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엄마 육아(育我)의 페이스메이커
‘엄마’라는 타이틀을 통해 얻은 가장 감사한 경험은 주양육자로서 아이를 양육하며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경험이었다. 아이는 부모를 비추는 거울이라던가. 아마 아이를 키우는 엄마아빠라면 한 번 쯤 느끼는 일이지만 내가 자주 하는 말을 따라하는 아이를 보며 뜨끔하는 순간들이 있다. 아이 관찰은 곧 나에 대한 관찰로 이어지며, 아이로부터 나를 발견하게 된다.
온전히 아이에게 집중해야 하는 것이 생각보다 많은 인내심과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임을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를 돌본다는 행동 자체가 영적인 행동에 가깝다고 느낀다. 나의 마음이 과거나 미래에 향해 있다면, 즉 아이에게 집중하지 않는다면 아이는 영민하게 그것을 깨닫고 나를 봐달라고 관심을 끈다. 그것이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말이다. 성인의 생각과 시각을 잠시 접어두고 아이를 하루 12시간 이상 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그래, 그럴 수도 있지.”하며 덤덤하게 상황을 수용할 줄 아는 관용을 배우고, 멋대로 통제하려 드는 욕심을 내리는 연습, 그것을 육아를 통해 할 수 있다. 수도승을 떠올려보라. 매일 수련의 반복 속에는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하고, 고통스러운 자기반성이 이어진다. 우리네의 모습과 닮지 않았는가? 엄마에게는 아이 자체가 수련 대상이자 영적 수련의 페이스메이커다.
특히 마음챙김, 알아차림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인식과 정서적인 관리의 중요성이 높아지는 요즘에 아이 양육은 의외의 시너지를 준다. 엄마는 아이를 양육하며 수많은 감정을 인식하고, 아이에게 올바르게 가르치기 위해 감정 조절하는 연습을 하며 정서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아이를 양육하며 발견하는 나의 모습을 관찰하며 나의 마음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유난히 아이의 특정 말과 행동에 예민한 나의 반응을 통해 나의 심층적인 내면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하며, 아이에게 요구하는 것 또는 권유하는 것을 통해 나의 결핍을 발견할 수도 있다. 육아하며 겪는 모든 실수와 실패는 나 자신의 재발견과 성장의 토대가 될 것이다.
정말 감사한 사실은 아이들은 항상 어른들을 용서한다. 부족한 나에게 또 한 번 감정조절 연습, 관계 연습의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하고 사과하고 고쳐나가도록 노력하자. 육아와 명상을 통해 단단하게 성장한 나의 영혼을 통해 곧 사회로 돌아갔을 때 보다 스트레스에 강하고 사회적인 관계에 있어서도 빛을 발할 것이라 확신한다.
임신 중 아이의 태동은 엄마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든다. 임신과 출산이라는 행위는 아름답고 고귀하다고들 하지만 이젠 그 가치를 논하지 않는 시대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기에 더더욱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에 대한 의미를 찾기 어렵고, 자본주의적인 계산과 몇몇 댓글만으로 임신과 출산, 육아의 가치를 폄하하고 꺼리게 된 요즘이다. 다른 일들보다 이 사회에서 인정받기 어려운 일을 선택한 바로 당신, 엄마. 엄마라면 더더욱 육아에 대한 건강한 가치관을 가치기를 응원하며 자기계발의 한 단계로 여기면 좋겠다.
� 생각하고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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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아이의엄마 #성인ADHD #건강한삶 #자기계발 #미라클모닝
글 쓰는 일, 그림 그리는 일이 즐거운 자기계발 중독 엄마작가
성인 ADHD여도 육아와 자기계발은 계속된다
작품 제안은 jennifer7113@daum.net
나 개인적으로 종교가 없기 때문에 '영성적'이라는 표현이 맞나 싶다가도 정서적, 정신적 활동이라기엔 아쉬운 부분이 있어 영성적이라는 단어를 선택하였다. 정서적인 성장을 물론 포괄하고 있지만, 꾸준한 명상과 자기 발견을 통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고 가치관을 형성하는, 영혼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까지 담고 싶었다.
아이는 내 기준 가장 신에 가까운 존재다. 편견 없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무한한 사랑을 나눠주는, 그런 아이가 바로 곁에 있으니 영적 수련의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단면적으로는 아이를 기르며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이나 다른 사람을 대하는 다정한 태도 등을 배운다고 할 수도 있지만, 처세술이나 성공법이 아닌 덕(德)처럼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관용과 겸애에 가까워지길 목표로 하고 있다.
육아와 엄마는 자본주의, 경쟁과 성과 등의 규칙에서 잠시 벗어난다. 점수를 매기거나 잘하고 못함이 없는, 아이를 돌보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그래서 효율과 공평을 따지며 남과 비교하고, 과거의 상처나 아픔을 물려주기도 하며, 나와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나에게 육아는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해준 기회로 그저 돈과 성취, 완벽주의로 덮혀 잊어버렸던 개인의 가치관을 되찾고, 상처받은 내면을 치유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조금 거창해 보이지만 '영성적'이라는 표현을 감히 붙이게 되었다.