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찾기

by 일기떨기





이제 4분지 3 정도가 지나버린 나의 변변치 못한 인생에서,
당신은 나에게 보기 드문 경험이었습니다.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든 상관없습니다.
설령 심술궂게 해석하셔도 상관없습니다.

1941년 7월, 편집자 파스칼 코비치가
작가 존 스타인벡에게 쓴 편지입니다.


 선생님, 가수 이용이 부른 ‘잊혀진 계절’이란 노래를 아시지요. 시월의 마지막 밤마다 꿈처럼 헤어진 애인을 그리는 노래 말입니다. 이때 문법대로 하면 상대를 잊은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기에 ‘잊혀진’이 아닌 ‘잊힌’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겁니다. 선생님께선 늘 불필요한 피동 표현을 피하라고 하셨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이 노래만큼은 아니 이별만큼은 ‘잊혀진’이라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얼까, ‘잊힌’이라고 말하면 그대와 함께한 시간을 단박에 지워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사랑에게 시간한테 일말의 여지도 없이 뒤돌아 버리는 것 같달까요. 사랑은 나만이 잊는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닌데 말이지요. 우리 모두가 사랑의 피해자 아니었나요. 정말 사랑이라면 내 몸은, 내 마음은 꽝꽝 묶인 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텐데요. 이 노래를 부른 남자는 아마도 이런 마음이었을 겁니다. 당신이 나를 잊어야 비로소 이 계절을 보낼 수 있으니, 절대 나를 잊지 말아 달라. 아직도 나는 여기서, 시월의 마지막 밤을 붙들고 있다, 이런 애원이 아니었을까요.


 민수를 만나도 돌아오는 길엔 늘 편지를 썼다. 지난밤에 쓰지 못한 밀린 일기를 쓰는 마음으로 그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꾹꾹 눌러쓴 마음을 써 내려갔다. 그날도 민수네 가서 그가 만든 음식을 먹고 제 딴에 아껴두었다는 와인을 마셨다. 절대 취할 수 없는 밤, 민수가 양희은이랑 이적이 부른 ‘꽃병’이란 노래를 불렀다. 그를 안 볼 수는 있어도 미워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에 퍽 쓸쓸하다가도 가끔씩 이렇게 노래를 들을 수 있다면 그걸로 괜찮단 생각이 들었다.


 여행 막바지에 접어들었지만 민수에게 줄 선물을 사지 못했다. 살쾡이 같은 민수는 내가 뭘 줘도 고맙다고 하겠지만 아무거나 사서 돌아갈 바에야 빈손인 편이 나았다. 민수를 처음 만난 날이 생각났다. 학부 동생 두 명과 함께 그가 일하는 맥줏집에 갔다. 그날 사장이 출근을 안 했던 건지, 원래 그렇게 설렁설렁 운영하는 곳인지 자꾸만 시키지도 않은 음식이 나왔다. 이렇게 된 이상 술이나 많이 마시자 싶어서 맥주는 안 취한다는 허세와 함께 가게가 문을 닫을 때까지 술을 마셨다. 그러고서 낸 돈은 단돈 1만 2,000원. 오 마이 갓,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산기를 제대로 두드리지 못하는 친구라니. 처음에는 저 정신머리로 어떻게 이 거친 세상을 살아가려나 싶었다. 나중에야 민수가 맥주 네 잔 값만 받고 본인 카드로 계산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도 민수는 자취방에서 유성우를 찾아주기도 하고, 코인 노래방에서 신청 곡도 척척 받아주고 무엇보다 몇 번 만나지도 않은 두 살 어린 내가 반말을 찍찍 내뱉는 걸 두고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이번 아이슬란드 여행도 민수의 아이디어였다. 허수경 시인의 첫 번째 추모제가 있던 날, 오가며 만나 시인 오빠랑 밤마다 서울을 냅다 달리는 두열 오빠 그리고 민수까지 이른 아침 북한산에 갔다. 우리는 북한산 정상에서 이것이 진정한 서울의 멋이구나, 내년부터는 보다 사람처럼 살아보자는 다짐과 함께 혜화 막걸릿집 ‘두두’로 갔다.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오규원 시집 『두두』는 나에게 은인과도 같은 시집이었다. 고등학교 시 창작 수업 때 필사 과제가 나올 때마다 『두두』부터 찾았다. 참으로 짧고, 아름답고, 정갈한 시들로만 구성돼 있었다. (나를 끝으로 그의 시집은 필사 목록에서 제외되었지만) 이렇게 근사한 상호의 주점이라면 음식 맛을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시키는 메뉴마다 자극적이지 않고 감칠맛 나는 게 소주 안주로 딱이었다.


