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기떨기 Sep 15. 2022

25. 일기떨기

엄마가 아프지 않고 오래 살아가게 해주세요. 꼭이요.



- “있잖아, 엄마가 아프면 막 아무 거에나 대고 소원을 빌게 되지 않아? 달이 조금만 크게 떠도 두 손을 모으게 돼.”

- “헐, 맞아. 퇴근길에 하늘 올려다보는 척하면서 기도한 게 한두 번이 아니야. 그리고 나는 살면서 ‘엄마 건강하게 해주세요’ 말고는 소원을 빌어본 적이 없어. 웃기지?”

- “야, 나도야.”

- “도대체 우린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야?”     

내가 빈 최초의 소원은 뭐였을까? 당연히 기억은 안 나지만 친구들을 초대해 생애 첫 생일파티를 열었던 일곱 살 여름, 일렁이는 촛불 앞에서 눈을 감고 빈 소원이 ‘미미 인형을 갖게 해주세요’나 ‘올해는 꼭 두 발 자전거를 타게 해주세요’ 같은 것은 아니었으리라 확신할 수 있다.     

나는 네 살 때부터 “엄마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를 입에 달고 사는 아이였다고 한다. 어른들이 모여 있으면 “저는 이다음에 의사가 돼서 아픈 엄마를 치료해줄 거예요!”라고, 묻지도 않은 장래희망을 선언해 기특하다는 소리를 듣곤 했다나 뭐라나. 그런데 일곱 살 전의 기억은 거의 없어서, 최근에 엄마가 저 얘기를 들려주었을 때 나는 이렇게 대꾸했다.     

“아니… 엄마는 내가 네 살 때도 아팠네.”     

사는 동안 몇 번이고 눈앞에서 실려 나가는 엄마를 마주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을 감는 대신에, 주변의 온갖 좋은 풍경들 앞에서 모든 신을 데리고 와 엄마가 제발 죽지만 않게 해달라고, 고개를 들고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빌었다. 언제 어디서든 원할 때마다 엄마의 건강을 바랄 수 있게끔 말이다. 그래서인지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심심풀이로 비는 소원에서 조차 엄마의 건강 말고 다른 것을 빌어본 적이 없다. 엄마가 특별히 아프지 않고, 나와 쇼핑을 하고 밥을 먹고 산책을 하며 무탈한 시기를 보낼 때에도 그랬다.     

그래도 몇 번, 퇴근길에 무심코 본 보름달이 너무 크고 환한 밤이라든가 내 삶이 너무 쪼그라들어서 작은 성공이나마 요행을 바라게 될 때에는 슬그머니 내 몫의 바람을 되뇌기도 했는데, 끝에는 결국 이런 말을 덧붙이곤 했다.     

‘그런데 사실 이런 건 다 필요 없어요. 내 일은, 그냥 지금처럼 내가 다 알아서 노력할게요. 그러니까 엄마가 아프지 않고 오래 살아가게 해주세요. 꼭이요.’     

라고, 아무 데에나 마음을 흘리며 집에 들어가는 밤이 있었다. 그다지 대단한 성공을 기대하지도 못하는 내 괜한 욕심이 혹시 엄마의 건강한 미래를 부정 타게 만든 거면 어쩌지, 어리석은 자책을 하면서. 그러니까 일곱 살 생일에도 아마 나는 이렇게 빌었겠지.     

‘엄마가 제발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계속 아플 거라면 제가 의사가 되기 전까지 만이라도 안 아프게 해주세요. 그 후에는 제가 엄마를 낫게 해 줄 테니까요.’     

보다시피 의사는 되지 못했다. 대신에 의사만큼이나 아픈 엄마에 익숙한 사람이 되었다. 나와 달리 엄마는 자기 자신의 연약함을 늘 처음처럼 낯설어한다. 태어나 한 번도 아픈 적 없는 사람처럼 매번 깊이 절망스러워한다. 그러면 나는 엄마가 아프다는 사실보다 엄마가 자신의 아픔에 너무 세게 무너질까 봐, 스스로를 자꾸만 미워하게 될까 봐 겁이 난다.     

그래서 시시때때로 소원을 빌면서도 겉으로는 아무렇지 척을 한다. 나도 분명 괜찮지 않을 텐데 누군가 나를 보고 ‘엄마가 아파서 어떡해’ 하면 괜찮다는 말만 한다. 하지만 늘 그렇기만 한 건 또 아니어서, 엄마는 왜 의연한 척도 못하고 빈말이라도 ‘혜은아 엄마는 괜찮아’라고 말하지 않아서 내가 평생 내 소원 하나 마음 편히 빌지 못하게 만들까… 그런 못난 원망을 하기도 한다. 엄마가 엄마의 방식대로 씩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게 내 눈에 잘 안 보일 때가 많다.      

엄마의 마른, 너무 마른 등을 보면서 생각한다. 엄마야말로 누구보다 괜찮고 싶겠지. 말이라도 그렇다고 할 수 없게 만드는 고통에 대해서, 무력함에 대해서 나는 100%로는 알 수가 없다. 엄마가 무엇을 얼마큼 인내하며 버티고 있는지, 그럼에도 어떤 것엔 아주 지쳐버렸는지 내가 다 알 수 있다면 좋겠다. 그래서 엄마한테 “진짜네, 진짜로 안 괜찮네. 우리 엄마, 정말이지 괜찮을 수가 없겠다. 너무 힘들겠다.”라고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네는 딸이면 좋겠다. 엄마의 몫까지 과하게 씩씩한 나머지, 엄마를 은근히 비난하게 되는 딸 말고. 사실 나는 끊임없이 괜찮다고 말하면서 엄마의 괜찮지 않음에 가장 안 괜찮은 사람이니까. 그래서 매번 별에 별 것을 붙잡아 소원을 빈다.     

100년 만에 가장 완벽히 동그란 보름달이 뜬다는 이번 추석, 아쉽게도 내가 있는 곳엔 연휴 내내 구름이 짙어 그 대단한 달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하지만 괜찮았다. 나는 이러할 것을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추석 전날, 초저녁부터 둥글게 떠 있는 보름달을 버스에 앉아 올려다보며 익숙하게 두 손을 모으고, 하나도 비장하지 않은 표정으로 되뇌었으니까. ‘엄마가 아프지 않고 오래 살아가게 해주세요. 꼭이요.’




대화 주제     

■ 다들 추석 잘 보냈나요? 어떤 연휴를 보냈는지 궁금해요.

■ 살면서 가장 많이 빈 소원은 무엇인가요? 혹은 최근에 빈(빌고 싶은) 소원이 있다면?

■ 저는 스스로를 ‘괜찮은 척’ 만렙 인간이라 생각하는데요, 여러분이 가장 잘 하는 ‘척’은 뭔가요?

 이제 완연한 가을이에요. 여러분들은 가을에 꼭 하고 넘어가는 계절 루틴이 있나요? 남은 계절을 기대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더 자세한 이야기는: https://podbbang.page.link/N3KgWN9A42RCnsLw6


일기떨기 01. 혜은

『아무튼, 아이돌』 『일기 쓰고 앉아 있네, 혜은』을 썼습니다.

  망원동 '작업책방 씀'에서 다음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일기떨기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illki_ddeolki/

매거진의 이전글 24. 일기떨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