  가시가 슬쩍 찔러온다.

"들어와요.   잠시만요."

"네?  아... 제가 지금... 다른 데  갈 일이  있어서...."

"아냐.  잠시면 돼요."

사장님이  내 손을 끌고  들어가시더니   '컵 떡볶이'를  하나 담아주신다.

"저번에  내가 잘못 계산해서  1000원을  더  받았지 뭐야.   따라 나가서  불렀는데  벌써 가버렸더라고.   그래서 언제 다시 오면  1000원 덜 받아야지  하면서  기다렸어."

나는  입이 얼어붙은 사람처럼  한 동안  뭐라  대답할 것을  찾지 못했다.

"자,  이거 가져가요."

컵 떡볶이를  봉지에 담아주신다.

"그런 사소한  것들을 기억해 주셔서 감사해요."

내 말에 사장님은

"기억하지,  당연히.  미안해요,  정말..."

하시며  예전처럼  웃어 주셨다.   

그분의 미소에 차마 따라 웃지 못했다.   그 분에 대해,  저질렀던  오해가  미안했고  그렇게 밖에 생각하지 못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다.


'공자가어'에는  공자님이  아끼셨던  제자,  안회의  고사가  나온다.



공자(孔子)가 제자들과 함께 채(蔡) 나라로 가던 도중
양식이 떨어져 채소만 먹으며 일주일을 버텼다.
걷기에도 지친 그들은 어느 마을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그사이 공자가 깜박 잠이 들었는데
제자인 안회(顔回)는 몰래 빠져나가 쌀을 구해와 밥을 지었다.

밥이 다 될 무렵 공자가 잠에서 깨어났다.
공자는 코끝을 스치는 밥 냄새에 밖을 내다봤는데 마침 안회가 밥솥의 뚜껑을 열고 밥을 한 움큼 집어먹고 있는 중이었다.

안회는 평상시에 내가 먼저 먹지 않은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았는데 이것이 웬일일까?
지금까지 안회의 모습이 거짓이었을까?
그때 안회가 밥상을 공자 앞에 내려놓았다.

공자는 안회를 어떻게 가르칠까 생각하다가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안회야, 내가 방금 꿈속에서 선친을 뵈었는데 밥이 되거든
먼저 조상에게 제사 지내라고 하더구나."

공자는 제사 음식은 깨끗하고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안회도 알기 때문에 그가 먼저 밥을 먹은 것을 뉘우치게 하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안회의 대답은 오히려 공자를 부끄럽게 했다.
"스승님, 이 밥으로 제사를 지낼 수는 없습니다. 제가 밥이 익었나 보려고 뚜껑을 연 순간 천장에서 흙덩이가 떨어졌습니다. 스승님께 드리자니 더럽고 버리자니 아까워서 제가 그 부분을 이미 먹었습니다."



공자는 잠시 안회를 의심한 것을 후회하며
다른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 나는 나의 눈을 믿었다.
그러나 나의 눈도 완전히 믿을 것이 못되구나.

예전에 나는 나의 머리를 믿었다.

 그러나 나의 머리도 역시 완전히 믿을 것이 못되는구나.

너희들은 알아두어라.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진정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전보다  길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내  뺨을  때리는 것만 같았다.   떡볶이집 사장님께서  만약 내 진심을  아셨더라면  얼마나  무참하셨을까?     멋대로  생각해 버린  무례를  어떻게  갚을 것인가.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인격체로  서로를  존중하는 일이   당연한  일인데도   나처럼  편협하고  부족한  사람에게는  멀고 먼 일일 뿐이다.


 집으로  돌아와  컵 떡볶이를 먹는다.   매콤하고  달콤한,  그리고  씁쓸한  떡볶이다.   매워서  따뜻한  차 한잔을  함께 마신다.     찻잔에는  부끄러운 내 얼굴이  어린다.   옛날  공자님께서  그러셨듯  나도  중얼거린다.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진정으로  어려운 일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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