 그때, 민수가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여행이나 한번 가야 하지 않겠냐는 얘기를 꺼냈다. 우리는 네가 드디어 생산적인 얘기를 하는 구나라고 한껏 추켜 세워주고 제주나 일본은 아무 때나 가면 되니까 기왕 가는 거, 아이슬란드나 아프리카에 가자고 했다. 아이슬란드는 500만 원, 아프리카는 800만 원, 앞으로 4개월 뒤에 돈 모아놔. 참으로 간단하고도 명확한 여행 계획이었다. 그때부터 소주가 술술 들어가더니 시인 오빠가 자신의 SNS에 아이슬란드나 아프리카에 갈 거라는 글을 올렸다. 순식간에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고 더는 장난이 아니다 싶었다. 하루살이처럼 그날그날 끼니를 때우던 나는 다시 알바지옥 앱을 깔았다.


 시인 오빠가 전국 북 토크를 다니면서 여행 멤버를 구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장소는 한겨울 아이슬란드. 본격적인 일정을 조율하려는데 민수가 이제 막 이직을 한 자신의 처지를 드러내며 이주가 아닌 일주일 여행으로 조정하는 건 어떠냐고 했다. 시인 오빠는 우리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기도 전에 그 일정으로는 안 된다고 했고, 이 사회의 훌륭한 개미가 된 민수는 여행을 가지 못했다. 아이슬란드에서 나는 자꾸만 민수 이름을 불렀다. 여기 민수 오면 좋아 죽었겠다. 와, 김민수가 좋아할 만한 구름이야. 그도 그럴 게 여행 내내 민수의 라이카를 들고 다녔다. 아이슬란드에 가기 전, 강남역 5번 출구에서 만나서 빌린 카메라였다. 내가 알기론 민수와 아일랜드 더블린에 갔었던 바로 그 카메라. 섬에서 부른 이름은 바람과 함께 흩어지기 마련인데, 그의 이름은 부를수록 점점 더 선명해졌다.


 좀처럼 여행지에서 기념품을 사지 않는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멋이 안 난다고 해야 하나. 그렇다고 아예 빈손으로 돌아가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럴 필요까지 있나 싶을 정도로 선물 받을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선물을 고르는 기준은 명확하다. 첫째, 한국에서 절대 구할 수 없는 것, 둘째, 선물을 받은 사람이 중고나라에 절대 팔 수 없는 것, 마지막으로 내가 갖고 싶은 것. 이런 걸 구할 수 있는 곳은 아이슬란드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골동 책방 보킨 Bókin뿐이었다. 보킨은 ‘책’이라는 뜻인데 정말 이곳은 책이 발에 치일 정도로 쌓여 있었고, 서점 창가 구석에는 작은 테이블과 체스판이 놓여 있었다. 여기서 세계 체스 챔피언 보비 피셔가 체스를 두었다고 하는데 난 거기 앉아 민수에게 줄 책과 엽서를 골랐다.


 눈발이 날리는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고서적으로 가득한 보킨 서점 1층에서 민수에게 줄 아이슬란드 사진집을 찾았다. 이 책과 함께 물고기가 그려진 아이슬란드 동전을 줘야지. 이 글을 쓰면서 그의 이름을 몇 번 얘기했더라. 민수는 작년 가을부터 월요일마다 메일로 편지를 보내는 서비스를 한다. 한 주의 시작을 몇 백 명에게 편지를 쓰는 걸로 대신하는 사람. 그는 이번에 혼자 헬싱키로 간다고 한다. 민수에게 부탁해 레이캬비크에서 헬싱키로 가는 비행기에서 쓴 편지를 받았다. 내가 민수에게 처음으로 쓴 편지이다. 가끔 오빠처럼 구는 그 애는 어떤 답장을 들고 돌아올까.


 민수. 이 책과 엽서는 모두 레이캬비크 보킨 서점에서 구매한 거야. 그곳은 책 먼지로 가득한 헌책방이고, 한 켠에는 테이블과 일인용 소파 두 개 그리고 체스판이 있어. 민수도 분명 좋아할 공간이야. 해리포터에 나오는 헤그리드처럼 풍채가 좋은 주인이 내게 아이슬란드에 언제 다시 올 거냐고 묻더라. 나도 모르게. “아마도 2년 뒤, 내 친구 민수와 함께.”라고 말해 버렸어. 나와 두열은 여행 내내 함께 오지 못한 민수를 그렸고 일행 모두가 당신을 궁금해해. 민수가 왔다면 반드시 갔을 펍, 기타 파는 가게, 카페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벌판들. 여행 내내 오빠의 라이카와 함께해서 든든하고 행복했어. 아이슬란드의 바람을(정말 엄청나) 마음껏 만끽해도 속이 허전하지 않았던 건 추위에도 잘 버텨준 카메라가 있었기 때문이야. 우리가 강남역에서 만났을 때, 더는 혼자 여행하고 싶지 않다던 오빠 말이 자꾸 맴도네. 난 민수를, 오빠의 그 어떤 선택도 응원할 준비가 되었지만 당신이 혼자 떠날 날을 기대하고 있어. 우리 꼭 함께 아이슬란드에 가자. 그렇게 될 거야.


2020년 2월 25일 화요일 헬싱키 가는 비행기에서

너의 친구 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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