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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Jan 22. 2018

당신이라는 이름

편린 08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은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어느 순간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  '내가 성장했구나'  깨달음과 함께 했다.   사랑이란 참 어렵다.  사랑이라고  부를 만한 대상이  생기고   그만한 깊이의 마음을 쌓으려면  그 깊이만큼이나  아련하고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사랑이라는  강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모래톱이  정갈한  그림 같은  풍경을  그렸지만   현실이 꼭 그렇지 만은 않았다.   강에 들어가기 위해   다리를 건너야 할 때도 있었다.   통행세를  내고  누군가의  허가를 받아야만 할 때도 있었다.   그렇게  애써  도착했던  강도  상상처럼 아름답지는 않았다.  시퍼런  강물이  기다리고 있는 이 강가에서  신발이라도 젖을까 봐  몇 번을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텀벙 거리며  강물을  가로지르는  사람들이  부럽기만 했다.   나는  강가에 서서  당신의  이름만  부르는  어린아이였는지도  모른다.    문장 사이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빠뜨리고   몇 번이나   다시 찾으러 갔었다.   내가 하는 사랑의 의미와  당신이  나에게 속삭이는 말들이  다르지 않을까  자꾸  다시 읽었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마침표와 쉼표를 고르느라  당신의  웃음소리를 떠올렸다.   아프고 불안한 밤도 함께였다.


내가  당신으로 인해 받은 상처만  생각했다.  미안하지 않았다.   아니, 미워했다.   미워서  그렇게 썼다.   

'너를 미워한다고,   사랑하지 않는다고,  너를 알지 못하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로  당신을 때렸다.  팔이 아플 때까지,   내가 지칠 때까지  당신을 때렸다.   당신의  등에  퍼런 멍이 들 거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당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며칠이나,  아니,  몇 달이나  아무 말도 없었다.   아무 말 없는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은 줄 알았다.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거라고,   잊었을 거라고   썼다.   그랬을 거야.   분명 그랬을 거라고  썼다.   끝에  꾸욱 마침표를  찍었다.   '툭'  눈물로  마침표가 번졌다.


신발을  신고  강가로 나온  나는  사막에 대한 것들을 썼다.   버려진 꽃들과  선인장에 대해 썼다.   그래도  문제없다고 썼다.  문장 사이에  '미련'을  버리고  마침표 대신  느낌표를  달았다.   강은  깊었고  검었다.   그곳에는  쉴  모래톱 한 곳 없었다.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썼다.   당신의  동그란  얼굴을   그렸다가  지웠다.   제발  나를  내버려 두라고  썼다.   아프다고 썼다.   모든 것들이  다  가시가 되어 나를  찌른다고 썼다.    


강을 떠나  숲으로  가야지.   숲에는  생명과  햇살이 있을 거라고 썼다.   당신이 없는 그곳은  행복할 거라고 썼다.   신발이  다 떨어질 때까지 걸을 거라고,   당신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쉬지 않을 거라고  썼다.

"잘  가."

당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메아리가  따라했다.  잘 가,  잘가...

당신은  강  중간쯤에 서 있었다.   온통 젖은  당신은  멍 투성이었다.   


'아팠겠구나....'

당신도 나 때문에 아팠을까?     아팠을까?  아팠을까?

몇 번이나  물음표를  떼어 내려했지만   물음표가  묻는다.   왜 묻지 않지?  왜  물어보지 않지?

당신이  그랬다.   네가  가고 싶으면 가.  네가 행복하다면 가도 돼.  그래도 된다.  내 걱정은 말아.   나는 잘 지낼 수 있어.   잘 지내,  잘 지내.   


숲에는  햇빛이 있다.   풀과  나무도 있다.  난쟁이들과  백설공주가  새로운 친구였다.  밤새도록  라푼젤의  노래를 들었다.   물이  나를 적셨고   팔에서  새 순이 돋았다.   아픈 몸에서  가시를 빼듯  문장 하나하나씩 삭제했다.    멍자국마다  새 가지가  자라났다.    신발에는  뿌리가  굵어졌다.   비가 왔고  눈도 내렸다.  잊었다.  동그란 얼굴,  슬그머니 짓던  미소,  여름을 닮은  목소리,  나뭇잎 같은  손바닥.  잊었다.  잊힌 것은  지워진 것들.  마침표와  말줄임표 사이  틈새로  버려지는 모래알들.


지우지 못한 것은  단 하나, 당신이라는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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